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다양함이 묻어나는 도시, 산 크리스토발

배낭 여행객들의 천국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성당 (사진: @숲피)

치아파스주는 멕시코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 물가가 낮은 편에 속한다. 관광으로 특화된 칸쿤, 툴룸과 비교했을 때 더욱 그렇다. 이러한 이유로 치아파스 도시 곳곳엔 배낭 여행객들이 유독 많이 보이는데, 그중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줄여서 산 크리스토발)는 ‘배낭 여행객들의 성지’라 불릴 정도다.

산크리스토발은 치아파스주의 수도인 툭스틀라 구티에레즈 (Tuxtla Gutiérrez)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도시에 도착하면 특유의 식민지풍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층 수가 높지 않은 오래된 건물들, 그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좁은 자갈길은 마치 18세기로 시간 여행을 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중앙 광장 앞에는 “여기가 도시의 중심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거대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사스 성당이 세워져 있고, 바로 앞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네모난 모양의 광장이 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해질녘 산 크리스토발 (사진: @숲피)

산 크리스토발은 도시 그 자체로 매력이 있지만, 주변 자연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선 정글과 산림이 많은 지리적 특성상 한 번쯤 가볼 만한 폭포와 동굴이 많다. 특히 수미데로 협곡 (Cañon de Sumidero)은 산 크리스토발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높이가 최대 1km에 이르는 절벽이 있는 수미데로 협곡은 그 사이로 그리할바 (Río Grijalva) 강이 흐르며, 조그만 배를 타고 여행하며 그곳에 사는 거미원숭이와 악어, 물수리 같은 동물을 볼 수 있다.

성스러운 행위로 여겨진 직물 짜기

산 크리스토발에는 각자의 전통 지키며 사는 다양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다. 시장이나 광장, 거리를 걷다보면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모두 마야인들이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지역마다 각자 조금씩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마야 세계의 직물 박물관 (Centro de Textiles del Mundo Maya)은 마야 원주민들의 다양한 문화를 살펴보기 좋은 곳이다. 박물관에는 소칠 (Tzotzil), 촐 (Chol), 트젤탈 (Tzeltal) 원주민들의 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과테말라에 살고 있는 키체, 익스칠레스 원주민들의 옷도 있다. 디자인은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패턴이 들어가 있으며, 한 땀 한 땀 짜내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보통 원주민들이 입는 옷을 우이필 (Huipil)이라 부르는데, 각자 부족에 따라 다양한 색과 패턴이 들어가 그들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박물관에는 평상시 입는 옷을 비롯해, 결혼식과 같이 특별한 날 입는 우이필 전시되어 디자인이 각 부족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마야 세계의 직물 박물관 (사진: @숲피)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과거 마야인들에게 직물을 짜는 건 우주론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신들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직물을 짜는 행위를 마치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성스러운 과정으로 봤다. 고대 마야인들은 달의 여신이자 풍요의 여신이기도 한 익스첼 (Ixchel)을 베직기에 앉아 천을 짜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마야 여성과 신을 동일시 함으로써, 직물 제작은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 깊이 있는 영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한 때 마야의 직물 문화는 스페인 식민 지배가 시작되며 전통이 끊길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소중한 유산을 잃지 않고자 했던 마야 여성의 노력 덕분에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고, 과거 그대로의 기법이 지금까지 이어져와 직물을 생산하는데 쓰이고 있다.

원주민들의 문화 엿보기

산 크리스토발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지나칸탄 (Zinacantán)과 차물라 (Chamula)란 마을이 있다. 두 곳 모두  원주민들의 독특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먼저 지나칸탄은 소칠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크고 화려한 꽃 패턴이 들어간 옷을 입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멕시코 사람들은 지나칸탄에 사는 사람들을 지나칸테코 (Zinacanteco)라 부른다.

지나칸탄 여성들은 품질이 뛰어난 직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을 공방에 들어가면 꽃무늬 패턴이 들어간 옷부터 2m가 가까운 엄청난 길이의 장식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모두 오랜 시간이 걸려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몇몇 작품들은 일 년 가까이 걸릴만큼 지나칸탄 사람들의 예술적 혼이 담겨있다. 공방을 운영하는 원주민 여성은 "최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값싼 직물들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면서도, “오랜 시간 이어져온 지나칸탄만의 전통 기법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나칸탄 마을에서 생산하는 직물 (사진: @숲피)

지나칸탄을 나와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엔 또 다른 원주민 마을인 차물라 (Chamula)가 있다. 꽃무늬가 지나칸탄의 옷을 대표한다면, 차물라 사람들은 검은색이나 하얀색 양털로 만들어진 옷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양털이 많이 장식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가격이 비싸며,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 교회 (사진: @숲피)

차물라가 유명한 건 마을 교회에서 행하는 독특한 종교의식 때문이다. 마을 한가운데는 바로크 건축 양식의 산 후안 바우티스타 (San Juan Bautista) 교회가 있다. 겉으로는 교회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의식이 치러진다. 우선 교회에선 기도를 할 수 있는 의자 대신 수 백개의 촛불이 놓여있어 연기로 가득하다. 또 바닥에는 소나무 잎이 깔려 있으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주문을 외우며 의식을 행한다. 의식을 행할 땐 닭의 목을 비틀어 희생시키거나 탄산음료를 마시는데, 이 행위로 봄에 있는 질병이 닭으로 옮겨가고 트름으로 악귀가 빠져나간다고 믿는다.

차물라 사람들의 행위는 혼합주의 (Syncretism)라 불린다. 쉽게 말하면 마야의 전통과 가톨릭 문화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다. 차물라 사람들은 자존심이 워낙 강했던 만큼, 가톨릭 종교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존 마야 원주민들의 믿음 위에 가톨릭 요소를 섞어 독특한 종교 문화를 탄생시켰다. 혼합주의는 교회를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지금도 교회는 커뮤니티의 자치성을 강조하는 마야 문화가 반영되어, 한 명의 신부가 운영하는 것이 아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블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 (사진: @숲피)

한편 지나칸탄, 차물라 이외에도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다. 멕시코에서 가장 큰 정글로 알려진 라칸돈 정글 (Lacandon Jungle)에 사는 하치 위닉 (Hach Winik) 원주민들은 소규모의 부족을 구성해 흩어져 살고 있다. 오랜 생활 정글에서 생활하면서 그들만의 전설과 역사를 간직해 왔는데, 라칸돈 정글과 부족 사람들의 이야기는 덴마크 출신 고고학자 프란스 볼롬 (Frans Bolom)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크리스토발 도심에는 식민지 풍 집을 개조해서 만든 나블롬 박물관 (Casa Na Bolom)이 있으며, 조용한 분위기에서 볼롬의 연구 기록과 함께 라칸돈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