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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r 06. 2019

하루만, 하루만 죽음을 미루자.

구명조끼 하나, 그대가 그대를 죽음으로 몰아갈 때. 


자살사고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는 나뿐인 것 같다. 물론, 그들이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살사고란, 충동적인 “죽고 싶어!”가 아니다. 지속적인 우울에 의해 죽음과 내적 친분을 쌓는 상태이다. 


그래, ‘나 혼자’ 내적 친분이다. 죽음은 나만 기다리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공평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나만 난리치고 있는 짝사랑이다. 죽음만이 나를 이해해줄 것 같고, 내가 죽어야만 모두가 나의 괴로움을 알 것이고, 죽으면 모든 게 끝나고…. 어쩌고. 

그게 사실인지는 모른다. 나도 죽어본 적은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죽어서 다른 사람들 한태 그 후기를 알려줄 수도 없다. 죽었으니까. 

그래도 견딜 수 없을 때. 당장이라도 내가 내 목을 조를 것만 같을 때. 차도로 뛰어들기 위해 몸을 구부릴 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거기서 도망치려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우리들에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지만, 한 가지 조그만 팁을 공유하려고 한다. 하나만 생각하자.


하루만 연장한다.
이번 밤만 보낸다.

우리가 삶을 너무나도 갑갑하고 답답하고 막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그 많은 시간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일 것이다. 앞으로 남아있는 인생 전부를 바라보니까 그 시간들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하루만. 하루만 더 살자. 우리가 막막해하는 그 인생 전부에 비하면 하루는 그래도 작은 시간이다. 

생명의 당연한 소중함 따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눈을 꼭 감고 엎드려있든, 이불속에 들어가서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울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생각만 마구 하고 있든,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그 모든 일들은 어제가 된다. 어제. 지나간 날. 지나갔다는 의미가 주는 힘은 크다. 그 일들이, 그 괴로운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 일을 보내고 하루를 연장하는 데 성공한 자신의 힘을 믿어라. 

+1

그렇게 하루만 연장하자. 인생 별 거 없다. 저 +1이 여러 개 모여지면 ‘삶’이다. 


그렇게 하루씩 연장하는 데 익숙해지고 상태가 좀 더 괜찮아지면. 이제 내일, 혹은 모레까지 살아야 할 ‘책임’이 있는 약속을 잡자.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괜찮지만, 아직 상태가 안 좋을 때는, 귀찮다고 취소할 수 없는 다른 사람과의 일정을 추천한다. 내일 약속 장소에 나올 친구에게 ‘민폐’가 될까 봐 내일까지 죽음을 미루자. 예약 취소 전화가 귀찮으니까 모레에 예약한 병원을 가자. 그렇게 +2일을 했다. 굉장한 퀘스트를 수행했다! 

아직은, 남들 눈치 보면서 삶에 발 붙이고 있어도 된다. 내가 죽으면 그 전날 날 만나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친구가 당황할 테니까, 같은 이유로 살아도 된다. 내가 없어지면 수행 중인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번거로워할 테니까, 같은 이유도 된다. 죽음을 미루는 이유 안에 자기 자신이 없어도 된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 

그렇게 살면서 조금씩 머릿속에서 자살이 희미해진다. 조금 건강해지면, 그때 그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 남의 눈치나 처벌이나 체면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대 자신을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아직은 그게 아니어도 된다. 살아있으면 자연스럽게 거쳐갈 단계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밤을 보내라. 해가 뜨면 어찌 되었든 지나가버린 모른 시간들이 허무하겠지만. 

그렇게 하루가 연장된다.


+ 만약 1.

좀 더 많이 건강해지면, 자살이 아닌 죽음을 기억하자. Momento mori. 

사실, 우리는 앞에 펼쳐진 삶이 너무나도 길어서 막막하다고 생각하지만 길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는 길고 누구는 내일일 수도 있다. 자신의 뜻으로 당기지 않는 한, 결정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나는 우울증이 정말 심했던 2년간을 보내고 나서, 우연히 큰 병원에서 맥박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큰 검사를 받았다. 그때는 또 갑자기 찾아온 죽음 때문에 화가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살사고와 춤을 추던 사람인데도. 나처럼 억울하기 싫으면 언제든 죽음을 기억하라. 잊지 않으면서 살아가자. 그럼 좀 초연해진다.


+만약 2

 그대가 자해를 하고 있다면, 자해를 하기 직전에 누군가에게 맞아서 기분 나빴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이미 한 뒤는 어쩔 수 없습니다만…) 나는 최근에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남에게 주먹으로 맞았는데, 내가 나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다가도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그만둔다. 젠장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힘 좀 세다고 날 때려? 난 나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맞을 수 없어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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