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편집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다른 어떤 분야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그 세계에 처음 들어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이때 실력이 중요하죠.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누구를 아느냐입니다.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아마도 채용 공고가 인터넷과 지면을 통해 나 갈터입니다. 경력자가 아닌 이제 막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상관없다면, 관련 학교와 학과로 협조문이 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는 철저히 그들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작품 시작하는데, 너 혹시 아는 사람 있어?
이 한마디가 이곳에서 사람을 어떻게 구하는지 알려줍니다. 만일 이 작품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셈이죠. 작품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 조차 듣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니, 이력서를 보낼 기회도 없이 지나가는 겁니다. 그런 기회가 있었다는 것조차 모른 채요. 다만, 에이전트가 있는 에디터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에이전트가 마련해 주는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참여할 수 있으니까요.
무작정 연락하여 만난 케빈 텐트(Kevin Tent)
예전부터 좋아하는 작품의 에디터나 어시스턴트 에디터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그들에게 만나고 싶다고 연락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장 나에게 어떤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길 바란다면 그건 아마도 언감생심일 테죠. 일단 그들에게 내 얼굴을 내보이고, 한 번 만난다는 사실이 제겐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에디터들 중에 <다운사이징 Downsizing> <사이드웨이 Sideways> 등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의 작업으로 유명한 케빈 텐트가 있습니다.
케빈에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자, 그에게서 곧 좋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도 저도 일 때문에 바쁘다 보니 당장 만나기는 힘들었고, 처음 이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 후 얼마 후에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케빈을 만난 곳은 토요일 이른 아침 파라마운트 영화사 앞의 카페였습니다. 날이 좋은 이른 주말의 아침은 커피를 마시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딱 좋은 조건이었죠. 먼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그를 기다렸습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수수한 옷차림에 안경을 쓰고 다소 벗어진 머리에 온화한 미소를 띤 케빈이 카페에 들어섰습니다. 좋은 음악, 그의 미소, 좋은 커피 향. 모든 게 딱 좋은 분위기. 케빈은 저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었습니다.
조금 긴장되었던 마음은 케빈의 친절함 덕에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많이 풀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일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그의 아들 이야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사소한 개인적인 일들까지도요.
지인을 통해 만난 톰 크로스(Tom Cross)
AFI 재학 당시 선생님의 소개로 만나 함께 잠시 동안 일을 한 이후, 계속 저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지금까지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쉐런이라는 고마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가 어느 날 제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내일 톰과 점심 먹을 시간 있어?”
그녀가 말하는 ‘톰'은 <위플래시 Whiplash>로 아카데미에서 편집상을 수상하고, 당시 <라라랜드 La La Land>를 편집 중이던 톰 크로스를 말함이었습니다. 내일이라니. 당시 일을 하고 있던 터라 평일 낮에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아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이지.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는데?”
“톰이 지금 일하고 있는 편집실이 유니버설 스튜디오 근처야. 건너편에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보면 좋겠다고 하네. 주소 보낼게.”
다음 날, 식당에 먼저 도착한 저와 쉐런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조금 후에 저쪽에서 길을 건너는 톰이 보였고, 곧 커다란 웃음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은 그런 웃음을 만끽할 여유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무슨 질문을 처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하지만 제가 미처 먼저 어떤 질문을 하기도 전에 톰이 먼저 제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야기는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톰은 식사 내내 환한 웃음을 보이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었고, 전 그런 그가 내심 고마울 따름이었죠. 그에게 질문을 하면 그는 이내 환한 미소와 함께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저도 ‘또 어떤 질문을 해야 하지?’라는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칠 무렵, 톰은 우리에게 함께 편집실에 가서 좀 더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라라랜드>의 편집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그의 편집실은 제법 아늑한 분위기였고, 그곳에서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크게 세 가지의 경로로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오고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다닌 학교인 AFI 선배들을 통해, 둘째는 함께 일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 셋째는 무작정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통해서입니다. 위에서 말한 톰 크로스와 케빈 텐트 경우가 이중 둘째와 셋째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세 가지 경우와는 달리 조금은 특이한 경로로 누군가를 만나게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친구 식당의 단골손님이었던 테리 켈리(Terry Kelley)
“우리 식당에 자주 오는 손님 중에 무슨 드라마 편집한다는 사람이 있는데, 혹시나 해서 주려고 명함 받아뒀어요. 오늘 가져오려고 했는데 깜빡했네요. 내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줄게요.”
“아, 정말요? 고마워요.”
“이름이 테리인데, <홈랜드 Homeland> 편집한데요.”
아내의 친구 가족과 어느 날 함께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아내의 친구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시엔 아직 AFI를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떻게든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맥을 넓히려고 애쓰던 시절이었기에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었죠. 게다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인 <홈랜드>라니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약속한 대로 사진을 보내주었고, 저는 테리에게 당장 문자를 보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내가 일하는 편집실로 오지 않겠어?”
테리는 당시 <홈랜드>를 편집 중이던 그의 편집실로 나를 초대해주었습니다. 날이 제법 좋았던 어느 날,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드라마 편집실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소니 스튜디오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그의 편집실에 들어섰습니다.
길면 30분 정도 잠깐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는 달리, 테리는 약 한 시간 동안 자신이 편집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해 주며, 내게 편집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당시에도 고마움을 느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TV 편집에서 일을 하며 스케줄이 얼마나 빠르고 바쁘게 지나가는지 알게 되고 나니, 그가 당시 나에게 정말 큰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 그리고 네트워크
어느 여름 주차장에서 길을 건너 스튜디오로 들어오는데 어떤 남자가 제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여기에서 일해요?”
“네.”
“아, 그렇군요. 그럼, 여기…”
남자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개인 명함을 한 장 꺼내어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자신은 다른 주에서 얼마 전에 LA로 이사를 왔는데 TV 쪽에서 일을 찾고 있다며 혹시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거나 하면 자신의 명함을 전해 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의 명함에 적힌 포지션을 보니 제가 일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게 더 좋겠다고 했지만 그는 괜찮다며 명함을 제게 주고 사라졌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거리 어딘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