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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sungkyung Jul 05. 2022

슬픔은 눈물 전

2017년 07월 14일 오후 12시 48분

 언젠가, 할머니는 내게 절로 가고 싶다고 말하셨다. 그렇게 뒷좌석에 탄 할머니의 말에도 나는 자동차처럼 껌뻑껌뻑 운전만 했다. 어떤 심정으로 말했을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말했을까.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할머니가 이겨내야 한다며 돈 생각은 하지 말라며 할머니를 마지막까지 쏘아붙였다. 할머니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울면 멈추지 못했기에 나는 울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홀로 외롭게 살아왔을 것 같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 문득 외롭지 않았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나를 키우며 할아버지의 그리움을 지금까지 잊고 살았다고 답했다. 할머니의 삶에 나는 전부였다. 아버지 전화가 울릴 때마다 나는 방 문을 반쯤 열고 은연히 통화 내용을 엿듣는 행동을 하곤 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전화들이 이어졌지만, 평소와 다른 목소리의 그날 전화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나의 슬픔이 아버지의 슬픔이 될 것만 같아 슬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애써 태연한 척 통화를 끝까지 마치곤 항상 깊은 한숨을 내쉬곤 공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바위처럼 단단하던 아버지는 강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프시고 시간의 흐름이 피부에 와 닿도록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난과 역경이, 아픔과 슬픔이 인간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듯했다. 사방으로 흩어져 정리되지 않을 것 같던 수많은 상황과 말들이 그렇게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늘 이기적이었다. 아니, 내가 바라보는 인간은 늘 이기적인 존재였다. 어쩌면, 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날까지도 할머니에게 내가 하는 말이 들리고 내가 하는 말이 맞다면 손을 꽉 쥐어보라며 대답을 들으려 했다. 한심하다. 남겨진 건 많은 것이 내 탓이라 할 이유들뿐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연꽃 피는 7월, 절에 모셔졌다. 흰 장갑을 끼우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처럼 할머니는 내 곁에서 한지에 곱게 싸여 태어났을 때 크기로 다시 돌아갔다. 항상 나를 보며 지금 죽어도 아무런 후회 없이 갈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내게 말해왔던 할머니, 자식들 눈물을 원치 않으셨겠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가족들,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꿈속에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었다. 억울한 건 없는지, 편히 채비를 하셨는지, 나라는 손자 때문에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후회되는 건 무엇인지. 산자에게도 무언의 대답이 있듯이 그것 또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할머니와 떨어진 후 아픈 할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실 때, 할머니는 장롱 속에 감춰둔 액자 몇 개를 우리 집에 가져갈 거라며 챙겨달라고 하셨다. 함께 찍은 나의 졸업사진과 독사진들 이였다. 할머니는 내가 졸업을 할 때도 전역을 할 때도 상을 받을 때도 선물을 받을 때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땐 나도 할머니를 따라 울었다. 기쁨의 눈물. 나와 헤어진 후 액자에 담긴 사진을 보며 그리워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멈춰버렸다. 그렇게 할머니는 액자만 다시 돌려주고 하루 만에 본래 집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다니던 인천 고모네를 언제부턴가 삐진 척 가지 않은 것도 갖고 있던 귀중품을 모두 팔아 통장 안에 넣어 놓은 것도 스카프도 모자도 옷도 신발도 많던 할머니가 언젠가 한가지 옷만 입고 다녔던 것도 이불도 침대 포도 배게 닢도 손수건도 옷도 모두 냄새 없이 빨아 놓은 것도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슬픔은 눈물 전이었다. 할머니는 슬펐다. 우리는 모두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의 20년은 나의 20년이었고 나의 20년은 할머니의 20년이었다. 2017년 07월 14일 오후 12시 48분, 할머니는 내 곁에서 눈을 감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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