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 때는 짜야지
왼쪽 엄지발가락이 아팠다. 최근 들어 활동량이 늘어나서인지, 아니면 신발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양쪽 엄지발가락에 손톱만 한 크기의 굳은살이 배겼다. 그중 왼쪽 엄지발가락은 굳은살과 그 주변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애리고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올라왔다. 걸을 때도, 씻을 때도, 쉴 때도 아픈 엄지발가락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버틸 뿐이었다.
어제 저녁, 잠에 들기 전에도 아픈 엄지발가락이 신경 쓰여 왼쪽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만져보게 됐다(손도, 발도 깨끗이 씻은 상태였다). 굳은 살을 건드릴 때만 아프던 게 그 주변을 만져도 고통이 느껴졌다. 썩은 치아가 은근하게 욱신거리며 다른 생각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것처럼, 발가락이 내 주의를 사로잡았다. 왼 다리를 직각으로 들어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발가락을 들여다보니 굳은살 주변이 검붉은 색을 띠었다. 아뿔싸. 참는다고 될 일이 아닌 듯 했다. 옆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 발가락이 아파..."
"발가락? 또 왜?"
아내는 이제 엄살을 부리는 나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말하며 내 눈이 향해 있는 부분을 같이 봐줬다. 아내는 감사하게도 거부감 없이, 내 발가락을 이리저리 만지며 살폈다.
"아파! 세게 누르지 말아 줘."
"이거, 아무래도 안에 고름이 찼네. 째야 되겠어."
"뭐? 아... 안돼..."
아내가 서랍을 뒤지더니 손톱깎이를 꺼냈다.
"손톱깎이는 왜? 그걸로 뭐할라고?"
"굳은살 자르고, 고름 짜야지."
아무렇지도 않게, 발가락 앞으로 손톱깎이를 가져다 댄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듯, 아내는 무심하게 굳은 살을 잘라내 갔다. 한 조각, 한 조각, 내 살이었던 듯, 아니었던 듯한 것들이 분리되어 떨어진다.
"안 아프지? 이거 이미 죽은 살이야."
푹-. 어느 순간 피와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무 아팠다. 나는 견디다 못해 그 모습에서 눈을 돌려 뒤를 보았다. 아내는 사정없이 양 손톱으로 피와 고름이 나오는 주변을 압박했다. 계속 나올 것 같던 피고름은 곧 투명하고 선홍빛이 감도는 체액으로 바뀌었고, 그제야 살을 찢는 통증이 멈추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고름이 나오던 곳에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지 않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아내는 비상약 통에서 과산화수소를 꺼내 상처를 소독을 해주고, 마데카솔과 밴드로 마무리해주었다.
"아, 나 어떡하지. 나 엄지발가락 하나 잃어버리는 거 아냐?"
"아, 뭐래. 이런 걸로. 아무렇지도 않아."
고름을 짤 때 지독하게 아팠던 부위가 하루 밤이 지나니 조금 수그러들었다. 아침이 되어 밴드를 열어보니 살이 차오르는 듯 보였다. 아, 낫고 있구나 싶었다.
살을 잘라내고, 째고, 고름을 짜는 통증이 무서웠다. 그래서 건드리지 못하고 계속 참고 있었다. 그랬으면 얼마나 더 고생스러웠을까. 고름은 없어졌을까. 무섭다고 뽑아내거나 제거해야하는 것을 놔두면 더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견디는 것이 미덕인 시대이다. 시대가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새 내 안에는 참아야지,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칼을 데는 것과 같은 갈등이 싫어서, 괜히 손 댔다가 미움 받을 것 같아서. 혹은 삶에서 잘라내야 할 지도 몰라서. 그러나, 대게 고름이 찬다. 기다리고 기다리다보면.
몸도, 삶도, 관계도. 고름은 짜야하나 싶다. 아무리 아프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