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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Dec 23. 2020

서른둘의 마지막 달은, 돈을 아껴야 한다.

무소속 페이지 (not-empty paige)

퇴사한 지 4개월 차로 접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버텨왔던 재택알바는 끝이 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계획하고 멈춰놓은 시간이라고 아무리 합리화를 해봐도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회사 일을 하는 동안에는 회사 일을 하고 있으니까, 라는 말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눈을 감았다. 회사 일만으로도 꼿꼿하게 버티기 쉽지 않았으니까. 일을 하는 동안은 무언갈 애쓰지 않아도 내 시간에 대가가 화폐로 전환되었다. 대신 반려견이 아파도 주말로 미뤄야 하고, 더러워진 집은 못 본 척하는 것이 마음 편하고, 건강한 식단보다는 간편한 식사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날들이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도 지하철에서 앉을자리를 찾는 나를 보다 보면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무엇이 먼저인지 모를 삶 같아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워졌을 때 또 나는 퇴사를 했다.


이번 퇴사는 전과 달랐다. 1년 동안 외국을 가는 것도 아니었고 이직을 위한 퇴사도 아니었다. 무엇이 먼저인지 찬찬히 들여다보겠다는 다짐, 내 시간을 꾸려보겠다는 마음. 그렇게 결심하고 던진 사표였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흘러가는 대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형태가 없는 것들을 쌓아 올리기엔 내가 너무 익숙하지 않다. 그 사이로 불안이 틈 없이 파고들었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물음,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의문. 내게 묻던 질문이 무서워 '조금이라도 돈을 버니까'는 핑계로 아르바이트 장막 안으로 들어갔던 것인데 그 장막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다시 무엇이 먼저인지 찬찬히 들여다봐야 하는데 무엇이 아무것도 없을까 봐 두렵다. 물론 내 시간을 쓰고 있는 지금은 반려견이 아프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고, 잘 정돈된 집에서 요가를 하고, 한식으로 차려진 건강한 밥을 먹고 있다. 어느 날은 이 정도면 괜찮다 싶다가도 어느 날은 미칠듯한 불안에 시달린다. 누군가 퇴사를 하겠다고 하면 잘 생각해보라고 하지만, 나에게 후회하느냐 물으면 아직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직은 오래도록 들여다보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8개월. 더 이상은 이런저런 핑계로 글 쓰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덧붙여 다짐한다. 이 감정, 이 상태 그대로 적고 잘 쓰려고 애쓰지 않겠다. 서른둘의 마지막 달, 돈줄이 끊어졌으니까 당분간은 더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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