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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결 Apr 16. 2022

'지금은'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를 정의하고 소개하기가 어렵다는 고민에, 오늘 만난 친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문장씩 읊어주었다. 그중에 아래 세 문장이 와닿았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
'성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액티비티를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

내가 지향하는 바를 잘 파악한 명료한 문장이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아쉬워하는 내 모습을 투영한 문장이다.

이들에는 공통적으로 '하고 싶다'는 말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니까 욕망은 있지만 그 결과물은 아직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결과물을 남기고 인정받아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있었다. 하고 싶은 것뿐이 저 세 문장 속에서 그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어쩌면 아직도 그런 열정으로 반짝이는 나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매력으로 보인 것 같아 위안이 된다.

그리고 나를 정의한 말들 뒤에 이어진 친구의 말에 이 모든 고민의 무게가 사라졌다. 친구는 우리가 늘 변하고 있어서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기보다는 "나는 '지금은' 어떠한 사람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지금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게. 나는 왜 불변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어 나를 정의하려고 했을까. 나의 알맹이가 무엇인지를 찾고 왜 굳이 이름을 붙여두려고 했을까. 그렇게 내 정체성을 찾을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는 나를 위해 죽기까지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이 모든 생애의 시간을 살아가는데 충분한데 말이다.

정체성은 그것 하나면 되었다. 이제는 지금의 내가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를 설명해봐도 좋겠다. 예를 들자면, 나는, 지금은, 아침 3km 달리기와 서울-팔당 라이딩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이다.


선명해진다는 것.

 친구와의 만남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는 서로 비슷한 결을 가졌지만 또한 굉장히 다른 사람이어서 느껴지는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고 배울  아는 멋진 태도로 서로의 이야기에  기울여준다. 그리고  친구는 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선명해진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친구는 시작을 잘하고, 시작한 것을 1년 이상 꾸준히 하고 있고, 무던하면서 활동적이다. 반면 나는 시작을 주저하고, 연 단위의 꾸준함은 없지만 단기간에 몰입해보고, 예민하지만 다양한 활동을 찾아본다. 또 친구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사진을 찍고, 보정 없이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한편 나는 내가 느낀 그 순간의 색감과 분위기를 담아내고자 찍은 사진은 보정을 하고, 보정하는 그 과정을 즐거워한다.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상황들을 나누면서 서로의 다름에서 불편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더욱 또렷해지고 선명해지는 고마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 선명해진다고 말하는 친구만큼이나 선명해지는 나를 보며, 나도 내가 조금은 더 마음에 들어진 하루였다. 우리 안의 다채로움이 한강의 윤슬만큼이나 반짝거린다.


더 큰 자극으로 덮기보다, 자극을 덜어낼 줄 아는 것.

분명히 옆자리에는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시끄러운 대화를 하고 있었고, 어디선가 음악도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물살에 흔들리는 햇빛을 보며 한없이 고요하게 느껴진 한강 둔치였다. 그곳에 앉아 적당히 조용한 이 순간을 누렸다. 친구는 최근 다녀온 여행과 조만간 떠날 여행 계획을 말하며, 일상이 너무 시끄러워졌을 땐 고요한 곳을 찾고, 너무 고요할 때는 시끄러운 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일상을 적절한 상태로 느끼려고 한단다. 신기했다.

나에게 여행은 여행지를 위한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여행 후의 일상을 위해 여행을 간다기보다는, 여행지 자체를 가고 싶은 여행이었달까. 그래서인지 더 즐겁고 더 색다르고 더 짜릿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던 것 같다. 휴양을 하더라고 더 강렬한(?) 휴식을 하고 싶은 아이러니로 인해 여행 짐을 한가득 싸들고 휴양지에 가서 사진 남기기에 바쁜 여행을 했었다. 나의 여행은 더 큰 자극으로 지루한 일상을 덮기 위함이었는데, 일상보다 더 지루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을 짜릿하게 만드는 마음가짐이라니! 발상의 전환이다.


하루의 1/4를 함께 보내며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나 자신과 꾸준히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은'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도, '일상'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행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에 집중할 때 가능한 것이구나. 과거나 미래에 마음을 빼앗겨 오늘에 소홀했던 시간을 반성해본다. 오늘, 나는 이 오늘로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오늘은 이 충만함 속에 잠도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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