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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25. 2022

2. 비인기 구역

 학기 초에 결석을 오래 해서인지 슬아는 새로운 반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다. 이미 아이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기 시작했고, 그나마 안면이 있는 아이들도 인사를 주고받을 뿐 슬아에게 큰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적극적으로 무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좀처럼 의욕도,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슬아는 낯가림이 심했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교실 문 앞에 서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반 아이들의 이름을 파악하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교실에선 초조하게 시계만 바라봤고 급식 시간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조별 활동 때도 슬아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윤슬아! 너 아직 게시판 확인 안 했어?”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슬아는 화들짝 놀랐다. 언제 왔는지, 키가 큰 남자아이가 슬아 곁에서 종이를 내밀고 서 있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쉬는 시간에도 슬아는 넋이 나간 것처럼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어.”

  낯선 남자아이의 등장에 슬아는 깜짝 놀랐다. 

  “여기 청소구역 목록 보고 원하는 곳에 이름 써서 돌려줘.”

  “아...그래, 알았어.”

  돌아서는 듯했던 남자아이는 다시 슬아 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학급 청소 말고 일주일에 한 번 봉사활동으로 청소할 곳을 고르는 거야. 비인기 구역은 교무실과 도서관. 교무실은 선생님들이 계시니까 아무래도 좀 불편할 거고, 도서관은 항상 정리해야 할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대. 그러니까 거기 두 군데는 피하는 게 좋을 거야.”

  남자아이는 토끼 눈을 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슬아에게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어, 그래. 고마워.”

  슬아가 종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난 이서준이야. 내가 우리 반 회장인 건 알고 있지?”

  서준은 교실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슬아에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왕따 없는 반을 만들겠다’는 공약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록 오다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정도였지만 같은 학원에 다니며 지켜본 슬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준은 새 학기 첫날 시무룩한 얼굴로 교실에 들어서는 슬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미안. 생각 좀 해보고 학교 끝나기 전에 돌려줄게.”

  슬아가 말을 끝내자마자 마지막 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수업 시간 내내 슬아는 서준이 건네준 청소구역 목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떤 구역에 어떤 아이의 이름이 올라 있는지 하나씩 꼼꼼히 살폈다. 서준이 말한 대로 교무실과 도서관이 가장 인기가 없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도, 일이 많은 것도 슬아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주치기 싫은 아이들을 피할 수만 있다면. 

  ‘학교 정원이나 놀이터는 안 돼. 청소는커녕 친한 애들끼리 몰려다니며 신나게 놀기만 할 테니까.’

  슬아의 생각처럼 실외 청소구역은 이미 모집인원을 초과한 상태였다. 슬아는 목록에서 익숙한 이름들을 찾아냈다. 슬아만 놀이에서 은근히 소외시켰던 윤아, 필요할 때만 슬아에게 친한 척했던 연욱, 아무런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했던 윤서, 살찌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를 따돌렸던 나연, 자기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오랫동안 삐져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던 가윤. 

  슬아는 고심 끝에 단 한 명의 이름만 쓰여있는 도서관에 자기 이름을 써넣었다. 

  ‘이서준. 회장이라 일부러 희생한 건가? 일이 많다고 하더니.’

  슬아는 슬쩍 고개를 돌려 서준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길거리에서 봤다면 분명 중학생이라 생각했겠지. 슬아는 키가 큰 서준이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또래보다 작은 키와 왜소한 체구가 슬아에겐 콤플렉스였기 때문이다. 덩치도 성격도 좋은 서준을 보니 갑자기 슬아의 머릿속에 윤정이가 떠올랐다. 

  ‘윤정이가 있었다면 이렇게 외롭진 않았을텐데... ’

  만약 윤정이와 함께 학교에 다녔다면 슬아는 청소구역으로 놀이터를 정했을 것이다. 만약 윤정이와 전처럼 시시콜콜 수다를 떨 수 있었다면 싫은 친구들이 잔뜩 있는 교실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윤정이가 곁에 있었더라면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다시 돌아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정이와 유치한 장난을 치던 추억이 떠오르자 슬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누가 볼 새라 슬아는 고개를 푹 숙여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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