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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rita Oct 11. 2022

이해를 한다는 것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 걸까


살다 보면 가치관의 차이와 도덕률 등에 의해 어떤 사람을 혹은 그 사람의 의견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게 된다.

난 상당히 철학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또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국가를 옮겨 다닐 때마다 조금씩 성격이 변했다. 사람은 늘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듯이 새로운 국가에 가서 정착할 때,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소속감이 생겼을 때 그리고 떠날 때쯤 나의 성격은 자주자주 바뀌어갔다. 성격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그 상황에 대응하는 내 방식이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자주 말하는 mbti에 빗대어서 말하면 나는 외향적이지만 떠날 때는 내향형으로 나는 대체적으로 생각형보다는 느끼는 편이지만 새로운 계획에 앞서서는 생각하는 사고를 많이 쓰게 되었고 그건 요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그 누군가가 나보다 권위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행위를 이해하는 것이 편해진다.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그쯤으로 접어두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하는 행위가 나에게 불편함과 피해를 초래할 때 그 이해심은 용납되지 않음으로 변하게 된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도 그 사람마다의 사정이 있겠지. 우리 모두 자기의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한다는 것. 정말 아름다우면서 쉽지 않고 그럼에도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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