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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Sep 06. 2021

엄마의 다시마 국물

그까이꺼 안해도 괜찮아.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 나는 곡에 대한 편식이 심했다.

명곡집이나 익숙한 클래식 곡을 칠 때는 어디서 들어본 음악을 내 손으로 연주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설렜다. 반면 기초를 잘 다듬기 위해 병행하는 테크닉 연습곡은 멜로디도 생소하고 손은 손대로 아파져서 재미가 없었다. 급기야는 피아노 학원에 가기가 싫어졌다. 엄마는 내 칭얼거림을 몇 번 듣더니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그냥 얘 원하는 곡 위주로 치게 해주세요. 손 모양 안 예뻐도 괜찮아요. 네, 그냥 흥미 잃지 않을 정도로만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학원에서 유일하게 체르니를  치는 애가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모든 게 지겨웠다. 매일 입는 교복도, 등급을 가르는 내신 공부도, 호통치는 수학 선생님도. 아마도 사춘기가 왔던 거겠지. 학교가 유독 맘에 안 들었던 날은 괜히 집에 와서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 나 학교 안 다니고 그냥 검정고시 보고 싶어."

진심이 섞여 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 학교생활의 고충을 생색내고 싶었다. 엄마가 어서 '왜?' 하고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얼떨떨했다.
 "그래? 그러면 자세히 한 번 알아봐. 네가 잘할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은데?"

이유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막상 검정고시에 대한 허락 아닌 허락이 떨어지고 모든 선택과 책임이 나에게 떠맡겨지니 아찔했다. 그렇게 나는 자퇴할 용기는 없어서 고등학교 3년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했다. 물론 그 뒤로 엄마한테 검정고시의 ‘검’ 자 조차 꺼내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랬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얘기하면, ‘안 해도 괜찮다’고 했다. 이 공식은 엄마의 인생에도 적용되었다. 모든 것을 다 해내려고 마음을 허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엄마는 마음만 먹으면 대단한 일들을 해내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 국악에 뜻이 있던 엄마는 학비가 많이 드는 음대에 가고 싶다고 선뜻 말은 못 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은 가족들 몰래 대학 입학시험까지 보고 나서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며 당당히 합격증을 내밀었다.
엄마 나이 40세에는 박사과정에 도전해 장장 10년에 걸쳐 학위를 따내었고, 60세를 바라보는 요즘은 연기를 배운다며 시니어 엔터테인먼트에 덜컥 등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엄마는 하고자 결심한 일들은 어떻게든 해내고 만다.


 이렇게 당차고 야무진 엄마에게도 도무지 마음이 안 가는 게 있었으니, 바로 요리다. 어차피 시집가면 요리며 청소며 실컷 할 텐데 뭣 하러 미리 하느냐고 할머니가 딸내미들 살림손을 애지중지 아껴온 탓이다. 덕분에 다섯 형제 집안의 막내며느리가 된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도통 없었다. 콩나물을 한 가닥 한 가닥 다듬는 법을 몰라서 한 뭉탱이씩 집어 칼로 댕겅 썰어버리기도 하고, 제사상에 올릴 비싼 생선을 안 태우려고 계속 뒤집다가 머리가 덜렁 떨어져 몸통과 분리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댁 식구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하이라이트는, 다시마 국물 사건이다.




 크고 작은 전적이 많았던 엄마에게 하루는 난이도 최하의 미션이 주어졌다. 바로 다시마 국물 내기.

다시마를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고 큰엄마가 친절하게 일러주기까지 했다. 엄마는 배운 대로 큰 솥에 물과 다시마를 넣고 기다렸다. 물이 바글바글 끓어오르자 뚜껑을 열고, 옆에 있던 그릇에 다시마를 조심스레 건져두고, 그리고 국물은 깔끔하게 하수구에 버렸다!

… 그렇다. 엄마에게 있어서 자고로 요리는 달걀을 삶든, 국수 면을 삶든, 항상 물속의 건더기가 주인공이었다. 끓인 물 따위는 제 역할을 다해 버려지는 것이 상책이었다. 다시마 국물 사건 이후로 엄마는 자연스럽게 설거지 당번이 되었다. 안 그래도 정이 안 갔던 요리와는 더 두터운 담을 쌓게 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엄마의 요리 실력은 다른 의미로 유명하다. 우리 집에 친척들이 놀러 와도 음식은 당연지사 시켜 먹는다. ‘안 해도 괜찮아.’라는 엄마의 인생 공식에 너무나 부합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엄마는 유튜브를 보며 음식 만들기에 빠져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시절을 다시 생각해보면, 나에게 체르니는 건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약 처방 같은 곡이었다. 그때는 너무 써서 삼키기 싫었던 체르니였는데,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면서 살짝 맛볼 마음이 생겼다. 취미반이라서 원하는 곡만 치면 되는 명분이 확실함에도 연습하다가 손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한 번씩 테크닉 곡을 꺼내 연습한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학교를 관두고 싶다고 으름장을 놓던 고2 때까지 낭낭하게 학교에 다니던 나를 고3이 되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니 오히려 조바심이 났다. 친구에게 물어 추천받은 문제집을 사고, 독서실에서 밤을 새워서 공부했다. 소위 말하는 스스로 학습이 효과가 있었는지 공부를 한 기간에 비해 수능을 잘 봤다. 고등학교 3년간의 내신 점수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대학을 정시로 합격해서 담임 선생님은 기가 찬다고 했다.


 엄마의 인생 공식은 '안 해도 괜찮아.'가 끝이 아니었다. 한 마디가 더 있었다.

'언젠가 하고 싶어질 때 잘하면 돼.’

때를 기다리지 않고 하고 싶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자꾸 하면 엄마가 쿨하게 버린 다시마 국물 꼴이 나는 것이다. 매번 나에게 적절한 때가 오기를 기다려주는 것이 엄마의 방식이었다.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한테 말만 해 다 해줄게."

 엄마는 오늘도 나에게 당근이 담겨있는 된장찌개를 내어 주면서 해맑게 물어온다. 된장 색에 차마 스며들지 못해 어색하게 주황빛을 내고 있는 아삭한 당근 속도 모르고. 나도 엄마의 적절한 때를 기다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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