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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자 Jan 24. 2024

뗏목에 함께 탈 파티원 구하기

나는 석사과정 대학원생이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연구 이외의 시간을 웹 서비스를 만드는 데 매진했다. 대학원 과정 동안 살 첫 전셋집을 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시스템이 있는지 많은 의문이 있었다. 그런 의문에 스스로 내린 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검증해보고 싶었다. 1년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팀을 꾸리고, 사업을 구체화하고, 지원을 받고 구현하는 단계까지. 그렇게 만들어진 AI 전세계약 진단 체크리스트 ‘깡전킬러’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번 글은 어떻게 깡전킬러를 함께 만들기 위한 팀이 만들어졌는지 회고한다.




EAFP, Easier to Ask Forgiveness than Permission. 대학원 생활 내내 꽂힌 코딩 개념이다. EAFP는 파이썬의 개발 방식으로, 에러가 발생한 구간에서는 검사를 수행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예외 처리를 한다는 의미다. 모든 게 낯설고, 도전이었던 대학원 기간 동안 EAFP는 나의 중심이었다. 안 되는 이유는 뒤로 하고, 일단 앞으로.


유세윤 유부남 콘텐츠


건축 디자이너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대학원에 오기 이전 나의 전공은 건축으로,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오피스, 상업시설, 문화시설 등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 건축은 인문학, 수익성, 디자인, 공학을 한 데 종합해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가치 있는 부동산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그 자체로 종합예술인 셈이다.


하지만 건축은 프로젝트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나면 끝이라는 점이 항상 아쉬웠다. 어찌 됐든 ‘용역’이기 때문에, 건물이 준공된 이후의 운영, 수익화와 같이 건물이 생명력을 갖게 되는 부분과는 철저히 업역이 분리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프로젝트는 정의가 제각각 달랐다. 누군가는 설계비가 큰 프로젝트를,  누군가는 시가총액이 큰 회사의 프로젝트를, 누군가는 건축상을 받은 프로젝트를, 또는 클라이언트가 까탈스럽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좋아했다. 달리 표현하면 성과가 계량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나는 건축의 프로세스 가운데에서도 제안을 하기 위해 가치를 발굴하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에게는 주어진 상황에서 논리를 정리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자원을 쏟아부어 만든 결과가 무생물이 아닌, 꿈틀거리는 생명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도메인을 도시・건축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로 옮기게 되었다. 건물이 아닌 IT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학생 신분 활용하기


대학원 기간 동안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학생의 신분으로 창업을 했을 때 지원받을 수 있는 여건이 더 넓고, 이에 따라 자금 리스크가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서비스를 0부터 100까지 구현하는 경험을 쌓기에 이만한 환경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논문은 거들뿐).


아무래도 대학원생이기에 시간을 100%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원의 일과는 부족했던 데이터 사이언스 지식을 채우고, 연구를 통해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주요한 창구였다. 코스웍에서는 데이터사이언스를 비롯한 인공지능, 추천시스템의 알고리즘을 배웠고, 연구실에서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나의 도메인인 도시・건축에 이를 적용하는 실습을 했다. 마지막으로 개인 연구는 창업 아이템과 연결 지었다. 그렇게 연구를 위해 수집되는 데이터가 창업 프로세스에 적용될 수 있게끔 했다.


계획은 정말 완벽했다. 여건 세팅이 되었으니 창업 아이템과 함께 할 동료만 있다면 사업과 연구를 굴리기 좋은 환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땅의 노예라고도 불리는 대학원생이었지만, 이렇게 두 일과 사이의 상호 연계를 만들어두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2년 동안 둘 다 감당은 했지만, 나는 번아웃으로 바사삭 타버렸다..)



너 나의 동료가 돼라


서비스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나는 함께 할 수 있을 동료들을 찾았다. 강제성이 있는 과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을 벌이는 일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일을 벌이고 완주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어야 했다. 나는 프로젝트의 주동자이지만 당장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이러한 자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경험을 함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어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수면 위에 올라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 높게 사는 친구들에게 창업 의사를 밝히고 다녔다. 개인적으로 믿을 수 있는 누군가에겐 목표를 밝히는 게 그 목표에 다가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뭐라도 시작하니까. (나는 이걸 도요토미 히데요시식 자기 계발이라고 부른다. 허풍을 떨고, 허풍을 주워 담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녔다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어느 만화책에서 읽었다..)


그렇게 대학원에서 정신없이 첫 학기를 보내던 2022년 7월, 국토부에서 주관하는 창업공모전이 떴다  (2022 스마트시티 창업공모전). 전세계약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의식들을 서비스의 형태로 풀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같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일반 창업공모전보다 도시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있어 보였다.


평일 오전 11시에 공고를 발견하고, 흥분한 나머지 점심도 먹으러 가지 않고 홀린 듯 사업계획서를 적어내려 갔다. ‘팀원’ 칸에는 희망하는 이름들을 무작정 적었다. 허락은 나중에 구하면 되겠지..(EAFP)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사업계획서를 완성한 날 각자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다.


사업계획서는 작성해 뒀어.
만약 1차가 통과되면 진지하게 같이 해보자!


두 친구들은 당황스러워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이름을 적는 걸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1년 반에 걸친 생고생이 시작되었다.




공모 1단계 통과


공모전은 총 3단계로 나뉘었다. 아이디어 제안인 1단계를 통해 1차를 뽑고, 2단계에서 사업계획서를 구체화 함으로써 20개 팀을 뽑았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 IR 피칭을 통해 최종 투자를 결정하는 식이었다. 1등에게는 5천만 원, 2등에게는 3천만 원이 돌아간다. 우리의 제안은 심사과정을 통과해 20개 팀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 타당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VC 멘토링도 받을 수 있었다.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를 손에 넣은 것이다. 미약한 가능성을 근거로, 평소 존경하던 연구실의 동생까지 설득해 팀을 완성했다.



깡통전세박멸단


공모전에 제출한 우리의 팀명은 ‘깡통전세박멸단’이다. 그만큼 깡통전세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실했고, 우리의 설루션이라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막무가내로 모신 ‘깡통전세박멸단’의 팀원들은 초빙한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팀의 섭외 0순위는 쭈꾸미였다. 쭈꾸미는 나의 입사동기로, 서로 가치관과 관심사가 비슷해 막역하게 지내온 사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느끼는 공허함을 채우고자 퇴근 후 여러 번 일을 함께 도모한 경험이 있었다. 대부분은 흐지부지 끝을 보지 못했지만, 퇴사 직전 참여했던 부동산 사업아이디어 공모에서 성과를 올린 경험이 있었다. 부동산과 데이터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이전에 아이디어를 나누고, 제안서를 디벨롭하는 일련의 합이 잘 맞는 친구다. 사업제안서를 작성하고 가장 먼저 전화를 건 사람도 쭈꾸미였다. 쭈꾸미는 흔쾌히 동의를 해 주었고, 이 프로젝트의 PO로써 서비스 기획 전반과 마케팅을 담당했다.


뀨앙은 대학동기로, 당시 스타트업에서 풀스택 개발을 하고 있는 친구로, 논리적 정합성으로 무장되어 있으면서도 똘기가 넘쳤다(깡전킬러라는 서비스명도 뀨앙에게서 나온 것!). 뀨앙은 당시 스스로 여러 가지 서비스들을 개발하는 실험들을 하고 있었다. 혼자 하다 보니 개발보다 기획과 디자인에 더 많은 시간이 투입되는 아이러니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처음 제안을 했을 때 뀨앙은 서비스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에게 윈윈이 되지 않겠냐는 감언이설로 뀨앙을 설득해 팀의 개발자로 모셨다. 스타트업에서 풀스택으로 개발해 왔던 뀨앙의 경험치는 어마어마했다. 개발은 물론, 어설펐던 서비스 초안의 구조, 디테일까지 보기 좋은 UI로 세공하는 능력까지 겸비해 최종 프로덕트의 완성도를 담당한 장본인이다.


두콩은 도시공학과 컴퓨터과학을 복수 전공한 연구실 옆자리의 능력자 동생이었다. 두콩은 육각형 인재였다. 두콩은 논리적일 뿐 아니라 그 이야기가 흥미롭고 중요하게 들리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있었다 (카이스트에는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것을 매력적으로 이야 가희는 사람은 드물다). 또 지적 호기심이 넘쳐서 IT, 도시, 인문, 사회를 넘나들고 연결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옆자리에서 코딩, 통계 개념들을 알기 쉽게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는 순간들에 결정적으로 매료돼 ‘지독하게 엮여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동생이었기에 처음부터 제안하기 망설여졌었다. 그래서 기회가 제대로 주어진 2차에서 두콩을 섭외하게 되었다. 두콩은 프로젝트의 데이터 엔지니어로 건축물대장 데이터를 가공하고 지도화하는 작업을 할 뿐 아니라, 기획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우리 배는 출항했다. 배라기보다는 바람 불면 엎어지는 뗏목에 가까웠지만, 발이 젖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장사 네 명이 출항을 해 보았다. 우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는 결연한 마음으로.




팀워크


나를 포함한 쭈꾸미, 뀨앙, 두콩은 공동창업자로 25%씩의 지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깡전킬러는 부업이었고, 무엇보다 멤버들이 서울과 대전 각지에 흩어져 있었기에 반기에 한 번 갖는 모임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비대면으로 일하는 것에 불신이 있었지만, 깡통전세박멸단과의 경험으로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감히 평가하는 것이 가소롭지만, 앞서 나는 팀원들에게서 ‘스스로 일을 벌이고 완주해 본 경험’이 있는지를 보았다. 그런 경험이 풍부했던 팀원들로 구성된 깡통전세박멸단은 기초체력이 높은 집단이었다. 각자가 주장하는 내용과 근거가 탄탄했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았다. 그런 자질들 덕분에(때문에) 퇴근 후 진행하는 미팅은 세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타협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하달하는 회의가 아닌, 의사결정을 도출하기 위한 회의가 1년 반동안 매 단계마다 이루어졌다. 진정으로 협업의 감각을 체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팀워크에도 불구하고, 깡전킬러 서비스는 아직까지 유저 피드백을 받는 수준으로도 디벨롭되지 못했다. 많은 이유에서 어설픔이 가득한 서비스이다. 그 이유는 팀 전체의 목표가 ‘사업을 만드는 것’이 아닌 ‘서비스를 만들어 보는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서비스를 론칭하고 유료화하기까지 버티는 창업가들을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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