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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Sep 10. 2023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멕시코 강의 도시, 팔리사다


브라질 아마존 밀림 깊숙한 곳엔 마나우스 (Manaus)라는 도시가 있다. 19세기말 자동차 바퀴에 필요한 고무를 생산하며 크게 발전한 지역으로, 브라질 내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미국의 골드러시 때처럼 마나우스엔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아마존 강을 통한 고무 수출이 끝도 없이 늘어나며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 동남아 지역에서 고무 생산이 시작되며 마나우스의 황금시대도 서서히 저물었다. 지금 도시 한가운데엔 당시 지어진 황금돔의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데, 과거 찬란했던 영광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강가에서 찍은 팔리사다 마을 (사진: @숲피)


멕시코에도 과거 강을 끼고 영광을 누렸던 도시가 있었다. 바로 팔리사다 (Palizada)라는 도시다. 팔리사다는 멕시코 남부 캄페체 주에 있는 곳으로, 2011년 마법의 마을로 선정됐다. 마을 이름과 똑같은 팔리사다 강을 끼고 있는 이곳은 웬만해선 여행하기 힘든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팔리사다를 방문할 수 있는 방법은 총 두 가지다. 하나는 시우다드 델 카르멘 (Ciudad del Carmen)에서 두 시간 정도 보트를 타고 강 물줄기를 타고 들어오는 법,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버스와 택시를 타고 육로로 들어는 법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던 고된 여정이지만,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이 주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팔리사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집들 위에 쓰인 갈색 지붕으로,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저녁엔 타들어가는 붉은색의 노을을 볼 수 있으며, 무더운 햇빛이 진 뒤 선선한 바람을 쐬러 나온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다.  


해 질 녘의 팔리사다 모습 (사진: @숲피)


팔리사다는 과거 마야인들이 거주하던 때부터 목재가 유명한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목재를 강물을 따라 카누를 타고 다니며 팔았고, 대신 카카오나 면화를 얻었다. 그러다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며 팔리사다 주변의 목재는 스페인 사람들의 차지가 됐다. 원래 그들은 이 지역에 황금이 없었다는 걸 알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목재가 생산된 다는 소식을 듣게 된 후론 아스텍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도 이곳을 탐험했고, 과거 마야인들이 사용하던 해상 교역 루트를 그대로 차지해 사용했다.


마르세유 타일 지붕들 (사진: @숲피)


스페인 사람들은 목재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로 판매했다. 해마다 수많은 함선들이 팔리사다에 들어와 수천 톤의 목재를 유럽으로 싣고 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팔리사다로 들어온 유럽 함선들에 벽돌이나 지붕에 쓰이는 타일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항해를 할 때 배가 지나치게 가벼울 경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밸러스트 (ballast)라 불리는 무거운 중량물을 배에 실어 균형을 맞춘 것이다. 과거 유럽인들은 타일이나 벽돌을 싣고 팔리사다에 도착했고, 중량물을 내려놓은 뒤 목재를 가득 싣고 갔다. 그렇게 남겨진 목재는 집들 지붕을 만들기 위해 쓰였고, 당시 사용된 마르세유 타일 지붕이 현재는 팔리사다의 상징으로 남게 됐다.      


한편 식민지 이후에도 팔리사다는 교역의 중심지 타이틀을 지켰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는 비야에르모사에서 출발한 증기선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러 상점과 유흥가도 자연스레 생겨났고,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이곳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도 꾸준히 있었다. 점차 인구가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목재 관련 일뿐만 아니라 주변 초원 제대로 흩어져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팔리사다 주변 지역은 목축업까지 발달하게 됐다.   


팔리사다의 골목길 (사진: @숲피)


팔리사다의 골목길 (사진: @숲피)


'강가의 진주'로 알려지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팔리사다의 명성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마을과 연결되는 도로가 생기면 서였다. 새로운 교통수단이 생기며 사람들은 더 이상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을 선호하지 않게 됐고, 북적이던 도시는 한가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여행 도중 시장 구경을 하다 만난 마을 주민 아저씨는 어렸을 때 봤던 큰 배들의 모습, 시끌벅적한 팔리사다의 풍경을 말해주며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과거의 모습을 회상했다. 흥망성쇠를 겪은 팔리사다의 역사를 알게 되면, 어딘가 모르게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차분하고 느긋한 분위기는 과거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시우다드 델 카르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팔리사다로 오게 된 한 마을 주민은 조용하고 친근한 마을 분위기 때문에 팔리사다로 넘어와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직 마르세유 타일만이 남아 과거의 빛나는 역사를 비추고 있지만, 팔리사다는 여전히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간직한 채 강가 옆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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