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영화, 엘도라도]
만화에 꽂혀 살던 어린 시절, 엘도라도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두 남자 주인공이 황금 도시 엘도라도를 향해 떠나는 모험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며 그때는 단순히 ‘아, 지구 어딘가에 저런 황금 도시가 있으면 멋지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스페인어를 공부하며 엘도라도가 스페인어로 ‘황금으로 된 (El Dorado)’이란 뜻임을 알게되었다. 또 영화가 스페인 사람들의 아스텍 제국 정복과 황금 찾기에 몰두했던 과거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것도 깨달았다. 이를 반영한 탓인지 영화 속에선 실제 스페인의 정복자였던 코르테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엘도라도. 과거 스페인 사람들이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황금의 땅 엘도라도는 과연 실제 존재했던 곳이었을까?
[엘도라도의 모티브가 된 무이스카 족]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상상했던 '황금으로 뒤 덮인 엘도라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미 지역이 아무리 황금이 많았던 지역이었다 해도, 현실적으로 모든 도시가 황금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존재할리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이 엘도라도의 모티브가 된 부족은 있었다. 바로 지금의 콜롬비아 보고타 지역에 존재했던 무이스카 족의 이야기다. 흔히 세계 4대 문명을 이야기하듯이, 역사학자들은 중남미 대륙의 4대 문명을 꼽는다. 여기서 말하는 중남미 4대 문명이란 페루의 잉카제국, 멕시코의 마야와 아스텍, 그리고 콜롬비아의 무이스카 제국을 일컫는다. 비록 다른 문명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무이스카는 중남미 대륙에서 그만큼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있던 부족이었다.
그런데, 중남미에 존재했던 수많은 부족들 중 왜 하필 무이스카 족이 황금의 땅 엘도라도의 모티브가 되었을까?
이는 무이스카 족들의 종교 의식과 관련이 있다.
무이스카 족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해 보고타 근처에 위치한 구아타비타 호수 (Laguna de Guatavita)에서 의식을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아스텍 문명에서 피라미드 위에서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했던 것과 비슷한 의식이었다. 온몸을 황금으로 장식한 종교장 (스페인어로 카키케- cacique 라 불리는)이, 황금으로 장식된 뗏목을 타고 구아타비타 호수에서 세리머니를 진행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황금과 에메랄드를 호수에 던지며, 무이스카 족의 번성을 기원했다. 뗏목이 호수 중앙에 도착했을 때, 육지에서 의식을 지켜보던 무이스카 사람들은 일제히 준비된 황금가루를 호수에 뿌리며 자신들의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이 세리머니를 묘사한 ‘황금 뗏목’은 현재 보고타에 위치한 황금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해 성스러운 용도로 사용된 무이스카 족의 황금과 에메랄드. 하지만 이는 곧 보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스페인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콜롬비아 해변가에서 머물며 황금을 찾던 스페인 정복자들은, 소식을 듣자마자 무이스카 족을 찾기 위해 안데스 산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무이스카 족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고, 결국 무이스카 문명은 1540년에 이르러 종말을 맞게 된다.
[황금의 눈이 먼 자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도시]
중세 유럽 시절,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다녀온 이야기를 쓴 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의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한 적이 있다. 갖가지 만물이 존재한다는 동방견문록 이야기가 유럽인들의 중국 여행을 부추겼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엘도라도 역시 스페인 사람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도시였다. 무이스카족의 황금 의식이란 팩트 위에 온갖 과장이 덧붙여진 덕분이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그곳이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헛된 희망은 그들이 황금을 찾아 남미 대륙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정복 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 땅의 주인이였던 수 많은 부족들은 유럽인들이 퍼트린 질병과 총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도라도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는 중남미 문명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는 점이다. 비록 엘도라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콜롬비아 무이스카 족들이 이룬 뛰어난 문명을 확인할 수 있다. 엘도라도라는 단어는 결국 무이스카 족들의 신성한 종교의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16세기 스페인 사람들의 탐욕이다. 성공과 벼락부자라는 꿈을 꾸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엘도라도라는 상상의 황금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황금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허구의 황금도시 엘도라도는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이 풍요로움, 그리고 이면에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양면성을 가진 단어로 역사에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