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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자 Jul 05. 2021

하이라인 자산 개발 붐

최근 건축 잡지에 나오는 화려한 건물들 중 많은 비중이 맨해튼 특정 지역 Chelsea에 집중적으로 지어지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연히 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도시니까 설계비나 공사비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저렇듯 당영한 것인가 싶었다. 내가 속한 조직이 하는 디자인은 팀의 특성상 건축주들에게 항상 극단의 유려함(?)을 선보여야 하는 일종의 미션이 있지만, 우리는 사실 이런 디자인이 기본설계, 실시설계, 시공과정을 거치며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반듯한 모습으로 풍화되어가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이 선진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왜 Chelsea 지역 건축물들은 이런 디자인 파티가 가능한 것일지 궁금했다. 설계비와 자재비를 상쇄하고도 남을 효과가 있기 때문일까? 이번 글에서는 유독 첼시 지역, 그것도 하이라인을 따라 즐비해 있는 건축 파티와 그 배경을 쫓아가 본다.



산업단지 첼시의 쇠락과 하이라인의 재발견


1990년대 10번가의 모습. 행인, 마차, 트럭, 철도가 혼잡하게 섞여있다

부둣가에 위치한 첼시 지역은 과거부터 뉴욕 물류의 허브이자, 외부에서 수급한 원자재를 1차 가공하는 산업단지였다. 1900년대 당시에는 행인, 마차, 화물차 그리고 화물 철도가 뚜렷한 경계 구분 없이 다녔기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특히나 번잡했던 10번가는 '죽음의 길'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10번가에서 화물철도를 분리해 한 블록 안쪽의 공중에 띄웠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하이라인'이다. 하이라인은 일부 건물에 직접 관통해 공장에 물건을 스트레이트로 전달해주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건물이 '오레오'의 산지인 National Biscuit Company(이하 NABISCO)다.


지상 레벨과 분리된 하이라인

하지만 철도에서 트럭과 컨테이너로 화물수송방식이 발전하면서 1970년대부터 하이라인을 이용하는 화물 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결국 하이라인은 수 십 년간 방치되어 흉물이 되었고, 1990년대에는 일부분이 철거되기 이른다. 한편으로, 그동안 사용되지 않은 철길 위 자라난 야생은 어느덧 멋진 조경 경관으로 자라나 있었고, 이 가치를 알아본 두 청년(Joshua David, Robert Hammond)은 Friends of Highline, 이하 FHL이라는 비영리조직을 만들어 하이라인을 보존하고, 공공공간으로 재활용하자는 운동을 펼친다.


야생이 뒤덮인 하이라인

비영리 조직인 FHL이 힘을 얻게 된 계기는 하이라인 리노베이션 아이디어 공모전을 기획하면서부터다. 공모전이 열린 2003년만 해도 하이라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뉴욕에서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공모전에는 36개국에서 720개나 되는 안이 접수되었는데, 이 안들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뉴요커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하이라인이 이슈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시장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911 테러 복구사업과, 뉴욕시의 재정비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타깃이었던 노후화된 산업단지 첼시는, FHL덕에 철거하는 방향에서 리노베이션 하는 방향으로 도시계획 방향을 선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FHL이 주최한 아이디어 공모전 출품작




하이라인의 리노베이션


2004년에 비로소 하이라인은 특별구역으로 지정되어, 공공공원 조성 공모가 열렸고 Diller Scofidio + Renfro가 설계를, Field Operations와 Piet Oudolf가 조경을 맡아 리노베이션을 진 행학 게 된다. 디자인은 'Agri-tecture' (Architecture + Agriculture)라는 콘셉트로, FHL이 처음 하이라인을 발견했을 당시의 원시적인 픽처레스크를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원래 하이라인의 경관이 지닌 야생과 철골 인프라가 만들어내는 신비감을 보존하고자 한 것이다. 하이라인의 조경은 언뜻 보기에 잡초가 단순히 무성하게 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건축가들이 한 게 대단히 많은 건가? 싶지만, 이는 정교한 계획 아래 태어난 작품이다.

당선작의 주요 개념은 식생들이 스스로 씨를 퍼트려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조경가 피에트 우돌프를 질감, 색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 하이라인에 기존에 자라던 야생화를 포함한 210종의 식재를 배치했고, 이 수종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6개 생태계(위 이미지)를 하이라인에 조성했다. 이런 조경 계획 위에 소프트한 표면과 하드한 표면의 배율을 변화시키면서 사람들이 다니는 영역을 계획했다. 조경계의 브루털리즘 아닌가 싶다.



폭등하는 첼시의 지가와 하이라인 주변으로 지어지는 원더랜드 



낯선 높이와 환경에서 뉴욕을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이라인은 새로웠고, 곧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게 되었다. 팬데믹이 터지기 직전인 2019년, 하이라인 방문객은 800만으로, 400만이 방문하는 자유의 여신상의 두 배로 불어났다. 하이라인의 리뉴얼은 동시에 자산개발 붐도 불러오게 된다. 2009년 Phase 1이 개장할 당시, 하이라인 인근 30개 대지에 신규 프로젝트가 검토되었고, 시간이 흐른 지금 15개가 넘는 건물들이 새로 지어지기 이른다. 필자가 서두에 언급했던 그 화려한 건물들이다. 건축주들은 앞다투어 세계적 건축가들을 초빙했고,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건물들이 경쟁적으로 지어졌다. 하이라인에 인접한 대지의 가격은 그 바깥 블록 지가의 곱절이 넘는 가격대를 형성한다고 하니, 하이라인은 과연 지역의 후광이다. 지금부터 하이라인의 남쪽 끝단에서부터 시작해 이 지역의 건축 파티를 감상해보자.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Renzo Piano


Little Island - Heatherwick Studio


Lantern House- Heatherwick Studio


Chelsea Market (구 NABISCO 공장)

하이라인을 관통하는 가장 큰 건물을 첼시마켓이다. 첼시마켓은 하이라인 방문객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필수 코스다. 20세기 초 첼시마켓은 비스킷 회사 NABISCO의 공장이었다. 선박을 통해 공급받은 밀로 미 동부에 비스킷을 공급하는 NABISCO는 오레오 쿠키를 개발한 회사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는 비스킷의 절반을 생산하던 이 회사는 더 넓은 공장을 확보하기 위해 첼시를 떠났고, 현재는 '첼시마켓'이라는 이름으로 공장의 모습을 간직한 채, 저층부는 마켓, 상층부는 사무실과 방송국으로 쓰이고 있다. 한편 2018년 구글은 2조 2000억 원을 들여 첼시마켓 건물을 매입해 일부를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Google Headquarter New York

 구글은 뉴욕에 제2본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첼시마켓을 포함, 맨해튼 남서부에 건물 여러 채를 매입해 캠퍼스를 조성하고 있다. 미국 IT기업들이 실리콘밸리 이외의 동부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는 흐름 상의 변화다. 구글은 첼시 마켓 상부 일부 층을 사용하면서 맞은편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글을 필두로 다른 IT기업들이 구글을 따라 첼시에 입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고급 주거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도 함께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이 건물 1층에는 구글의 첫 오프라인 스토어가 올여름 개장한다.


The XI - BIG Architects


IAC Building - Frank Gehry


520 West 28th - Zaha Hadid Architects


100 11th Avenue Apartments - Jean Nouvel


Highline 23 - Neil Denari



하이라인 효과의 저변

 하이라인 벤치마킹 사례, 왼쪽부터: Philadelphia Rail Park, Seoullo 7017, Tokyo Log Road Railroad

방치된 산업시대의 인프라는 많은 도시들의 골칫거리였기에, 하이라인의 사례는 필라델피아, 애틀란타, 시카고, 도쿄 그리고 서울 등 많은 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표면적인 모습만 보면 하이라인이 리노베이션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모든 변화를 견인한 듯 보일 수 있지만, 물리적 변화 이면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Diane von Furstenburg와 DVF 첼시사옥. 그리고 첼시 갤러리 지도

그 첫 번째 요인으로, 첼시에 불던 아트 붐이 있다. 1970-80년대 산업단지의 쇠락기와 함께 첼시는 갱단이 출몰하는 위험지역이었지만, 한편으로 미드타운과 멀지 않으면서도 저렴한 임대료 덕에 공장과 같은 큰 공간을 찾는 예술가들과 갤러리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예술가들의 등장은 많은 경우 지역재생의 청신호라고 한다. 결정적으로 1997년 미국 패션계 대모인 DVF(Diane von Furstenberg)의 본사가 입주하면서, 고급 패션 하우스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오게 된다. 덕분에 첼시는 오늘날 세계 예술계를 좌지우지하는 예술 중심지가 된다. 특히 The Pace Gallery와 Gagosian은 뉴욕 미술 신을 주름잡는 맏형들이다. 예술 붐이 일던 이 시기, 하이라인을 주도한 FHL의 두 창립자도 이런 환경에서 하이라인과 그 위에 피어난 야생을 만나게 된 것이다.


Transfer of Development Right, TDR

지역의 변화를 만든 두 번째 요인은 하이라인 개발 방식에 있다. FHL에 의해 촉발된 하이라인 보존운동은 결국 개발론자 vs 보존론자의 팽팽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이 대립은 소송으로 이어졌고, 당시 시민들의 폭넓은 지지로 결국 보존론이 승소하게 된다. 이 사업은 복잡한 대지의 이해관계에도 불구, 보존론에 따라 하이라인을 유지하는 동시에 낮은 스카이라인을 유지해 조망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당시 하이라인은 뉴욕시, 뉴욕주, 철도회사, 토지주, 건물주, 주민 등 각종 이해관계가 얽혀있었고, 이들의 권리 보전을 위해 뉴욕시는 하이라인 인근 지역을 특별구역으로 지정하고 개발권이양제도(TDR, Transfer of Development Right)를 시행한다.

개발권이양제도는 개발지역 토지 소유자가 가진 '개발 가능한 면적'을 다른 대지에 이양할 수 있는 제도로, 법규가 인정하는 한도에서 임대 및 매매가 가능하다. 문화재 보호나 환경보전에 활용되는 개발방식으로, 토지 소유자가 재산상 손실한 부분만큼을 다른 지역에서 만회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제도다. 보통 이 제도는 같은 블록에서만 가능했지만, 하이라인에 한해 예외적으로 먼 블록까지 공중권의 권리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여, 고층빌딩과 난개발로부터 하이라인의 경관을 보존했다.

하이라인 개발권이양제도 모형

따라서 하이라인의 토지주들은 이 지역에서 개발하지 못하는 분의  공중권을 매각했다. 앞서 언급했듯, 인근 지가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주들은 손해 보는 일 없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고, 토지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기존의 낡고 낮은 건물을 부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건물들을 새로 지었다. 화려하게. 또 공중권이 매각됨에 따라 하이라인 바깥의 부지들도 추가 용적률을 얻게 되어 개발 사업이 우후죽순 시작된 것이다. 이런 개발 활황에서 앞서 우리가 살펴본 화려한 건축 파티가 가능해진 것이다. 개발권이양제도는 하이라인과 주변 경관을 살리면서, 지역 활성화까지 일으킨 촉매제 역할을 제대롤 해냈다.

Hudson Yard, 기 개발된 업무단지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철도기지

하이라인의 3단계 개발구역에 있는 끝판왕 격인 철도부지의 Hudson Yard. 11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허드슨 야드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민간 복합개발 프로젝트다(직전의 최대 개발 프로젝트가 80년 전 록펠러센터 개발이었다고). 복합업무지구가 지어지는 철도기지는 원래 2012년 하계 올림픽 개최를 목적으로 입찰에 참여했었지만, 올림픽이 좌절되며 미 최대 디벨로퍼 Related Companies가 낙찰받게  된다. Related Companies의 회장 스티븐 로스는 이곳을 뉴욕 최대 관광 명소&아이콘으로 만들고자 한다. 현재 1단계인 상업/업무지구가 지어졌고, 추거 단지가 추가로 예정되어 있다. 연신 화제가 되고 있는 Vessel과 Shed 도 이곳에 모여있다.

Vessel과 The Shed

이탈리아에서 생산해 뉴욕에서 조립한 거대한 계단 베슬은 약 2억 달러(2260억 원)가 들어간 대규모 조형물(?)이다. Related Companies 회장 스티븐 로스는 록펠러 센터에 버금가는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토마스 헤더윅을 초빙해 베슬을 지었다. 개장 직후에는 포토스폿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계단, 자살 타워(세 번의 자살)라는 오명으로 불리고 있다.

The Shed는 힙합부터 클래식, 회화부터 디지털 미디어, 연극부터 문학 등 모든 스펙트럼의 예술을 선보이겠다는 야심을 가진 아트센터다. The Shed는 하이라인에 인접해 있는 만큼, 기찻길의 레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레일 위를 움직이는 공연 시스템이다. 캐노피가 앞 뒤로 움직이며 공연과 전시의 특성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The New York Times 'Disney World on the Hudson' , illustration by Ana Benaroya

결과적으로 첼시의 도시재생은 활발하다 못해 뜨거운 상황이다. 연간 800만에 가까운 관광객이 방문하는 하이라인은 뉴욕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북적이고, 이를 넘어 인근 화려한 주택들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이른바 하이퍼-젠트리피케이션 상황으로, FHL의 창립자는 최근 '성공이라 불리는 실패'라고 하이라인을 평가하기 이르렀다. 하이라인으로 얻은 경제적 효과는 빠른 속도로 기존의 주민들과 인더스트리얼한 정취를 갈아버리고, 자본력이 두둑한 주민들과 회사로 첼시를 채우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변화하는 도시 그 자체다. 누군가에게는 득이 되면 다른 이는 실을 얻을 수밖에 없지만, 도시는 사람이 만들기에 변할 수밖에 없고, 정체된 도시는 결국 과거 첼시 같은 동맥 경화일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디플레이션은 곧 죽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부양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부분이지 않나 싶다. 첼시 같은 경우는 부동산의 하이퍼인플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측하지 못하게 적정 이상 수준의 물가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물로 필자가 궁금해했던 그 화려한 건물들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다시 여행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다음 목적지는 뉴욕이다.!







출처

하이라인 개요 - https://www.thehighline.org/history/?

첼시 예술지역 - http://chelseagallerymap.com/

하이라인과 부동산 가격 상승 - https://streeteasy.com/blog/changing-grid-high-line/

건축물 정보 -  https://www.designboom.com/

건축물 정보 - https://www.archdaily.com/

개발권이양제도 - https://99percentinvisible.org/article/selling-sky-air-rights-take-strange-bites-big-apple-architecture/

개발권이양제도, 하이라인을 중심으로 - https://www.leekuanyewworldcityprize.gov.sg/resources/case-studies/west-chelsea-high-line-plan/

하이라인의 그림자 - https://www.nytimes.com/2012/08/22/opinion/in-the-shadows-of-the-high-line.html

허드슨 야드 개발 - https://www.architecturaldigest.com/story/hudson-yards-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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