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떠나느냐의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요즘 미국에서 평단의 좋은 평가는 물론이고 박스오피스에서도 좋은 기록을 내고 있는 GET OUT이라는 영화가 있다. 중저예산 공포영화를 주로 많이 제작하는 Blumhouse Productions에서 제작한 영화인데, 개인적으로 기회를 내서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약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tartUp이라는 Sony에서 제작하는 TV 드라마에서 일하고 있었다. 크게 화제를 모으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드라마 <셜록>에서 왓슨 박사 역할로 인기를 얻은 마틴 프리먼이 주연으로 연기를 했기 때문에, <셜록>을 재미있게 본 나로서는 나름 흥미를 느끼면서 일을 했던 드라마이다. 이 작품이 끝나기 약 두어 달쯤 전이었을까?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Blumhouse에서 저예산 공포영화를 시작하는데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연락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Blumhouse는 페이가 소위 말해서 짜기로 소문난 곳이다. 경제적으로 그것을 감내하기엔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고, 게다가 작업 중이던 StartUp에 별 불만도 없었기에 굳이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쪽에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던 데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Blumhouse 영화의 시작일이 내가 진행 중인 드라마에서 빠지기엔 너무 촉박했다. 만일, 그때 내가 그만두게 된다면 StartUp 입장에서는 진행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내게 반드시 좋은 감정을 유지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물론, 이 분야에서 이런 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프로젝트들이 시작일까지 많은 여유를 두지 않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다반사여서, 현재 일을 하고 있는 경우엔 다소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떠나는 곳의 입장은 그냥 무시하고 '나 내일부터 못 나와, ' 혹은 '나 다음 주가 마지막이야'라고 통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장소와 시간을 막론하고, 그동안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그 사이에 앙금이 생기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 게다가, '좁은 바닥'에서 안 좋은 말이 퍼질 수 있다면? 시간이 지나 내가 꼭 하고 싶은 중요한 프로젝트의 담당이 다시 그 사람이라면?
Don't burn your bridges. 지금 그와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떠나야 한다면 최대한 잡음 없이, 서로 간에 앙금이 남지 않게 떠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StartUp에 머물기로 했고, 그때 사람이 필요했던 Blumhouse 제작의 영화는 지금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Get Out이다. 당시 결정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내가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