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이 유카탄 반도 동쪽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서쪽에는 메리다 (Merida)라 불리는 도시가 있다. 메리다는 앞서 소개한 바야돌리드처럼 마야와 유럽의 문화가 혼합된 도시다. 메리다 출신 사람들은 다른 멕시코 주요 도시와는 달리 마야의 전통이 살아있는 자신의 도시를 굉장히 사랑한다. 심지어 자신을 멕시코 사람이 아닌 유카테코 (Yucateco, 유카탄 반도 사람)라 소개할 정도다. 마치 미국 사람들이 자신 소개를 할 때 “캘리포니아 출신”, “텍사스 출신”이라 얘기하는 것처럼, ‘나라’보다는 ‘주’를 먼저 얘기해 정체성을 드러낸다.
메리다에서 마야와 유럽의 혼합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바로 언어다. 메리다 스페인어의 경우 마야어의 영향을 받아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도시 거리를 걷다 보면 당연히 스페인어가 들리지만 가끔씩 익숙하지 않은 마야어가 들릴 때도 있다. 우리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콩글리쉬를 말하듯이 메리다에선 스페인어인 에스파뇰과 마야어가 섞여 마야뇰 (Mayañol)을 쓰는 셈이다. 예를 들면 이구아나, 강아지를 말할 때 스페인어 단어 이구아나 (Iguana), 빼로 (Perro)를 사용할 수 있지만 메리다에서는 마야어인 똘록 (Toloc)이나 빽 (Pek)이란 단어를 쓰기도 한다.
메리다는 오랜 시간 동안 유카탄 반도의 경제적 중심지였다. 특히 20세기초부턴 에네켄 (Henequen) 수출을 바탕으로 도시가 빠르게 발전했다. 여기서 에네켄은 유카탄에서 주로 나는 식물로 섬유를 추출해 주로 노끈이나 밧줄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20세기 초부터 에네켄에 대한 전 세계적인 수요가 늘어나자 메리다에는 많은 자본이 흘러들어왔고, 중심지에 있는 몬테호 (Montejo) 거리에는 유럽 스타일의 고급 대저택들이 지어졌다. 지금도 몬테호 거리에 가면 저택들이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20세기 초 전성기 시절의 느낌을 기억하려는 듯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지나다니는 걸 볼 수 있다.
메리다 버스터미널에서 약 한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이사말 (Izamal)이란 조그만 마법의 마을에 도착한다. 원래 5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중간중간 조그만 마을들에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마을버스라 오래 걸린다. 가는 길 동안 일자로 쭉 뻗어 있는 도로, 그 옆에 있는 녹색 평원은 도시를 벗어나 점점 더 시골로 들어가는 걸 짐작하게 한다.
이사말의 첫인상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인구만 오천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관광객들이 붐비지 않는 한산한 곳이다. 마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이사말 광장 (Plaza Izamal) 주변에는 가끔씩 마차가 돌아다니고 한쪽에는 시장과 기념품 가게가 자리해 있다. 또 날씨가 워낙 덥고 습하기 때문에 그늘진 광장 주변 벤치에 사람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사말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이 간 건 단연 노란색으로 칠해진 건물이었다. 이사말은 유카탄의 노란 도시 (La Ciudad Amarilla de Yucatán)라는 별명답게 도시의 많은 집들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사실 이사말에 오기로 한 것도 인터넷에서 본 노란색으로 뒤덮인 마을 사진 때문이었다. 직접 본 이사말의 노란색은 햇빛을 받아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는데, 흡사 황금색과 가까운 색이었다. 사방이 노란색으로 되어있는 거리와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에 서있을 땐 어느 마을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한동안 노란색의 이사말 거리를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왜 모든 집들이 노란색으로 칠해졌을까?”라는 물음을 가졌다. 여기에는 여러 썰들이 존재하는데, 가장 먼저 그 옛날 마야인들이 섬겼던 태양의 신 키니치 칵모 (Kinich Kakmo)를 모시기 위해 노란색을 선택했다는 가설이 있다. 태양의 신을 상징하는 색이 노란색이고, 수확과 풍요, 번성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썰은 1993년 요한 바오로 교황이 이사말을 방문했을 때와 연관이 있다. 교황이 조그만 마을에 까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자 사람들은 마을을 좀 더 인상 깊게 꾸미고 싶어 했고, 바티칸 국기에 있는 노란색을 선택해 건물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노란색으로 덮인 이사말은 차별화된 풍경을 지닌 마법의 마을로 거듭나며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사말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명소가 있다. 바로 산 안토니오 수녀원이다. 이사말 도심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총 75개의 긴 아치를 그리고 있는 이 수녀원은 주변 건물과 마찬가지로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완만한 돌길을 올라가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며 우뚝 솟은 수녀원의 메인 건물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수녀원 안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마당은 스페인어로 아트리오 (Atrio)라 부르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규모라 한다.
1549년 세워진 산 안토니오 수녀원은 원래 마야인의 피라미드 팝-홀-착 (Pap-Hol-Chac)이 있던 곳이었다. 이사말은 치첸잇자나 욱스말 같은 마야 도시보다 훨씬 이전에 세워진 곳으로, 지금도 5개나 되는 피라미드의 터를 볼 수 있다. 기원전 7세기 이사말에 터를 잡은 마야인들은 마을의 영향력을 확장해 나갔지만, 마야 후기 시대 (Postclasic)를 거치며 세력이 약해지며 결국 자취를 감췄다. 16세기초 스페인 사람들이 처음 이사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폐허인 곳이었다. 이들은 흩어진 돌덩이를 이용해 마을 가장 높은 언덕에 산 안토니오 수녀원을 세웠고, 그곳을 가톨릭교를 전파하는 중심지로 삼았다. 500년에 가까운 시 간이 흐른 이 수녀원에는 한눈에 봐도 오래된 성인들의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으며, 메인 건물 한편에는 교황 2세가 다녀간 것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 있다.
디에고 데 란다
이사말에 산 안토니오 수녀원을 세운 사람은 디에고 데 란다 (Diego de Landa) 교주였다. 프란시스코 교파로서 원주민들의 개종을 위해 노력한 디에고 데 란다는 역사가들로부터 아이러니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다. 마야 문명의 기록을 모조리 불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야 문화에 대한 책을 쓰며 마야를 유럽에 알리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스페인에선 이단 심문 (Inquisición)을 실시한 역사가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가톨릭교 대신 유대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 종교 재판을 연 것이었다. 스페인에선 약 3백 년 동안 종교 재판이 진행됐는데, 그동안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단아로 판결을 받았을 만큼 스페인 사회의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16세기초,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이와 똑같은 이단 심문을 실시했다. 가톨릭교를 유일한 종교로 인정하고 신대륙에서 교회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스페인 당국은 마야인들이 믿는 종교를 이단이라 판단했고, 가톨릭과 관련되지 않은 다른 어떤 종교의식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하지만 마야 사람들은 감시를 피해 몰래 자신들의 행하며 자신들의 전통을 지켰다. 1562년 7월, 디에고 데 란다는 마야인들이 몰래 종교의식을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고, 마야인들이 간직해 온 문서를 비롯해 모든 물건들을 불태웠다. 역사적 가치가 엄청났던 마야 유산의 흔적을 모두 잿더미로 만든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디에고 데 란다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유카탄 견문록을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마야 사람들의 문화나 그들이 쓰는 언어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고, 유럽인들이 마야 문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과거 모든 기록을 불태운 사람이 마야 문명의 전도사가 된 셈이니 조금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아무튼 디에고 란다는 이사말을 비롯한 유카탄 지역 전체에서 가톨릭교가 자리 잡는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마야 문명을 억압한 인물로 남게 됐다.
마야인들의 피라미드
이사말에 있는 동안 꼭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마야인들이 세웠던 피라미드다. 사실 이사말하면 노란색 이미지가 워낙 상징적으로 자리 잡아 피라미드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사말에는 키니치 칵모 (Kinich Kakmo), 코네호 (Conejo), 이사마툴 (Izamatul), 하북 (Habuk)까지 무려 다섯 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이 피라미드 모두 이사말 안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방문할 수 있다. 다만 2022년 9월엔 코로나19와 복원 공사를 이유로 오직 키니치 칵모 피라미드만 방문할 수 있었다.
산 안토니오 수녀원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키니치 칵모 피라미드는 태양의 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마야 사람들은 이 피라미드에서 제물을 바치면 앵무새로 변신한 신이 내려와 바쳐진 제물을 가져간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신을 위한 신성한 장소였기 때문에 높이와 규모 면에서도 상당히 큰 편인데, 유카탄 반도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평평한 잔디밭 앞에는 돌무더기들이 널브러져 있고, 계단이 상당히 가파른 피라미드를 마주할 수 있다. 치첸잇자가 후손들에 의해 어느 정도 복원 되고 정돈된 모습이라면, 키니치 칵모는 비교적 마야 사람들이 버리고 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다. 총 8개의 층으로 되어있는 피라미드에 오르면 수녀원을 비롯해 노란색으로 물든 이사말 마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