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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Dec 09. 2022

똥을 치우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제 아침에 살고 있는 건물 카톡방에 톡이 하나 올라왔다. 건물 앞에 누군가 똥을 흘리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집에서 나와 바로 내려가 봤다. 검은 봉투에 들어있다가 지나가는 자동차에 밟혀 터지고 뭉개진 똥은 사람 똥인지 동물 똥인지 분간이 어려웠지만 봉투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동물의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치우는 것이 문제였다. 바닥에 눌어붙은 그것을 처리하려면 물청소 밖에 방법이 없는데, 아침 기온은 영하였다. 물청소를 하면 물이 얼어서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 낮이 되고, 날이 풀리면서 기온은 영상이 되었다. 조용히 고심하기 시작했다. 물청소가 가능해졌으나 마르고 뭉개진 똥을 치우기가 싫고 귀찮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평일 낮에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건물에서 아마도 육아휴직 중인 내가 적격이었을 테다. 주저하고 있는 것을 본 아내는 그래서 안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장갑을 끼고 내려와 외부 수도를 틀었다. 화장실 솔을 가지고 쭈그리고 앉아 아스팔트를 뒤덮은 그것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숱한 자동차들이 밟았는지 바퀴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여기저기 묻어 있던 것들은 여러 번 솔질을 해도 잘 닦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량들과 행인들을 피해 가며 어떻게든 청소를 했다. 아내 품에 안겨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었고 덕분에 덩달아 나도 웃을 수 있었다. 똥물이 튄 것 같은 옷가지들을 빨래 통에 넣으며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나, 가치 있는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이 맞지? “


평소 스스로가 무가치하다고 여기고는 했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요(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부분이다), 전문적으로 무언가를 잘하는 것도 아니요, 독보적인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나는 주변의 대단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러한 태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존재로써 충분한 가치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면 어딘가로 숨고 싶은 충동을 잘 다스려야만 했다. 그 무엇보다 가까운 존재인 내가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니 가끔 누군가가 칭찬을 해준다 한들 그것이 나를 가치롭다고 느끼게 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그건 괴롭고 고달프고 아프다.


심리학자 아들러였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였나.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른 이들을 향한 ‘기여’가 자신을 가치롭게 한다고 했다.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때 보람과 더불어 의미를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에 비추어보면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 맞았다.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 이기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것이 꼭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건강하게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이 사회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는 반면, 이기적인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사랑하는 법도, 사랑받는 법도 모르게 한다. 요즘 나는 내가 조금 더 나를 사랑해주면 좋겠다. 더 이상 나를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기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사랑에 푹 적셔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한 시도가 똥 치우기였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날 저녁, 마침 마을 이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을에서는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백수라도 정말 중요한 존재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나누고 행할 수 있는 이들 모두 중요한 존재다.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이다. 나는 능력도 대단치 않고, 잘난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과 타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찾아서 실천한다면 나 또한 중요한 존재일 테다.


오늘 아침, 며칠 전 엄마가 집에 들르면서 사다 준 돼지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손질되지 않은 큰 덩어리의 돼지고기를 칼로 잘라내는데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일부는 찌개용으로 소분해두고, 일부는 수육으로 요리하고 나머지는 불고기 양념을 해서 재웠다. 아내가 완성된 수육을 잘게 잘라 아이에게 주니 아이가 잘 받아먹었다. 아내도 맛이 있다고 했다. 냄새 때문에 열어둔 창문으로 냉기가 들어왔지만 땀이 송골송골 맺힌 내가 작게 속삭여본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또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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