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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살아있고 살아가기를 인정한 사람-1

그냥 아무 첫번째 생각

by chul

갑자기 ㅈㄴ 멋있는 글이 나올리가 없으니 그냥 다시 습관처럼 시작하는 아무글.


앞자리가 3이 되어서야 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가 아니라 지금 나의 나이에 나를 목숨걸고 낳은 어린 엄마를 토닥여줘야하는 날이긴 하다. 나를 낳음으로서 당연하게도 안정적인 직업에서 물러나야했던(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때는 더욱 임신한 여자는 퇴사나 바로 전업 주부로 가는게 당연했으니까) 나와 동갑이었던 그 여자를 말이다.

최근의 접니다. 의미는 없고 그냥 올림.

하지만 결국 철들지 않은 사람으로 이제서야 나의 삶과 생일이라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20대때의 나는 많은게 불안했다. 지금 그때 진심으로 바라던 모습에서 많이 멀어졌고 포기했거나 예상치 못한 보물들을 얻었다. 경제적으로는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상황이다. 취직을 했다고해도 5년동안 정말 직무바꾸기 전공 버리기 입퇴사 반복하기 직장내 괴롭힘 당하기 상사 들이박기 등 한국이 싫어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젊은 여자로 살았으니까.


내가 축하하는 사람이 있다. 몇번이나 죽고 싶었던 , 죽으려고 했던 , 하지만 결국 살기를 선택했던 어린 날의 나다. 정확히는 죽기를 실패했던 것에 가까웠는데 어찌되었든둥 웃기게도 살고 싶어지면 죽을 위기가 오고 죽고 싶어지면 또 살아지는게 뭣같은 인생의 아이러니임을 느끼고 있다.

후후 신나.

뭐, 운좋게 죽지 않았던 덕에 이 시기에 예상치 못하게 갖게 된 요소(?)들이 있다. 첫째는 의외로 사람들, 두 번째는 더 의외로 건강한 습관-운동이나 종종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는거/식단 등, 세 번째는 정말정말 의외를 넘어서 별로 알고 싶지 않았고 예상치도 못한 <평생 파도처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첫 번째, 사람들.

브런치를 초기부터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서울에 대뜸 스무살에 대학때문에 올라왔다. 사회성이 좋지 않았고 워낙 조용히 혼자있는 편이라 주변에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 특히 남초과의 여학생으로 꾸미지 않거나 동아리 활동또한 귀찮았기에 하루에 한 마디도 안 하는 경우가 생겼다.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집착도 해보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기도 해봤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날 좋아하진 않았다.

혼자 조용히 누워있다가, 누군가가 두명 이상 대화하는 소리만 들어도 부러움과 질투를 하고, 웃으면 나를 비웃는다는 생각까지 들때쯤. 조용히 심리상담을(그때 뭔지도 모르면서 지원해준 엄마아빠에게 감사한다.), 정신건강의학과를 갔다. 다행히 나는 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본능적으로 느낀듯하다. 지금은 그런 비정상적인 저를 느끼세요, 하고 사는 중이지만.


뭐 이러니 저러니 하다보니 그냥...나는 나랑 제일 친해지기로 했다. 나 혼자로도 즐겁게 놀기로 했다. 주변의 예쁜 카페를 혼자 가고, 대학생 할인을 받아서 전시를 가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혼자 걷다가 산책로에서 앉아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독서도 해봤다. 도서관의 귀퉁이에서 9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소설책을 읽는게 행복했다.


다행히 나는 혼자 지내도 나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서 부닺히지 못해서 사회성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악의를 가지진 않았으니 비호감 정도로만 그쳤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원래 이렇게 착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그 자체만으로 칭찬해줄만하다 세상에 지들 힘들다고 약자들 괴롭히는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하니까 개빡치네 내가 뭐 범죄를 저질렀어 뭘 했어 니네가 싫어하는 당당하거나 좀 엉뚱한 사람이었을뿐인데 니들이 노잼인건 나더러어쩌라고 부럽냐?

죄송.


여튼.


그렇기에 나는 이제 주변인에 대한 큰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친구가 없을 사람인가봐. 그런 사람도 있는거시다.



생일주간에 친구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다른 친구가 자기가 밴드를 오랫동안 했는데 자기 노래 부르는거 보러 오라고 이태원 클럽 티켓을 줬다. 친구를 데리고 친구 공연을 보러갔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평소에 조용하던 친구가 그 누구보다 생명력있고 활기넘치게 시작하는 장면을 보았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짐을 누릴 거라고 생각했던가?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생일 축하를 받고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싫어하고 미움받고 증오하고 사랑하고 또 같이 맛난걸 보러가고 그리워하고 예의가 아닌 진심의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한 뭉텅이 속에 뛰어들어가있는 내가 낯설어졌다.

아니, 지금의 내겐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5년전의 내게는 상상도 못한 장면이었겠지. 이걸 바랬던가? 이게 더 좋다, 행복하다, 이럴 순 없다. 사람들은 있다가도 없고, 돈도 그렇기 때문에 몇년뒤의 나는 다시 혼자일 수도 있다. 또 다시 하루에 그나마 한 말이 계산대의 점원분께 <감사합니다>가 전부인 생활이 올 수도 있다.


그렇다한들 어떠한가? 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가 그대 곁에 있거나 없거나 오로지 혼자로도 온전히 행복하기를.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길어져서 다음에 이어서 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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