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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25. 2022

3. 왕따 클럽

“서준아, 우리 학교 끝나고 편의점 갈 건데 같이 가자!”

  “그래! 어차피 영어학원 시작하려면 한 시간 정도 남았잖아.”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돌 그룹처럼 옷을 맞춰 입은 가윤과 나연이 서준의 책상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미안. 나 도서관 청소하는 날이라.”

  “봉사활동? 그냥 대충 끝내고 가면 되잖아.”

  가윤이 입을 삐죽거리며 물었다. 

  “그래, 우리가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얼른 끝내고 와.”

  “일이 많다고 들어서 금방 끝나진 않을 것 같아. 먼저 갈게. 이따 학원에서 보자.”

  가윤과 나연은 아쉬운 듯 서둘러 책가방을 메고 교실 문으로 향하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교 시간 복도는 이리저리 뛰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아이들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실내화 주머니를 풍차처럼 씽씽 돌리는 아이,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 왁자지껄 떠들며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아이. 슬아는 시끌벅적한 아이들을 뒤로한 채 가방을 아무렇게나 걸쳐 메고 터덜터덜 도서관을 향해 걸어갔다.

  “슬아야! 여기!”

  서준이 도서관에 들어서는 슬아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반기는 서준을 보니 슬아는 괜히 민망해졌다. 

  “선생님! 저희 5반 친구들 다 모였어요.” 

  서준은 슬아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쭈뼛거리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서준 말고도 세 명의 아이들이 더 와 있었다. 

  “도서관 청소에 지원해줘서 너무 고마워. 평소 자주 보던 얼굴들이네!”  

  사서 선생님은 아이들 각자에게 청소구역을 정해주신 뒤 책 정리하는 법을 자세히 알려주셨다. 십진분류법에 따라 나뉜 책장들의 위치와 도서기호에 따라 책을 정확히 꽂아두는 법, 신간 코너를 정리하는 법, 학년별 윤독 도서와 필독서를 정리하는 법까지 기억해야 할 내용이 적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때 잠깐 와서 보고 아무렇게나 책을 두고 가는 아이들이 많아, 그래서 제 자리에 있어야 할 책이 엉뚱한데 꽂혀있는 경우가 많지. 인기 있는 책을 독차지할 욕심에 책장 뒤나 구석에 숨겨 놓는 경우도 많으니까 청소할 때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봐 주길 바란다!”

  슬아는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청소’보다 ‘사서’의 역할이 더 큰 이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책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쉽게 손에 익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모를 때마다 번번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슬아는 갑자기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서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자기가 맡은 구역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슬아는 도서관 한 켠에 작은 방처럼 붙어 있는 창고를 맡았다. 창고 안엔 제법 큰 테이블과 의자가 여러 개 있었고, 각 반에 들어갈 윤독 도서가 학년별로 선반 가득 쌓여있었다. 

  슬아는 먼저 흐트러진 책들을 바로 세우고, 청소함에서 꺼낸 빗자루로 바닥을 쓸었다. 지금까지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처럼 선반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이것까지 닦아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하던 슬아는 청소함에서 몇 년은 묵은 것처럼 보이는 걸레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너 서준이 좋아하는 거 맞잖아!”

  “아니라니까. 너야말로 이서준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슬아가 화장실 문을 열자 가윤과 나연이 동시에 슬아를 쳐다봤다. 

  “아, 안녕?”

  슬아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윤슬아. 우리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올해 또 같은 반 됐네.”

  나연이 슬아에게 말을 걸었다. 슬아는 어설프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가윤과 나연을 지나쳐 세면대에서 걸레를 빨기 시작했다. 

  “너, 혹시 우리가 한 말 들은 건 아니지?”

  나연이 가연의 눈치를 보며 슬아에게 물었다.

  “무슨 말?”

  슬아가 걸레 빨던 손을 멈추고 묻자 가윤이 나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나섰다.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그건 뭐야?”

  “걸레.”

  “왠 걸레?”

  “청소 중이어서.”

  가연이 궁금하다는 듯 재차 물었다.

  “우리 반 청소 끝났는데 무슨 청소? 설마 도서관?”

  “어.”

  가연과 나연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야, 윤슬아. 너도 왕따 클럽 멤버냐?”

  “그게 무슨 말이야?”

  슬아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너 몰랐어? 도서관 청소하는 애들. 왕서범, 최한솔, 박혜빈, 걔네 우리 학교 공식 왕따들이잖아. 그런데 왜 우리 서준이까지 거기 들어가 있는지 몰라. 앗.”

  나연은 신나게 떠들다 갑자기 말실수라도 한 듯 급하게 입을 손으로 가렸다. 가윤이 나연을 향해 눈을 흘기더니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너도 조심해. 괜히 걔네들이랑 어울렸다간 왕따 클럽 멤버로 찍힐지도 모르니까. 그럼 청소 열심히 하고. 우리 먼저 간다!”

  가연과 나연은 팔장을 끼고 화장실 문밖으로 사라졌다. 슬아는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왕따 클럽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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