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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30. 2022

온도차

여름의 기억이 준 깨달음


 2017년 여름의 초입이었다. 몸에 있는 땀구멍 하나하나에서 땀이 솟아올랐다. 끈적한 피부가 금세 불쾌함을 느끼게 했다. 아직 한창도 아닌데 벌써 이러면 어찌하나 싶었다.  땀에 절은 옷을 방 한편에 벗어두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수전을 여니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졌다. 시원한 물에 이내 온기가 돌고, 아차 싶어서 수전 손잡이를 찬물로 돌려놓았다. 몸의 온도를 낮추기에 적절한 물이 샤워기에서 쏟아지고, 이내 여기저기 말라붙었다 적셔졌다를 반복했던 액체들이 씻겨나갔다.


 몸을 닦고 방으로 들어왔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틀어놓은 에어컨이 찬 공기를 뿜고 있다. 샤워 직후에 맞는 에어컨 바람이란 정말 황홀할 정도였다.


"시원하나요?"


 팔을 벌리고 에어컨 앞에 서서 한참이나 헤벌쭉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아내가 물었다.


"응. 최고야."


"좋겠네. 나는 이제 조금 추워지는데, 에어컨 끄면 안 되나요?"


"음... 에어컨 끄면 땀이 또 나는데... 나는 지금도 더운데..."


 사실 나는 더위를 많이 탄다. 찜통더위가 시작도 되기 전이었지만, 가만히 누워 있어도 더위를 느끼고 땀을 흘렸다. 덕분에 하루에도 샤워를 몇 번이나 할 수 있었다. 그런 나이기에 집에 에어컨을 설치한 후에는 에어컨을 시도 때도 없이 켜고 사용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아내는 에어컨 앞에서 금세 추위를 느꼈다. 에어컨이 실내 공기를 차갑게 식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어컨 전원을 내리고 싶어 했다. 아내가 춥다는데 끄지 않을 수 없었다. 실내 공기는 다시 더워지고 나는 다시 땀을 흘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당시에 막 결혼 2년 차가 된 우리 부부는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서로 기대어 TV를 보거나 책을 봤었다. 그러는 와중에 신기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더워를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기댄 아내가 내 몸이 차갑다고 이야기했다. 금세 춥다고 말하는 아내에게 기댄 나는 아내 몸에서 열이 나고 있어서 놀랐다. 몸이 차가운 사람은 덥다고 이야기하고, 몸이 따뜻한 사람은 춥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체온도 달랐고,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기준도 달랐다.


 객관적인 온도를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섭씨 26도를 누군가는 덥다고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춥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비단 추위와 더위만이 그럴까. 사람이 느끼는 온도는 기온 이외에 마음의 온도도 있다. 어떤 일을 두고 마음이 뜨겁다거나 마음이 식었다는 표현을 곧 잘 사용한다. 뜨거운 마음은 열정이나 헌신을, 식은 마음은 실망감이나 무관심을 나타내곤 한다. 그리고 마음속 온도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특정한 일을 추진하거나 함께 이뤄가야 할 때가 많이 있다. 한 목표를 위해 애쓰다 보면 가끔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외부 환경의 문제로 다투기도 하지만, 내부적인 요인이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덜 쏟는다고 불평하고, 어떤 이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마음을 내고 있는데 타인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한다. 타인의 마음 온도를 알 수 있는 도구 따윈 없다. 애초에 기온조차 서로 느끼는 것이 다르다.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내와 함께 살며 사람마다 체온도, 체감온도도 다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마음의 온도도 다르겠거니 싶다. 나는 가끔 타인을 볼 때 그가 너무 마음을 쏟지 않는다거나 열정이 없는 것 같아 실망감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내가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가 느끼고 있을 마음속 온도가 뜨거울지 차가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사람마다 다를 온도차에 조금은 너그러워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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