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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Sep 11. 2021

외로워도 슬퍼도

잠시만 한숨

 가끔 밖에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흐른 땀을 말리러 나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다 문득. 감정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애써왔는데, 아마 돌보지 않은 마음의 상함이 가득 차있나 보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못한다. 혼자기에, 혼자서 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의 울음을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흐느낌 속에서 흘러나오는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정서라도 공감을 해줄  있는 사람이. 그래,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이 필요하다. 출근한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그저 그런 농담을 들으면서 크게 웃는다. 정신을 부여잡는다. 집중할 일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세상은 연약한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슬픔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래서 들키면 안 된다. 아파도 티를 내서는 안된다.  외로워지고 싶지 않다.


 알고 있다.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능성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던 소년이 무력함에 젖어드는 것이, 녹이 슬어 바스러져가는 자신의 무기가 가볍고 초라해지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른이 되어 있는 나는 튼튼할 것 같던 동아줄이 생각보다 얇고 헤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될수록 손아귀에 더 힘을 준다. 추락의 공포가 커질수록 힘이 들어가지만 곧 끈이 끊어져버릴 것 같다는 상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도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회사는 돌아간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애쓰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에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 조직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개인이 된다. 나도 그렇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울고 싶을까. 무서울까. 아니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뿐일까.


 다 똑같은 것 아니냐고, 인생이 그런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라서 그렇다. 울 수가 없다. 굉장히 동의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흐느낌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도 여유는 없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앞만 보고 뛰어야 한다. 다 자기 복이라고 말한다.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아내가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 밤 잠시만 흐느껴야지. 그러다 해가 떠오르면 다시 웃으며 집을 나서야지. 적어도 내일 하루는 더 버틸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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