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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Nov 25. 2021

너넨 이렇게 따뜻한데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건지

스쓰일 004

아팠던 날은, 63일 뚝딱이 접종 날이었다.

뚝딱이가 태어난 지 50일 넘어가면서 밤에 한텀은 4시간 정도 자기 시작했다. 무리하면 안 됐는데, 영화 <소울>이 너무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새벽 2시 30분쯤 잠이 들었고 1시간가량 후 밤수 때문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2시간 텀으로 밤수하 고나니 8시. 20분 쪽잠을 자고 접종 때문에 반차 쓴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소아과에 도착하니 코로나로 보호자는 1명만 들어올 수 있다고 하여 육아에, 뚝딱이의 하나하나에 관심과 열정이 많은 남편을 보호자로 미뤄 넣고 나는 밖에서 다른 남편들과(?) 서성이며 접종이 끝나길 기다렸다. 차로만 이동할 터라 얇게 옷을 입고 갔는데 좀처럼 접종이 끝나지 않았다. 몸이 추워지길래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갔다. 따뜻한 라떼를 시키고 블로그에 쓸 글들을 정리한 지 1시간이 됐을까, 그제야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남편 커피를 준비하고 카페를 나섰다.

생각보다 늦어진 접종과 뚝딱이의 칭얼거림을 혼자 오롯이 겪어야 했던 남편은 약간 예민해졌고 나도 덩달아 예민해진 상태로 차를 끌고 집에 갔다. 남편은 시간이 많지 않아 라면을 끓여 대충 먹고 출근했고 집에 오자 보채기 시작하는 뚝딱이 때문에 나는 라면 두 젓가락 얻어먹고 말았다. 아이를 달래고 수유를 하고 재우는데 3시쯤 몸이 으슬으슬 춥고 떨리더니 배가 아파왔다. 화장실에 다녀오고도 식은땀이 나고 나아지지 않아서 친정엄마한테 매실액 좀 챙겨달라고, 남편 퇴근하면 보내겠다고 연락했다. 엄마는 엄마. 전화받자마자 가게 문 닫고 매실액 들고 오셔서 매실을 타 주시고 유유히 떠나심. 고맙고 사랑하는데 왜 이 표현이 안될까.

매실을 마시고 다시 뚝딱이랑 보보랑 누워서 7시까지 잤다. 자고 났는데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았고 열은 37.5도를 찍었다. 남편이 와서 죽을 끓여줬지만 속이 울렁거려 많이 먹지 못했고 모유수유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약이 한정되어 타이레놀 하나만 입에 털어 넣었다. 집안은 난장판인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자꾸 늘어져 앉거나 눕게 됐고 남편 저녁이고 뭐고 뚝딱이도 수유 빼고는 남편한테 다 맡겼다. 오늘 산책은 보보 할미가 한 게 다지만 도저히 내가 나갈 수가 없고 아이를 안아 올리기에도 몸이 너무 아파서 보보에게 오늘 밤 산책만 양해해달라고 또 귓속말을 했다. 으휴, 보보에게 귓속말만 늘어가네.

약을 먹고 누우니 열한 시가 넘어가는데 뚝딱이의 잠투정이 시작됐다. 귀를 때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되는 건데 하다가도 정말 엄마고 뭐고 못하겠다 수유도 못하겠고 아이를 안아 올리는 것도 못하겠다 싶어졌다. 두어 달 동안 길어야 3시간씩 자고 1시간씩 몽롱한 상태로 깨어있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너무 지치고 책임감에 짓눌려 지내야 하는 것도 버거웠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 내려놓고 싶어졌다. 나는 나란 사람이 더 중요한 인간이었으면서 왜 책임질 일들을 만들었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잘 버티고 있다고 난 잘 해내고 있다고 이 또한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몸이 너무 아프니까 다 내 욕심 같았다.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 욕심에 만든 아이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었는데 이토록 쉽게 흔들리다니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그러니까 왜 아파가지고.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였다. 징징거려도 내 몸은 아이의 패턴에 점차 맞춰가고 있나 보다. 무드등을 들고 원목 침대에 곤히 자는 아이를 살피는데 웬일인지 수면시간 4시간을 넘기며 자고 있었다. 60일 넘게 한 번도 없던 일이긴 한데 몸이 너무 아프니 아이를 살필 기력 없이, 고맙다고 속삭이며 바로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렇게 처음으로 6시간을 자준 뚝딱이. 7시간을 푹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잠이 부족했던 건가?

7시에 짧게 수유를 끝내고 나니 또 4시간을 자준다. 같이 꿀 같은 4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더 살아나는 몸! 보보 사료를 주고 뚝딱이 기저귀 갈고 수유하고 나도 배가 슬슬 고파서 남편이 해준 죽을 먹었다. 문득 어제 일이 떠올랐다.

나는 37.5도로 계속해서 열이 있었고 뚝딱이도 약간 접종 열이 있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 뚝딱이를 보면서 '열 많이 나면 응급실 가야될텐데, (우리가 갔던) 소아과는 응급실이 있나?'라고 묻는데 그게 뭐라고 왜 그렇게 서운하던지. 이제는 나보다 뚝딱이가 먼저구나 싶어 대충 대답하고 방에 들어가 버린 내가 민망스럽다. 아니, 나라도 그럴 것 아닌가.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덜 됐나 뭘 그런 것 가지고 서운하냐. 그래도 그렇게 열나는데 모유수유는 해도 되냐고 묻던 건 좀 서운하더라.

* 엄마가 감기여도 모유수유는 가능합니다. 저는 배탈 났는데 모유수유해도 크게 상관없었어요. 단, 약을 먹을 수 있는 건 한정적이니 꼭 확인하고 먹여야 합니다. 타이레놀 가능!

내 강아지새낑. 엄마가 아파서 어제 산책도 못했는데 미안해. 몸이 추우니까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보보 역시 보보를 꼭 안 고자니 세상 따뜻..! 뚝딱이도 보보도 보고 있으니까 다 미안해졌다. 너넨 이렇게 나한테 따뜻한데 엄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문득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항상 고맙다는 말 대신 애들 데리고 놀러 가겠다는 말로 대신하는 못난 딸. 한 끼밖에 먹지 못해 몸이 쳐져있는데도 엄마네 가게에 갈 생각에 신이나 뚝딱이를 아기띠에 태우고 보보 리드 줄을 잡아 쥐었다.

고사이에 내가 핼쑥해졌는지, 아이 하나 키우기가 그렇게 힘들다면서 죽을 사다 주는 엄마. 애들 데리고 왔다고 가게 문을 한 시간 일찍 닫고 엄마네 집으로 향했다! 엄마 집에 가서 죽 먹고 누워있는데 왜 이렇게 다 따뜻하던지. 이번에도 보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엄마랑 가까이 사니까 너무 좋다로 대체하던 내 모자란 부끄러움.

나이를 허투루 먹었나. 아직도 내 엄마 손길이 너무 좋지만 이제 그 손길을 조금씩 내 새끼들에게 뻗칠 수 있는 엄마가 돼야지, 되야겠지.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참 쉽지 않은 어른들이 보기엔 애 하나 가지고 뭘 그러냐 하겠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그런 것처럼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서, 오늘도 고군분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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