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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Nov 18. 2021

40+6일, 초산 유도분만 출산 성공 후기

스쓰일 002

뚝딱이의 예정일은 9월 8일이었고, 개인적인 일정들로 나는 9월 중순쯤에 아이를 낳고 싶었다. 자연분만을 고집하던 내게 날짜를 정할 수는 없겠지만, 인생에 딱 한 번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분만을 통해 극강의 고통을 경험을ㅡ다들 내게 변태라고 했다ㅡ해보고 싶었다. 별 다른 이벤트 없이 무난하게 9월 8일을 넘겼다. 다만 예정일을 넘기니 병원을 자주 가야 하는 이벤트가 생겼고 초앤유 산부인과 조원장님의 수심이 깊어졌다. 아이가 오래 배 속에 있을수록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와 생각보다 아이가 너무 위에 있어서 자연분만이 쉽지 않을 거라 말을 들었다. 원장님은 유도분만을 권했지만 태동검사 때 아이의 반응이 나쁜 편이 아니라 고민을 하시길래 나는 덥석, 조금 더 기다려달라 말했다. 9월 13일을 넘기고 싶었던 나는, 그제야 조금씩 격정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유도분만을 하지 않았을까? 알 수 없지 뭐. 이슬은 일주일 전에 비췄지만 별다른 신호는 없었다.

진통어플을 켜놓고 먹는 의지!

그러다 아주 미세한 가진통이 9월 14일에 시작됐다. 15일이 유도분만 날이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진통으로 남편 역시 갑자기 연차를 썼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전에 계획한 대로 병원 가기 전 이삭토스트를 먹었고 보보(반려견)를 할미 가게에 맡겼다. 보보를 이주 넘게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안 떨어지는 발걸음으로 보보를 맡기고 병원에 갔다.

* 이런 일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보보의 첫 만남은 나였지만 ㅡ그래서 그런 건지, 산책은 내가 도맡아서 그런 건지 보보에게 일 순위는 나인듯하다(?)ㅡ 평일은 대부분 보보 할미가 보보를 맡았다. 그래서 보보는 우리 집만큼 보보 할미 집도 익숙하다. 보보 할미가 워낙 잘해주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친정집에 보보가 있었다. 아이를 낳을 예정이고 반려견을 키운다면 미리 맡길 곳에 자주 가고 그곳에서 미리 같이 자면서 적응을 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남편에게 이 정도로 정신이 말짱하면 진통이 아니다 라는 말만 계속했다. 초산 유도분만은 실패 확률이 높다고 하기도 하고 조원장 님도 배 속의 아기 위치로는 유도로도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진 시 자궁문은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유도를 해보겠느냐 물으셨다. 실패할 확률은 여전히 높다고 그래도 해보겠다고 했다.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길고 생생한 그 당시 상황을 전한다. 1시경 입원 수속을 밟았다. 유도분만 실패 시 제왕절개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보호자는 꼭 있어야 한다. 기본정보를 확인하고 병원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관장을 했다. 잘 참았다고 생각한 시간이라고도 말하기 부끄러운 7분. 1시 30분경 양수를 터뜨렸고 양수를 터뜨림과 동시에 촉진제, 무통주사 1차를 맞았다.

무통주사를 맞으려면 척추에 바늘을 꽂는다. 유튜브 영상으로 여러 번 접했지만 직접 겪으니 생각보다 무서웠다. 움찔하면 안 된다는데도 절로 몸이 반응했다. 침착하게 맞아야 해, 하고 움찔거리는 몸에 바늘이 들어갔고 싸-하게 시원함이 뼈 마디에 느껴지더니 그다음부터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무통 천국. 한 시간쯤 지나면 무통빨(?)이라는 것이 사라지는데 저절로 후하후하, 하게 되는 아픔이 찾아온다.

* 꼭 남편이랑 함께 출산 호흡법 영상 보면서 연습하길 권장한다. 진짜 도움이 많이 된다.

배에 태동검사할 때 착용하는 기계를 다는데, 수축을 표시하는 기계에 숫자 60(UC)이 넘으면 몸이 비틀리는 고통이 찾아온다. UC는 수축 수치인데 90 넘는 고점을 찍고 나서 숫자가 훅- 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리통 정도의 아픔만 남는다. 의학이 발달했는데 참을쏘냐, 3시 10분경 2차 무통주사 그리고 4시 45분경 3차 무통주사를 맞았다. 나는 더운지 땀을 많이 흘렸고,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기억이 없다. 무통주사는 1시간인가, 1시간 10분 간격으로 맞을 수 있으므로 나는 대충 눈에 보이는 몇 분을 참고 바로 무통주사를 외치는 편이었다. 고통 시름.

저녁 6시 30분, 벌써 다섯 시간이 넘었네. 이번에도 무통주사를 외쳤다.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이 3번째 무통주사라 원장님 내진 후에 추가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했고 내진 결과 '자궁문이 많이 열린 상태'라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시며 무통주사를 허락해주셨다. 할렐루야, 무통주사 4차. 간호사 선생님들의 내진이 계속됐지만 무통 때문인지 하반신 쪽에 감각이 없어서 아픈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이러다가 아이가 안 내려와서 제왕절개 해야 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너무 걱정됐다. 혈압도 재고 소변줄로 소변도 빼고 그 사이 시간을 흐르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간간히 힘주는 법을 알려주셨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산모도 아이도 힘드니 힘을 줘보자고 한다.

8시경 간호사 선생님들과 여전히 그러나 조금 더 심도 있게 힘주기 연습을 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내려올 수 있도록 진짜 많이 도와주셨다. 7시간을 넘게 지켜보느라 힘드셨을 텐데 잘하고 있다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그 순간에도 어찌나 감사하던지 진짜 이 자리를 비롯하여(?) 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다시 돌아가서, 8시 15분부터 무통주사를 더 이상 맞지 않고 진통을 느끼며 힘을 줘보기로 한다. 큰 일을 하는 것처럼 힘을 주라는데 솔직히 똥 쌀 때 주는 힘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저 힘을 주라니 힘을 주고 또 힘을 주고 그랬지, 뭐. 9시까지 힘주기와 내진의 반복 9시 30분경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내려왔으니 드디어 자연분만을 시도해보자고 하셨다.

어렴풋 아이 얼굴이 골반에 걸려 안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그 사이 내가 숨을 안 쉬었는지 선생님들이 숨 쉬라고 아이 심장박동수 떨어진다는 말이 들려왔다. 남편이 옆에서 호흡을 알려주고 산소호흡기 착용. 간호사 선생님들이 또 아이에 위치를 봐주셨고 9시 45분경 간호사 선생님 4분이 들어오고 원장님도 들어오셔서 분만 준비를 시작했다. 9시 55분경 힘을 더 줘보자고 옆에서 다 같이 말씀해주셨고 더더더! 힘주세요! 하는 말과 함께 정각 10시에 3.07kg 출산을 하였다. 감격! 남편이 탯줄을 잘랐고 영상을 바로 찍으면서 손가락 발가락 입천장, 산모 이름 출산한 날짜 시간을 다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팔찌를 나와 뚝딱이가 나눠꼈다.

드라마처럼 소리 지르는 일도, 아이를 보자마자 눈물이 흐르는 일도 없었다. 그저 끝났다, 내가 애를 낳았고, 이 정도의 기분이 들었다. 출산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엄마가 참을성이 강하다. 아이보다 엄마가 더 고생했지'라고 말해주신 조원장 님의 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병원이었으면 제왕절개 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어려웠던 유도분만이었다.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었던 내게 #초앤유 여성병원 은 정말 잘 선택한 분만병원이고 추천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10시 30분경 모든 처치가 끝나고 나니 속이 메슥거렸다. 남편한테 토할 것 같다고 하니, 간호사 선생님이 봉투를 주셨고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모두 게어냈다. 오랜 시간 동안 뭘 먹지도 못하고 힘들어서 종종 토하는 산모도 있다고 했다. 11시쯤 입원실로 이동ㅡ간호사 선생님이 병원 침대 채로 이동시켜 준다ㅡ했고 나는 자연분만이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와중에 사진을 찍었다니 대단..!

너무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미역국에 밥 말아서 물김치랑 먹었다. 몇 숟갈 먹진 않았지만 이때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내게 남은 무통빨(?)이었던 듯하다. 출산 후 간호사 선생님이 새벽 3시까지 소변을 보라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아서 소변을 빼주셨고 다음날 9시까지 소변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주셨지만 난 해내지 못했다. 하아, 결국 소변줄행. 진짜 수치스러웠는데 조원장 선생님 회진 때 일반 산모 30% 정도 소변줄 낄 수도 있다고 괜찮다 위로해주셨다. 역시 부천의 친정아버지심. 여러분 걱정 마세요 시간 지나면 소변, 대변 가능해집니다. 물론, 소변이 잘 나오는 약을 처방해주셨음! 나는 빈혈 수치는 없었지만 출산 다음날에 오래 서있으면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워 대체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회음부와 항문이 너무 아파서 진통제 주사를 계속 맞았다. 조원장 님이 아프면 참지 말고 진통제 주사 맞으라고 했다. 발전한 의학기술에 감사하며 열심히 주사를 맞았다.


서는게 너무 힘들어서 앉아 있었다

신생아실에 가면 아이를 볼 수 있는데 나는 너무 아파서 아이를 보고 싶다, 아기가 너무 예쁘다!라는 생각보다 자연분만했는데도 이렇게 아프다니!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무통빨이 끝나자 회음부와 항문이 너-무 아파서 앉아있는 게 고통이었는데 신생아실에서 수유까지 하려니 죽을 맛. 유축도 잘 되진 않았다. 그래도 간호사 선생님들이 산모 컨디션을 배려해주고 산모가 제일 힘들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서럽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진짜 간호사 선생님들 못볼꼴 많이 보여드렸는데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또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자연분만은 2박 3일 입원이다. 나는 2박 3일 중 첫날, 밤 10시에 출산하여 1박을 보냈고 이튿날은 거진 쉬고 누워있다가 모유수유랑 유축 수업, 퇴원 교육받으니 하루가 끝. 다음 날은 오전 퇴원 수속으로 출산 기록이 마무리된다. 아기가 태어난 지 56일이 지나니까 출산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거의 출산 직전에 간호사 선생님한테 '저 진짜 못하겠는데 애 낳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할 정도로 아팠는데 기억이 안 나다니, 이래서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하나보다. 허허, 기록을 하여야 해. 초앤유 여성병원은 조리원이 같은 건물에 있어서 증맬루 좋았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조리원까지 오셔서 진통제를 계속 맞을 수 있는 것. 할렐루야! 조리원의 긴 이야기도 (언젠간) 추가로 작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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