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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하루 하루가 모여 삶이 된다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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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씨 Dec 28. 2022

회귀 거부 - 시간을 거스를 수 있더라도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면서 든 생각

2022년이 끝나가고 있는 지금, 가장 핫한 드라마라고 하면 재벌집 막내아들을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최종화를 방영하고 많은 구설수에 오르고 있긴 하지만, 마지막화 수도권 시청률이 30%였다고 하니 대단한 드라마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재벌에 관한 사회적 비판이나 매력적인 주인공, 두근두근한 로맨스, 시간회귀자가 갖는 최강의 무기인 미래를 아는 지식을 가지고 현실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는 통쾌함 등등. 그중 극의 중심뼈대를 이루는 시간회귀는 사실 많은 작품에서 활용해오고 있는 설정이지만,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는 특수한 요소가 더해져 독특한 매력이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은 극을 보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과거로 돌아갔다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통해 인생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허무맹랑하지만 사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거나 간절히 바랐던 적도 있는 것들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나와 같이, 자신을 사랑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과거 스스로가 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함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비난할 때가 있다. 그런 비난이 거세게 자신을 흔들어 놓을 때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가능하기만 하다면) 무언가를 바꿔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가 있을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렇게 반응했을까. 왜 시도해보지 않았던가. 왜 자존심 따위를 앞세워 솔직해지지 못했을까.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회귀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분명 내 인생은 지금과 달랐을 텐데. 나는 나를 좀 더 인정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가 겪은 아픔들을 조금 덜어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현실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바로 지금 주어진 것에 자족하고 결과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가끔 시간회귀를 이용한 ‘이야기’를 접할 때, 실제 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후회스러운 과거를 바꿔내는 것을 보며 약간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한 이야기들이 여러 작품을 통해 꾸준하게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비슷한 시간회귀물 영화 ‘어바웃 타임’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영화의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원하는 현재를 만들어간다. 실패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결국 성공해버리고 마는 주인공은 행복해지고 사랑하는 아내와 예쁜 아이를 낳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어떤 문제를 마주한 주인공은 다시 한번 시간을 되돌려 과거를 바꾸고 현재로 돌아온다. 돌아온 현재에서 그는 성별이 바뀌어 있는 자녀를 마주하게 된다. 과거가 변하면 현재가 변하고, 많은 것들이 조금씩 영향을 받아 아이의 성별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사랑하던 존재가, 내가 바꾼 과거로 인하여 사라져 버리고 별개의 존재가 대신 생겨버린 것이다. 아이는 오늘 아침까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죽음과도 같았다. 이 사건 이후로 주인공은 과거를 바꾸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고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간을 회귀하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조용한 새벽, 이유 없이 잠에서 깨 눈만 깜빡거리다가 내일을 위해 다시 잠을 청할 때, 쉽사리 잠들지 못하여서 뒤척거리다가 허공에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이 상영되기 시작하고, 숨죽이고 감상하던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을 하는 과거의 나를 보면서 시간을 거슬러 가고 싶은 욕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지금 내 곁이라는, 한 시공간을 함께하는 나의 아내와 딸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지금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자 한다. 만약 그때 나의 실패들이 인생에 없었다면, 지금의 아내도, 딸아이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들을 곁에 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시간 회귀의 능력이 있더라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개발이 예정된 땅을 사두거나 사업에 성공할 회사의 주식을 사두거나, 로또 번호라도 외워서 많은 부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거래이기 때문이다.

시간회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쁘지 않은 결론에 다다른 것 같다. 현재를 받아들이고 삶을 사랑한다면 과거의 아픔과 괴로움까지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