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한 행복들에 사랑과 시간을
내가 선택한 임신과 출산과 육아이지만 가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시계만 멈춰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나만 한참 뒤에 남겨져 혼자 뒤처져 있는 기분.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특히 요즘 같이 오롯이 나의 모든 시간을 가정에 쏟아야만 하는 시기에는 더욱더 기분이 가라앉고는 한다. 공부도 못하고 책도 못 읽고 글도 쓰지 못할 만큼 빠듯한 시간으로 일상에 쫓길 때면 나의 마음도 정신없는 방황을 시작한다. ‘나는 과연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하지?’ ‘가정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한데, 그래도 일보다 가정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나?’ ‘근데 왜 나는 지금 가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세라 본 브래넉이 쓴 <행복의 발견 365>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설사 돈이 많아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집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정으로 바꾸려면 사랑과 시간이 꼭 필요하다.”
사랑과 시간. 나는 과연 지금 가정에 충분한 사랑과 시간을 쏟고 있는 걸까? 기꺼이 내 사랑과 시간을 모두 가정에 주고 있나?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가정인데. 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가정인데. 한동안 사이버대학 강의를 듣느라 책을 읽느라 글을 쓰느라 집안일은 뒷전이고 남편을 챙기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첫째와 놀아주는 일에도 다소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사랑하는데, 많이 많이 사랑하는데, 이 사랑은 그동안 내 마음속에만 있고 가족들에게 전달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랑과 시간을 가정에 제대로 쏟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 아이에게 특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만삭의 몸으로 20개월 아이의 체력과 에너지를 따라가자니 힘에 부쳐서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아이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고 잠들기 전 그 잠깐의 시간조차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와 놀아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주말이 되면, 아니 주말이 되기 전부터,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더 최악인 건, 아이의 입에서 가끔가끔 나오는 짜증 섞인 톤의 말들. 나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나를 고스란히 비춰주는 내 아이의 그 말들. 내가 어지간히 첫째에게 짜증을 부렸나 보다. 소름이다, 정말. 나는 지금 잘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뭔가 문제가 있음을 뼈아프게 자각한다.
나에게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최최우선 과제는, 가정을 돌보는 일이다. 이건 일과 공부와 독서와 글쓰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훨씬 더 중대한 삶의 과업이다.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는 지금은 더욱이 아주 결정적인 시기이다. 집중해야 한다. 나중은 없다. 바로 지금, 집중해야 한다. 주말 내내 아이와 씨름하며 정신없이 보내고 드디어 일요일 저녁, 잠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첫째, 정말 많이 컸네. 둘째처럼 신생아였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만큼 크다니.’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이의 성장 과정에 두 눈과 마음을 고정하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가 다 커버려 내 품을 떠나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가서 후회하겠지. 아이가 엄마 품을 바라고 원할 때 그때 많이 안아주고 많이 놀아주지 못했던 것을.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텐데 그러면 또 그때 가서 아쉬워하겠지.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 주고 더 많이 행복한 시간을 나눌걸. 이렇게 첫째 아이와 요즘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지금이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힘들게만 느껴졌던 주말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지나가버리면 절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귀중한 시간.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며 품 안으로 달려오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평생 기억될 엄마 품의 추억이기에. 아이의 정서에 고스란히 새겨져 이어갈 시간이기에.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어렵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아이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바꾸어 본다. 지금 이 순간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며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이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함을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한다. 아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도 주의를 기울여 짜증과 화가 아닌 사랑을 담아야 한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비난은 오직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하는 부모의 무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부모로서 나의 무능력을, 무능력에서 비롯된 화와 짜증을, 인정한다. 이제 그만 그 잘못된 화와 짜증을 거두어들이고 사랑을, 행복을, 기쁨을 아이에게 주기로 다짐한다.
지금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이, 독서가, 글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잠시 뒤로 미뤄두자. 그래도 괜찮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잠시 뿐이니까. 지금은 가정을 돌볼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시간을 쏟을 시간이다. 멀리 넓게 그리고 깊게 보자. 여유를 갖자. 가정을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단순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에게 집중하자. 아이와의 따뜻한 눈맞춤에 시간을 쓰고, 엄마를 향해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는 일에 정성을 쏟자. 아이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반응을 해주고 행복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자.
이남옥 작가의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에서 행복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행복은 극적이지 않아요. 익사이팅하고 드라마틱한 것이 행복이 아니에요. 행복은 생각보다 밋밋하거든요. 가족이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것, 함께 좋은 공기 마시며 산책하는 것, 예상치 못하게 가족이 나를 데리러 오거나 맛있는 밥을 차려준 것, “수고했어” 말하며 내 어깨를 토닥이는 것, 그런 것들이 행복이에요.
아이와 함께 느끼는 행복도 그래요. 잠 깨어 눈 뜨면서 아이가 환하게 웃어주는 것, 만나면 안아주거나 볼 부비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것, 사소하지만 어느 날 아이가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대단한 시험에 통과하고,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벌고, 이런 극적인 결과만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삶이 각박해집니다.
행복은 지속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 순간 순간의 느낌이에요. 소소한 것들의 만족이 많을수록 삶이 풍성해지고 우리 곁에 행복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절대 멀리 있지 않아요. 인생의 굴곡 앞에서 그렇게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굴곡 이면의 양지, 또 그 훗날의 행복을 찾아보겠다고요.”
지금 아무 것도 안 하는 듯, 시간이 멈춘 듯,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와 육아에 집중하기 힘들어질 때면 이 ‘밋밋한 행복들’에 대해 생각해보며 가정을 돌보는 ‘지금 이 순간’의 의미와 가치를 마음 깊이 새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