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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t Cracker Feb 10. 2024

처벌과 단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 젠더살롱 

처벌과 단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올해도 성범죄 가해 청소년 대상 재범방지 교육을 다녀왔다.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처음처럼 떨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다른 때보다 긴장도가 높다. 교육을 하고 올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믿음이 없다면 교육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온라인에서는 '참교육', '사이다', '복수'를 정의구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현실에 정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현실성이 떨어지거니와 실제 '정의'에도 가닿지 못한다. 피해자의 회복이 없고 공동체가 해체된 정의가 대체 무슨 정의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회복적 정의 교육을 듣게 됐다. 고작 몇 차례의 교육을 받은 정도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에 대한 생각을 더 할 겸 글을 써봤다. 


‘단죄’가 시대정신인 시대, 이대로 괜찮을까?

참교육과 사이다, 정의구현이라 이야기되는 ‘단죄’가 시대정신인 세상이다. 잘못하면 죗값을 치러야 하며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질 때는 사적 제재마저도 용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온라인에는 ‘논란’을 빙자한 마녀사냥과 조리돌림이 즐비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재판관이 돼서 ‘악행’을 응징하기 바쁘다. ... 처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행동에 따른 응당한 책임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수위는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 일상에서는 사법적 처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이런 방식이 실질적으로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을까?


사람 셋이 모이면 갈등은 생긴다

회복적 정의는 단지 처벌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응보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 공동체 구성원의 참여로 치유와 피해 회복을 도모하는 철학이다. 회복적 정의의 선구자 하워드 제어는 그저 가해자를 찾아 처벌하는 데에만 급급했던 사회 풍토를 지적하며 ‘단순히 세상에 존재하는 해악과 고통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 


어떤 이들은 가해자에 관심 갖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괜한 서사를 부여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문제지만 다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가해가 일어난 배경과 맥락을 살피는 것은 꼭 필요하다.처벌과 단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원문 읽기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71345000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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