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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자 Jan 16. 2024

도대체 뭘 믿고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줬을까

깡통전세인 집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화가 나서 창업을 했다.

나는 석사과정 대학원생이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연구 이외의 시간을 웹 서비스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대학원 과정 동안 살 첫 전셋집을 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시스템이 있는지 많은 의문이 있었다. 그런 의문에 스스로 내린 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증해보고 싶었다. 1년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팀을 꾸리고, 사업을 구체화하고, 지원을 받고 구현하는 단계까지. 그렇게 만들어진 AI 전세계약 진단 체크리스트 ‘깡전킬러’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번 글은 깡전킬러의 아이디어, 즉, 전세 제도에 관한 나의 의견이다.




첫 전세계약


나는 2년 차 회사원이었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기회들로는 나의 무궁무진한 꿈을 펼치기 택도 없을 것 같았다. 많은 사회초년생들이 그렇듯, 나는 더 많은 배움을 찾아 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의 목적지는 대전이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도 있겠다, 생활비를 조금이나마 아껴보고자 월세가 아닌 전세로 대전에 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전세사기로 전국이 떠들썩해지기 직전인 2021년 12월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한 집


어차피 잠깐 살다 가는 것이니 만큼 큰 예산을 들이고 싶지 않았고, 또 살림살이를 늘어놓고 싶지 않아 보증금 1억 이하의 저렴한 원룸을 알아보았고, 이 조건 안에서 가능했던 것은 다가구주택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단순히 계약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알아보니 전세는 여러 가지로 따져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선순위채권, 근저당, 경매낙찰가 등등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했다. 한마디로 ‘집주인에게 신용문제가 생겼을 때,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었다.


내가 받은 돈을 어디에 뒀길래 돌려주지 못한다는 것일까? 나는 그때 깨달았다, 항상 돈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소유한 건물을 담보로 한 대출과 더불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까지 얹어서 진행하는 고도의 레버리지 투자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세입자가 되니 더욱 실감 나는 부분이었다.



집주인이 파산하는 최악의 경우, 돈을 돌려주는 방법은 경매를 통해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을 파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렇게 주택이 경매를 통해 낙찰되면, 그 금액을 배당금이라 한다. 주택에는 세입자 말고도 얽혀 있는 다른 권리 관계들이 있어, 이 관계들의 우선순위에 따라 배당 순서가 결정된다. 나의 경우는 주인 1명이 15명의 세입자를 거느리고 있는 다가구 주택이었기 때문에, 얽혀 있는 관계가 특히 더 복잡했다.


나는 특히 출퇴근을 하면서 주말에 대전에 내려가 집을 보러 다녔기에, 적은 정보로 결정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바쁘다는 이유’로 무책임하게 구는 공인중개사의 불친절도 겪어야 했다. 갓 사용승인이 된 신축 주택에 대해 중개사에게 3순위로 계약할 수 있도록 조율해 달라는 약속을 했지만, 그다음 주말이 되어 계약을 하러 왔을 땐 이미 6순위로 밀려 있었다. 다들 입금을 먼저 해버려서라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와서 3자 대면으로 계약서를 쓰는 순간에 들어야 했다. 당시에는 이보다 더 나은 조건은 없고, 6순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이것이 패착이었다! 나는 이후 전세사고를 당하게 된다.). 심지어 잔금 이후 전입세대 열람원을 조회해 보았을 땐, 사실상 전입 순서가 10순위였다. 책임감 있는 중개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곰곰이 곱씹을수록 의아한 점이 많다. 은행에서는 대출을 위해 개인의 신용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받아 이 사람이 과연 돈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인지 진단한다. 세입자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건네고, 이자를 받는 대신 거주할 권리를 얻는다는 점에서 대출과 다를 바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임차인이 임대인의 신용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도 제한적이었다. 세입자가 이를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1) 체납 세금 열람하기, (2) 안전하게 배당을 받을 수 있을지 따져보기


(1) 번의 경우는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이 전세가 위험한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적어도 세금을 못 내는 사람의 건물엔 들어가지 않도록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2) 번의 경우가 핵심적인 사항이었다. 하지만 경매에서 건물이 얼마에 낙찰될지 단순계산으로 예측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방법은 주변 거래 시세를 보고 실거래가를 예측해 보고, 경매에서는 보통 실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니 80%에 해당하는 가액을 기준으로 경매 시나리오를 그려보라고 가이드해 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경매낙찰가가 60%가 될지, 90%가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오차가 1000만 원 단위로 커지는 이 방식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결국 가장 깔끔한 것은 근저당이 아예 없거나, 자신이 1순위인 집으로 가는 것이지만 적어도 학교를 도보권으로 갈 수 있는 집 중에 그런 집은 없었다(나는 자동차가 없었기 때문에 제약이 컸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이때라도 후회하지 말고 월세 계약을 했었어야..)



문제의식


이 계약을 통해 나는 세 가지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공인중개사를 믿을 수 없다.

우선 공인중개사를 함부로 믿을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공인중개사의 역할은 매수인과 매도인의 계약을 중개하는 것이다. 중개한다는 의미 안에는 물건의 퀄리티는 물론, 거래 시 발생 가능한 위험 등을 충분히 전달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순위에 대해 계속해서 다른 사실을 고지받았고, 이마저도 캐물어야 알 수 있었다. 빨리빨리 계약을 체결해서 회전을 높이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개사의 말은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아닌, 참고사항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임대인과 주택의 신용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미약하다.

앞서 언급했듯, 임대인과 주택의 신용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미약하다. 배당을 따져보는 위의 셈법은 오차범위가 너무 넓어 사실상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 저런 방식이라면, 차라리 위험을 아예 감수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선순위 채권이 없는 집을 찾아내거나, 월세로 들어가거나. 하지만 나처럼 옵션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약조건이 너무나 많은 상황이다.


이 모든 내용들은 상식이어야 한다.

계약을 할 당시 2021년 말은 연쇄 전세사고가 터지기 직전이다. 누구도 전세시장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찾아보고 계약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나는 일련의 조사를 하면서 이러한 임대차 관련 정보들은 상식 수준에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인천, 대전 등지에서 주택가의 전세 수요 씨가 마른 것을 보면, 더욱이 그렇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정보의 소스가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깡통전세인 집에 들어갔다. 그리곤 사실상 화가 나서 창업을 했다. 그렇게 책임감 있는 계약정보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웹서비스를 구상하게 되었다. 나와 같은 임차인들이 임대차 법률과 전세의 위험성을 쉽고 직관적으로 접근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아가 안전한 보증금의 범위를 파악하는 것은 AI가 해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AI기반 전세 심사 체크리스트 ‘깡전킬러’를 시작하게 되었다.

https://kkangk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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