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벌거벗은 남자들
페미니즘 글만 썼다하면 왜 꼭 "너만 힘드냐"는 댓글이 달릴까요?
이번 여성신문 벌거벗은 남자들 연재글 주제입니다. 교육을 하거나 성차별 관련한 글을 쓰다보면 꼭, '여자만 힘드냐! 남자도 힘들다!' 류의 반응을 마주합니다. 언제부터 차별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자원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류의 반응에 대해서 한 번쯤은 다루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 주제로 다뤄봤습니다.
글에는 분량 관계 상 차마 담지 못했지만, 저런 거부 반응의 기저에는 선한 사람이고 싶은 욕망 역시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여지 없이 상대를 탓하거나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며 변화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이 선택으로는 불행배틀은 가능할지언정 우리의 삶은 조금도 나아질 수 없습니다. 문제 원인이 맞닿은 지점에 함께할 수 있기는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함께 읽고 많이 이야기나눠주세요!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382
성평등 교육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직장인부터 시민사회단체 구성원, 초·중·고등학교 청소년과 군인 등 다양한 참여자를 만났다. 막상 어마무시한 저항이 있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꼭 참여자 표정이 굳기 시작하는 대목은 있다. 바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이야기 할 때다.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여성 어린이가 자신의 가족 제사 때 겪은 성차별을 이야기했더니, 옆자리 남자 어린이가 “너는 대신 군대 안가잖아!”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의아해진 나는 남자 어린이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혹시 저 어린이가 군대에 보낸건가요…?”
여성 차별에 “너만 힘드냐”라니
이런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 페미니즘 관련한 글, 아니 꼭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글마다 ‘남성도 힘들다!’는 댓글로 가득하다. 남성의 삶이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이의 고통을 상쇄해 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이게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일까?
뉴스에서 흑인을 향한 폭력, 장애인을 향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거냐며 발끈하는 경우가 드문데, 왜 젠더 문제에 대해선 그런 반응이 흔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실제로 모르기 때문이 크다. 나도 학창시절, “성차별은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학교만 봐도 똑똑하고 대학 잘 가는 여자애들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성차별이냐’는 생각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년 국가성평등보고서’에 나타난 ‘성평등한 사회참여 영역 분야별 성평등 수준 현황’에 따르면, 학교 같은 교육·직업훈련 영역은 94.5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다. 경제활동영역 76.4점, 의사결정영역은 38.3점으로 처참한 수준이다. 고용률만 봐도 그렇다. 20대 때까지는 비슷하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이 임신·육아·출산을 경험하는 시기에 엄청난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임원 비율은 여전히 6.8% 수준이다. 누구도 이를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으니 각인된 오해가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성별인식격차가 됐다.
인권은 뺏고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모르면 알아가면 그만인데, 왜 알려고 하기보다 화부터 낼까? 인권을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며 여성의 인권이 올라가면 남성의 인권이 추락할 것을 생각하며 불안에 떨기 때문이다. 나아가 성폭력을 오직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자신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장애 이동권을 위해 생긴 지하철 엘레베이터가 모두에게 편리함을 줬듯, 인권은 함께 증진될 수 있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기에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이러한 이해 없이 페미니즘에 학을 뗀다. 어떨 때는 이런 남성들의 분노가 일종의 비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성의 어려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교육 현장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나 글에 달리는 댓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결론이 비슷하다. 군대에 가야해서, 연애나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부담이라,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내몰려서 ‘힘들다’는 이야기다.
힘들 수 있다. 실로 더 많은 남성들이 일터에서 사망한다. 2022년 자살률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더 높다. 그러나 드러내지 못한다. 나약하다고, 남자답지 못한 ‘하남자’라고 낙인 찍힐까봐 염려하느라 꽁꽁 숨기고 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감정은 분노다. 그래서 그렇게 길 잃은 엉뚱한 분노로 자신의 비극을 발산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불행 배틀은 할 수 있을지언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남성들이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연애, 결혼에서 남성이 더 경제적인 부담을 지는 이유는?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모두 옆에 앉은 여성 때문이 아닌, 우리 사회의 성별고정관념과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을 끝내기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다.
늦지 않았다. 문은 언제든 열려있다. 지금껏 그랬듯 세상은 더 나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 언제까지 ‘너만 힘드냐!’며 불행에 머물 것인가. 문제의 원인을 찾으며 함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것인가. 당신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