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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티너리 Jan 07. 2024

아보카도 때문에 살 곳을 잃어가는 수백만 마리의 나비들


멕시코시티에서 서쪽으로 3시간 15분 떨어져 있는 곳엔 안강게오 (Angangueo)라는 도시가 있다. 미초아칸 주에 위치한 안강게오 숲으로 빽빽이 뒤덮인, 지형이 가파른 곳에 산에 숨어 있는 마법의 마을이다. 과거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쓸모없는 땅’으로 여겼다. 그러다 18세기말 이곳에서 금, 은, 구리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소문을 들은 광부들은 이곳에 빠르게 정착했고, 1860년대엔 영국 광산 회사가 들어서며 제법 규모를 갖춘 마을이 됐다.


언덕에 들어선 집들이 인상적인 안강게오 (사진: @숲피)


안강게오 가장 큰 지형적 특징은 구불구불한 길이다. 멕시코 소도시에 가면 보통 격자 형태로 마을이 디자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 사람들이 마을을 세울 계획을 할 때 중심에 네모난 광장을 세우고, 그 주위로 성당과 관공서 같은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강게오는 마을 중심에 서있는 성당 부분을 제외하곤 대부분 언덕길로 되어있다. 애초에 계획된 도시가 아닌, 사람들이 몰려와 빠르게 형성된 광산 도시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전망대에 있는 광부 동상 (사진: @숲피)


안강게오 대표적인 볼거리는 마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벽화와 마을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다. 광산 마을답게 거리 곳곳에는 이와 관련된 동상과 그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강게오 또 다른 구경거리는 제왕나비 (Monarch Butterfly)인데, 곳곳마다 관련된 기념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비 동상이 있는 안강게오 광장 (사진: @숲피)


제왕나비 (사진: @숲피)


안강게오 볼 수 있는 제왕나비는 날개에 오렌지 색과 검은색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기도 평균 9cm 정도로 다른 나비에 비해 비교적 큰 편이다. 미국 동부와 중부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데, 가을이 시작되면 서서히 따듯한 멕시코로 넘어올 준비를 한다. 추운 겨울을 피하기 위한 제왕나비의 여정은 무려 4,800km나 되며, 수백만 마리의 나비들이 함께 날아 장관을 이룬다. 나비들은 멕시코 안강게오 근처에 있는 보호구역 (Reserva de la Biósfera Santuario Mariposa Monarca)에서 11월부터 3월까지 머문 뒤, 봄이 오면 다시 고향인 미국으로 넘어간다. 한 마디로 월동을 위해 멕시코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나비 보호구역 (사진: @숲피


만약 나비들이 추위를 피해 이주하는 것이라면, 멕시코에는 굳이 미초아칸 말고도 기온이 온화한 다양한 지역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미초아칸 주, 그중에서도 안강게오 선택하는 이유는 오야멜 전나무 (Oyamel Fir)와 연관이 있다. 안간게오 주변 지역을 차지한 이 나무는 제왕 나비의 겨울 체류에 이상적인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고, 무성한 잎사귀는 강한 바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호 역할을 한다. 또 새나 곤충 같은 포식자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데, 제왕나비들은 나무에 포함된 특정 화합물인 강심배당체 (Cardiac Glycoside)를 섭취해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한다. 이 화학물질은 나비 스스로는 소화가 가능하지만, 다른 생물들에겐 강력한 독성 물질과 같아 방어 수단으로 활용된다.


보호구역의 제왕나비들 (사진: @숲피)


보호구역의 제왕나비들 (사진: @숲피)


보호구역의 제왕나비들 (사진: @숲피)


한편 안강게오로 몰려온 제왕나비들은 다른 어디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관경을 만들어낸다. 멕시코 정부는 약 56,259 헥타르에 이르는 구역을 정해 나비를 보호하는데, 이 중 일부를 트레킹 코스로 만들어 나비를 볼 수 있게 했다. 트레일로 들어서면 나비들은 파란 하늘과 초록숲을 주황색 점들로 가득 메울 만큼 쉴 틈 없이 날아다니고, 양 옆에 있는 꽃과 나뭇가지에 빼곡히 앉아있는 걸 볼 수 있다. 또 숲길 정상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Silencio" (조용히)라는 표지판 사인에 따라 숨죽인 채 나비의 움직임을 감상한다. 하이킹 코스의 하이라이트 부분으로,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날아다니는 수백만 마리의 나비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약 2시간 남짓한 비현실적인 숲길에 있으면서, “지구상에 어떻게 이런 곳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최근 언론들은 나비 보호 구역이 위협받고 있음을 여러 번 경고하고 나섰다. 주된 이유는 기후 변화, 주변 도로 개발, 산림 파괴였다. 특히 산림 파괴가 주목할만한 부분인데,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아보카도를 재배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멕시코는 전 세계 아보카도의 절반을 생산하는데, 그중에도 미초아칸 주는 멕시코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아보카도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미초아칸의 아보카도 농장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나비가 머무는 숲은 존재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자연기금 (WWF) 연구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나비 수와 이들이 머무는 숲의 면적이 감소했다고 한다. 또 이들은 이런 위협적인 상황이 멕시코, 미국, 캐나다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과 연관이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멕시코 시장이 열리자 미국인들의 아보카도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는데, 미국인의 아보카도 소비량은 나프타 조약 이전에 비해 무려 3배나 높아질 정도였다. 수요가 늘자 멕시코 미초아칸 주에는 원활한 공급을 위해 더 많은 아보카도 농장이 생겨났고, 매년 겨울 이곳을 찾는 나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아보카도로 인한 환경 문제와 나비 보호구역’ 주제로 논문을 쓴 사엔즈 세하 교수는 “아보카도 농장으로 쓰인 삼림 면적 비율이 아직 높은 건 아니지만,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나비의 서식지 보호를 위한 더욱 강화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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