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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삶 Jan 21. 2024

노 메이크업, 노 액세서리

나는 여자이니까 화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화장을 하는 순간 ‘못생긴 나’는 가려지고 ‘예쁜 나’가 새롭게 탄생한다고 믿으며 화장하는 행위를 좋아하고 즐기기도 했었다. ‘얼굴은 무조건 하얗게 입술은 무조건 빨갛게’가 아름다움의 기준이던 그 시절, 첫 남자친구와의 데이트에 나가기 위해 공들여 화장을 하면서 여자로서의 설렘을 느꼈던 기억도 있다. 나는 여자이니까 다른 여자 친구들처럼 당연히 화장품 쇼핑을 좋아해야 했고, 예쁜 용기에 담긴 다양한 색깔의 화장품과 메이크업 도구를 예쁜 파우치에 담아 항상 가방에 소지하고 다녀야 했다. 여자로서 나에게 화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언제나 함께해야 하는 영원히 벗지 못할 정체성의 일부 같은 느낌의 것이었다.


나는 액세서리를 사 모으는 일에도 아주 열심인 적이 있었다. 작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예쁜 보석들을 보고 있자면, 뭐랄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최고의 여인이 된 것만 같은 가슴 뛰는 착각을 하게 됐었다고 할까. 그 기분에 온 세포가 매료되어서 매일 액세서리를 하고 다녔다.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발찌와 시계까지 온몸 구석구석에 주렁주렁. 그때의 나는 액세서리가 여자로서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무기라고 믿었었고, 그때의 나는 액세서리가 이렇게나 무거운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메이크업과 액세서리의 무게에 짓눌려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을 때 나는 ‘노 메이크업’과 ‘노 액세서리’의 삶을 선택했다. 늘 여자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었는데, 화장이 진해지고 액세서리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아름다움에서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충만함이 아닌 공허함이 내면에서 피어오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메이크업과 액세서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과 액세서리 없는 나는 누구이며, 이것들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걸까? 나에게 있어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는 여성성의 상징이었다.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로 나를 꾸미면서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로 완성된 외모의 화려함은 도리어 나라는 사람만이 지니고 있고 지닐 수 있는 고유한 색깔의 ‘진짜’ 아름다움을 가려버렸고, 나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의 ‘진짜’ 여성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박탈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서, 내 존재 특유의 여성성을 찾아나가기 위해서 과감하게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를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다.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를 걷어내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오롯이 내 존재의 무게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내 삶이 무척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물론 메이크업이나 액세서리 없이도 빛나는 나만의 ‘진짜’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꾸밈을 벗자 드러난 나의 진짜 아름다움은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 있고 훨씬 더 강력하게 매력적이어서 나의 내면은 충만한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답게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여성성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성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지 외면을 꾸민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얻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며, 나의 여성성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화려함을 걸친 내 모습과 이성들로부터의 예쁘다는 칭찬의 말에서는 결코 나의 여성성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결국 자신의 여성성은 자신이 찾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가장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에너지와 기분을 입을 때 가장 생기가 돋고 활력이 넘치는지, 어떤 활동을 할 때 가장 눈빛에 열정이 가득한지, 무엇을 할 때 내면이 만족감으로 채워지는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극도의 몰입감은 언제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험하고 관찰하여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 속에서 개성이 녹아 있는 나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이것으로부터 나만의 스타일이 담겨 있는 독특한 여성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성성 찾기는 ‘나 자신을 깊이 탐구하려는 의지’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여자들 각자의 영원한 과제이며,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다움’에 어울리는 생활방식과 존재양식을 적극적으로 찾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갈 때 저절로 완성에 이르게 되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이다. 우리들의 여성성은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다.


이제는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 액세서리도 착용하지 않는다. 대신 ‘최대한의 꾸밈없음’으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색조화장은 하지 않고 기초화장만 간단하게. 옷을 입는 것처럼 화장품도 한 번에 하나만 입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이자 유일한 보석 장신구는 사랑의 서약이 담긴 결혼반지. 매일 ‘노 액세서리’라는 액세서리를 착용한다. 네일아트와 페디큐어 대신 손톱과 발톱을 제때에 깎는 것처럼 청결함과 단정함을 위한 일을 꾸밈으로 여긴다. 나는 매일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꾼다. 쇼핑을 하는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언어를 모은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색의 립스틱을 바를지 고민하는 대신 어떤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갈지 어떤 기분으로 지금 이 순간을 보낼지에 대해서 진지함을 담아 부지런히 고민한다. 아름다움과 여성성에 대한 스스로의 확고한 기준 없이 그저 무조건적으로 외면의 화려함만을 좇았던 그 때, 화려함으로 열심히 가렸던 나의 진짜 아름다움을 이제는 당당하게 드러내며 살고 있다. 지금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여성으로서 매력적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한 인간으로서 ‘살아 있음’의 자유를 만끽하며 인생을 누리고 있다. ‘노 메이크업, 노 액세서리’로 되찾은 나의 행복,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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