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무소속 페이지 (not-empty paige)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될 리가 없다는 그의 말처럼 퇴사 후에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직을 위한 퇴사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1년이라는 명목하에 결정한 퇴사. 글을 쓰겠다고 등록해 놓은 학원은 코로나19 2.5단계 격상으로 한 달여간 미뤄졌고, 살을 좀 빼겠다며 알아보던 스포츠센터는 전체 휴관을 결정했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퇴사를 무를 수도 없는데 주위에 모든 것들이 멈췄다.
외출을 삼가라는 문자가 끊임없이 왔고 나는 지침에 따라 오래도록 집에 머물렀다. 그동안 돈을 벌겠다며 방치했던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오래간만에 이불을 빨아 마른 볕에 펴 말리고, 컵라면이 아닌 끓인 라면을 점심으로 먹었다. 매일 집을 치우고 강아지와 긴 산책을 했다. 책을 조금 읽고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직장인 허언증처럼 나도 퇴사를 결심했을 때는 부풀어 있던 것들이 많았다. 단편 소설을 한 편 완성하고 브런치를 개설해서 내가 쉬는 1년을 기록해야지. 디지털카메라에 가득 담긴 강아지 영상을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스포츠센터를 다니며 5kg 감량을 하는 것 등등. 그런데 막상 마침표 찍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 반복하다 저녁 상을 차리면서, 영상 편집을 하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맥주만 하염없이 까다 저녁밥을 지으면서, 스포츠센터는 대체 언제 열리는지 홈페이지만 들락날락하면서 홈트레이닝으로 대체하는 때에도 무던히 시간은 갔고 지나가는 시간만큼 돈을 벌지 않는다는 사실이 온몸을 쓸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돈을 벌지 않는 만큼 무언갈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울감부터 밀려왔다.
오래도록 계획했던 무소속 삶이었는데 이렇게 내 시간을 쓸 줄 모르는 바보였다니. 계획에 없던 재택 아르바이트를 구해 늘 해왔던 대로 자본주의 삶으로 발을 걸쳤다. 아직은 스스로 내 시간을 쓸 줄 몰라 스케줄러를 쓰고 그에 맞춰 움직인다.
오전에는 느지막이 9시 30분에 일어나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유튜브로 요가를 하고 집을 치운다. 오후에는 짧게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강아지랑 짧은 산책이나 블로그 혹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계획대로 될 일이 없어 일을 그만 두기 전부터 적어놓은 콘텐츠는 모두 무시하고 막연하게 글을 쓴다.
잘 쓰려고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하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글을 올린다는 생각으로 무소속 페이지를 개설했다. 앞으로 어떤 재미없는 일들을 쓸지 모르겠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월요병을 앓고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내면서 어떻게 시간을 꾸려나가야 할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넋두리 같은 페이지가 되겠지만 그래도 적겠다. 꾸준히 적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