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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ul 16. 2023

천연 우물 세노테와 마야 유적지가 공존하는 마을


마야인들의 유적지


2015년 마법의 마을로 선정된 툴룸은 플라야델카르멘, 칸쿤과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시내에는 식당과 카페들로 가득하고, 손님들을 태우고 바쁘게 움직이는 택시와 미니 버스들로 항상 시끄럽다. 최근엔 호텔존에 SFER IK 갤러리와 독특한 모양을 한 전망대도 생겨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툴룸 다운타운 거리 (사진: @숲피)


보통 마법의 마을 하면 그곳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무언가가 있다. 예를 들어 이사말하면 노란색 집들, 바칼라르 하면 호수가 떠오르는데, 툴룸 하면 해변가 바로 옆에 있는 마야 유적지가 가장 유명하다. 후기 고전 시대 (Post-Classic)에 속하는 1200년 전에서 1450년 전에 세워진 툴룸은 마야인들이 세운 도시로, 이전에는 자마 (Zama)라고 불렀다. 참고로 툴룸이란 단어는 마야어로 벽을 뜻한다고 한다.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툴룸은 마치 유럽의 중세 도시처럼 직사각형 모양의 벽이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는 다른 마야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툴룸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툴룸 유적지의 3대 건물


툴룸 유적지 입구에 도착해 나무로 둘러 쌓인 조그만 길을 지나면 가장 먼저 푸른색의 바다, 우뚝 솟은 야자수, 그리고 언덕에 세워진 건물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2층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마야인이 섬기던 바람의 신 에헤카틀 (Ehécatl)을 위해 만들어진 ‘바람의 신전’ (Templo del Viento)이며, 내부에는 신을 위해 재물을 바치던 조그만 제단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툴룸 지역을 지나는 강한 바람을 동반한 허리케인이 올 때마다 건물 꼭대기에 특별히 설계된 구멍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는데, 마야 사람들은 이를 위험 신호로 감지하고 미리 대피를 해 인명 피해를 줄였다고 전해진다.


툴룸 유적지에 있는 바람의 신전 (사진: @숲피)


바람의 신전을 지나 유적지 중앙 부분으로 가면 규모가 가장 큰 엘 카스티요 (El Castillo)가 나온다. 높이가 12m에 달하는 이 피라미드는 해안가 가까이 위치해 적의 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감시 역할을 했다. 또 이곳을 오가던 항해자에게 일종의 등대 역할을 했는데, 툴룸 해안가로 도달하기까지 산호초가 많아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다 쪽에서 엘 카스티요를 바라봤을 때 성벽에 두 개의 조그만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곳에서 빛을 통과시켜 항해자들이 난파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육지로 올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이는 엘 카스티요 (사진: @숲피)


마지막으로 툴룸에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은 프레스코 신전 (Templo del Frescos)이다. 미술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프레스코는 미술 기법 중 하나로, 석회를 벽표면에 바른 후 색이 들어간 물감으로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는 걸 뜻한다. 고대 마야 사람들은 코치니야 (Cochinilla)라는 조그만 벌레를 사용해 다양한 색을 냈는데, 프레스코 신전에 코치니야로 만든 붉은 벽이 남아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총 두 개의 층으로 되어있는 이 신전은 곳곳에는 마야인들이 섬겼던 신들의 모습이 남아있으며, 자세히 보면 꽃이나 옥수수, 과일 같이 신에게 바쳤던 제물의 그림도 볼 수 있다.


해변가에 위치한 툴룸은 과거 마야인들의 무역에서 중요한 허브 역할을 했다. 주로 옥, 흑요석, 직물, 도자기 같은 물건들이 툴룸으로 들어오고 나갔고,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경제가 발전하자 마을도 점점 규모가 커졌다. 툴룸의 전성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계속됐는데, 1518년 쿠바와 멕시코 남부 해안 지역을 탐험하던 스페인 정복자 후안 디아즈 (Juan Díaz)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규모의 툴룸을 본 뒤 “스페인의 세비야만큼 큰 도시였다”라고 감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노테 천국 


툴룸의 유적지, 넓게 펼쳐진 바다만큼 눈길을 끄는 건 세노테다. 참고로 툴룸 주변에 세노테가 워낙 많은데, 그 숫자만 수 십 개나 된다. 호수 마을 바칼라르의 세노테가 호수의 한 부분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었다면, 툴룸에는 우물 같이 생긴 것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유명한 세노테로는 그란 세노테 (Gran Cenote), 세노테 아술 (Cenote Azul), 도스 오호스 (Dos Ojos)가 있으며, 규모가 작거나 잘 알려지지 않아 사람이 적은 곳으론 세노테 수난하 (Xunaan-Ha)와 트레스 에스트레야스 (Tres Estrellas)가 있다. 만약 해변보다 유카탄 반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서 수영을 즐기고 싶다면 차를 렌트해 세노테를 테마로 삼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툴룸을 여행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툴룸 근처에 있는 세노테 (사진: @숲피)


툴룸을 비롯한 유카탄 반도 전체에 세노테가 많은 이유는 6천6백만 년 전에 떨어진 운석과의 충돌로부터 시작됐다. 직경 180km, 깊이 20km에 달하는 거대한 충돌구를 만든 이 운석은 원자폭탄 보다 몇 십억 배 더 강도가 심했고, 이로 인해 그곳에 살던 공룡뿐만 아니라 지형 전체를 바꿨다. 충돌구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오랜 시간 동안 바닷물 안에 잠식됐고, 지금의 유카탄 반도는 약 2백만 년 전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형은 물에 녹아 침식되는 특징을 지닌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오랜 시간 빗물이 석회암을 침식시키며 동시에 물이 찬 상태의 지하 동굴을 형성했다. 이후 수많은 시간 동안 지구 온도에 따라 동굴 속 수면의 높이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걸 수 없이 반복했고, 지금의 세노테처럼 천장이 무너지면서 마치 우물 혹은 싱크홀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세노테를 보면 지반이 내려앉아 생긴 반경이 다 다른 걸 알 수 있는데, 만약 반경이 넓다면 조금 더 오래된 세노테고, 반경이 좁거나 뚫려있지 않고 아예 동굴 형태인 경우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세노테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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