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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Feb 28. 2022

J의 단어

보류



J: 사실 이제야 일을 시작한다는 게 조금 씁쓸해.

나: 이런 불경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가고 싶은 직장에 턱 붙은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J: 자꾸, 다 늦은 것 같아서.

나: 에이. 우리 아직 젊거든.

J: 난 20대에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J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교복을 처음 입은 열넷부터 그는 일 년에 네 번 있는 시험을 위해 살았다. 대학을 졸업할 때엔 대학원 입학시험이 그를 기다렸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에는 직업을 얻기 위한 시험이 우뚝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J에겐 보류의 목록이 있었고, 항목은 계속 추가되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축구 시합, 가족과의 대화, 꼭 배워보고 싶은 클래식 피아노, 겁 없이 떠나는 배낭여행…. 마지막에 더해진 두 가지는 슬펐다. 맛있는 밥, 그리고 달콤한 잠.


도서관에 앉아 지루한 공부를 이겨내야 하는 날이면 그는 친구들의 SNS를 몰래 살피곤 했다. 그들은 넓고 화려한 세계에 있었다.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에서 평소에는 절대 입지 못할 옷차림으로 민망한 포즈를 취했고, 누군가는 입에 넣기에 아까운 색색의 음식을 늘어놓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에 비해 J의 시야 안에는 몇 년째, 메이플 컬러의 단조로운 책상과 필기구가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졸업만 하면 보류 목록은 깨끗하게 지워질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길고 긴 학업을 마친 후 J는 보류가 그의 습관적 선택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통스러운 훈련도 반복하다 보면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걸까. 완전히 다른 새해를 맞이할 거라는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는 다시 작년과 비슷한 생각을 하며 3월을 보낸다. 또 다른 결실을 얻기 위해선 무엇부터 보류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전문 읽기 : http://a-round.kr/j의-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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