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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대의 인연들이여,

30대의 인간관계를 시작하며

by chul

00아, 잘 지내?


3년 전에 온 쪽지이다.


이 브런치북도 3년 전에 마지막 글을 썼다.

예상되는 대상자는 나의 첫 고향, S의 소꿉친구. 즉 우리는 8살 때부터 알았으며 나는 13살에 C라는 도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가 대학 때문에 여기로 왔으니 이 쪽지는 정말로, 2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내게 온 것이다.


3년이나 지난 후에 네이버쪽지를 본 주제에 답장을 바라는 것도 양심이 없다만, 그래도 이제야 나는 답을 이렇게 했다. 아마 상대방도 보낼 때 답장을 바라진 않고 어디 도시전설에게 편지를 보내듯이 보냈겠지.


이 브런치는 철없는 20대의 인간관계론에 대해서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지껄인 글들을 모은 것이다.

외로우니 와주세요.

2022년에 마지막 글이었으니, 남은 3년간은 어쩌면 관계에 대해서 크게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3년 동안 나는 제법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만큼 쓰레기를 넘어서 인생에서 만나면 안 될 새끼들도 만났지만, 그 상처와 후유증을 극복할 정도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릴 적 친구였던 녀석들과 멀어지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했고 내 가족들과 많은 상처를 직면하고 어느 정도 타협을 보면서 연장선에 대한 협의를 보기도 했다. 또한 일터에서, 콘텐츠에서, 운동 등 여러 활동에서 내게 과분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만큼 떠나보내기도 했고 떠남을 당하기도 했다. 아마 그 모든 것들이 덜 미련을 갖게 될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래, 나는 이제 서른이다. 이 브런치북을 억지로 종결해야 하는 시기가 온 셈이다.

물론 마음은 아직 응애

나는 참, 운이 좋았다. 10년은 전라남도 10년은 경상남도 10년째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 그 모든 곳에서 하나씩 연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스무 살의 나는 감기에 걸렸고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내가 아프다고 밥 한 번 함께 신경 써 줄 사람이 없어서 울었다. 어디 자리가 하나라도 비는 곳에 병원에 갔다가 혼자 볶음밥을 처량하게 먹었고 그게 도서관 식당이 아닌 그냥 식당에서의 첫 혼밥의 기억이었다.


이제 운이 안 좋은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여고를 나온 내게 남초 공대는 너무나도 어려웠고(지금보다 훨씬 더 공대 아름이 따위를 외치던 곳이었으니) 30명이 복닥복닥 1년을 채우는 게 아니라 학부 천여 명이 섞여서 4년-5년을 지내는 곳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사람들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이전 인연들에게 더 집착했다.


중고등학교 때 가출을 할 정도로 집안 사이가 안 좋던 내게 동아줄이었던 A는 대학교 가자마자 나를 끊었다. 고등학교 때 친해는 B는 내가 죽을까 봐 매일 편지와 택배에 과자를 넣어서 4년간 보내줬다. 그리고 B는 내가 인턴에서 혼자 채용취소가 될 때 나를 끊었다. 늘 인싸였던 C는 대학교에 가자마자 잘 못 지내고 우울증이 심하게 도진 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즐기기 위해 나랑 멀어졌다. 그리고 몇 년 후, 크리스마스에 내게 긴 카톡을 보냈다. 미안했다고.

관계란 결국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지금 내 옆에는 그 많은 인연 중 C가 있다. 자고 있으면 연락이 와서 제주도에서 함께 재택근무를 하지 않겠냐며 내 운전면허증을 쌔벼(! 렌터카 등록을 위함) 가도 별수롭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그는 내가 보수적인 회사에 와서 술을 잘 마시게 된 걸 유일하게 기뻐하던 사람이고(드디어 너랑 술 한잔을 하는구나 ㅠㅠ 매번 이런다.) 서로를 제외하고는 서로의 무리가 어떻게 생존해 있는지 모른다.



이게 학생 때 인연이라면 그 이후 인연은 어떤 것인가. 내 브런치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아직 신입임에도 많은 회사와 일을 거쳤다. 그중 한 명씩 여전히 연락한다. 연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잔재가 남아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었던 전 직장에서도 괴롭힘 당사자가 아닌 나의 사수였던 선배들은 내게 일이란 것의 자세를 알려줬다. 다른 동기는 함께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종종 간다. 그냥 좋아했던 팟캐스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단단해지는데 큰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혼자서도 온전히 지내기로 결심한 23살의 내가 있다. 7년 전의 그 멋도 모르던 애가, 지금의 관계에서 안정을 찾은 나를 만들어줬다. 울면서 결심하면서 말이다. 사람은 내 맘대로 안되고 모두가 괴로우니, 나는 그러면 지금 내 앞의 사람에게 집중하되 나는 나 자신으로 온전하겠다고 결심했던, 혼자 편의점 삼각김밥을 먹으며 결심했던, 가족조차 내 적이었던 23살 덕에 나는 살아있다.


미련을 안 가질 수는 없고 만나는 모든 이들과 맞을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제 솔직해지기로 했다. 솔직히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받지만 그것보다 그들이 훨씬 좋다! 예전에는 먼저 정을 주면 지는 거라고들 했는데 이젠 난 그 밀당은 안 맞는 듯하다.


그래, 결국 누군가는 호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결말로 나는 20대 인간관계를 끝을 맺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래도 지나쳐서 나쁘지 않았던 인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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