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리보를 줄게 당신에게
세상을 살다보면 취급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다. 단순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때가 있겠지. 하지만 이건 귀여운 수준이다. 수단이 되기도 하고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학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가치관이 형성되기도 전에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도 전에 상처가 먼저 생겼을 것이다. 세상에는 ㅈ같은 경우가 많다. 자연재해와 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종종 인간들이 서로에게 주는 전쟁같은 상처는 어쩔 수 있었던 게 아닐까싶다. 아닌가, 어쩔 수 없던것일까 그 무엇도.
왜 사람들이 나에게만 그럴까?
힘든 일을 겪을때 내게 오히려 독과 상처가 되었던 반응이다. 아, 내가 잘못되었던걸까? 남들이 겪을만한 일을 겪는게 아닌걸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왜 살아야하는 걸까. 어차피 이런 대접을 받고 모두에게 미움받고 이게 일반적인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나는.
고독과 취급의 기나긴 터널을 뚫어 겨우 입성한 사회에서는 더욱 별종 취급을 받았다. 온갖 멸시와 미움, 딱히 난 생각하지도 않았던 타인들의 죽일듯한 혐오까지. 가만히 있었고 조용히 있었고 눈에 띄고 싶지 않았지만 난 결국 쓰레기취급을 받았다. 그 취급이 학습될때쯤 본가에서 택배를 받았다. 별거 아닌 택배였다, 하지만 택배를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나를 생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상했다. 나를 이렇게 챙기는 사람이라니, 그래서는 안되는데.
그리고 툭.
하리보 젤리가 택배의 끝자락에서 떨어졌다.
하리보. [명사] 독일에 본사를 둔 젤리. 곰모양 젤리가 가장 유명하며, 별별 이상한 모양들이 다 있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젤리.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젤리 브랜드. 편의점에 갈 때마다 사오고 택배를 보낼때마다 하리보를 하나씩 끼워넣는 것은 제법 오래된 우리집 전통이다.
하리보를 보고 무너졌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 이런 쓰레기에게 시간을 쓰고 하리보를 보내주면서 나를 진심으로 위하길 바랬다는데 불쌍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썼는데 사람들이 그걸 짓밟고 무시하고 있는거같아. 내가 딸이라서, 하필 내가 나라서 내가 이런사람이라서 모두가 내게 침을 뱉고 싶어하는데 엄마는 그런 사람이 좋아하는 하리보를 무슨 마음으로 넣어줬을까. 너무 불쌍해.
그리고 툭.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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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갑자기 퇴사를 했다거나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거나 이런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야겠지만 나는 바로 퇴사하진 않았다. 대신 인사팀에게 정확하게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짓을 당해오고 있는지 호소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근무기간이 되어 퇴직금과 인센티브와 월급을 모두 끌어모아 1천만원 정도를 받아내고 다시 한번 그들때문에 퇴사함을 인사팀 팀장님에게 밝히고 갔다.
갑자기 이 글을 쓴 이유는 별 건 없다. 어제 야근을 하다가 갑자기 책상을 문득 봤는데 하리보가 쌓여있어서였다. 이 회사 팀원들이 내게 준 것들이다. 이들또한 내가 하리보를 좋아한다고 말을 한 적은 없는데 어느순간 젤리, 하리보 하면 나를 생각해준듯하다. 그렇게 내 책상에는 크고 작은 하리보들이 쌓였다. 어딜 다녀오면 누가 올려두었다. 젤리가 생기면 누군가는 내게 젤리를 늘 내밀었다.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가지고 하리보로 겨우 다시 일어나던 사람이 사회에서 하리보를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기적을 기다려야만 했을까? 글쎄, 굳이 말하자면 나는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잘'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말 기대로 '지속'을 선택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내 앞의 누군가가 나를 취급하면 슬퍼하다가 분노했다. 왜냐면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니거든, 그 누구도 그런 취급을 해서도 받아서도 안되는데 저 사람 참으로 식견이 안타까울 정도로 짧다. 앞으로도 그런 지옥에서 살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 지옥에서 살아가지 않기로 선택했으니까.
모든 상황들은 복불복이라 그냥 지속만해도 지나가고 새로운 상황이 오고 더 나아지기도, 최악이 되기도 했다. 확실한 것 하나는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을 순 없다는 사실.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나도 건너뛰고, 그들도 나를 건너뛰어주시기를. 굳이굳이 찾아오는 소인배들에게 많은 에너지와 상처가 소모되지 않기를. 그러니, 언제든 나도 당신에게 하리보를 주겠다. 이 글이 당신의 하리보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떠올릴 준비가 나는 되어있다. 누군가는 하리보를 당신에게 주려고 간직하고 있다. 당신을 죽이고싶어하고 취급하는 새끼들보다는 하리보를 주고 싶어서 동동거리는 나와같은 사람들을 믿어주길. 아니면 차라리 하리보를 믿어라. 당신 눈 앞의 그 새끼들보다는 하리보는 훨씬 낫다(맛있고, 말랑하고, 귀엽기까지하다!)
이 글을 쓰기위해 혼자만의 점심시간을 지내고 온 내 책상에 새로운 하리보가 또 올려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