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11)
그들이 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그래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분노와 슬픔과 죄책감에 빠지게 만든 세상에서 우리는 잘도 살아간다. 사람이 사람을 잃는 세상, 노동이 노동을 잃은 세상, 법이 법을 잃고 강이 맑음을 잃는 세상에서, 도처가 죽음으로 가득하지만 애도와 슬픔에까지 정치성을 들이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