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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22. 2019

에디터스 컷에서 턴오버까지
- 편집의 과정

일반적인 편집 컨펌 단계

우리나라에 비해 이곳의 편집 컨펌 단계는  좀 더 세분화되어있는데, TV 드라마를 기준으로 보자면 기본적인 순서는 이렇습니다.


에디터스 컷(Editor’s Cut) ->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 -> 프로듀서스 컷(Producer’s Cut) -> 스튜디오 컷(Studio Cut) -> 네트워크 컷(Network Cut) -> 픽처 락(Picture Lock)

편집 프로그램인 아비드에서 본 각종 컷 해당 빈(Bin)


에디터스 컷(Editor’s Cut)

촬영 시작과 함께 에디터는 편집을 시작하고, 촬영이 끝나고 3-4일 후 완성된 편집본을 보냅니다. 이 버전은 DGA(Directors Guild of America 미국 감독조합)과 스튜디오 간의 계약에 의거하여 오직 감독에게만 보내집니다. 감독이 보기 전엔 절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 되어있죠. 


에디터스 컷은 시나리오를 최대한 존중해서 에디터가 혼자 편집하는 버전입니다. 이 단계에서 에디터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씬의 순서를 바꾸거나, 대사를 삭제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최대한 시나리오대로, 찍혀온 대로 편집을 합니다. 이는 이렇게 함으로써 글(시나리오)이 영상으로 실제 옮겨졌을 때 어떤 부분이 문제가 없고,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함이죠. 이를 보고, 감독은 어떻게 이야기를 다시 구성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나리오대로 편집한다는 게 단순히 기계적으로 자르고 붙이기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제한 속에서 에디터는 최대한 감독이 구현하고자 하는 것, 쇼러너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작업하죠.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

이번 에피소드 감독은 작품 전체의 프로듀서인데, 일반적인 다른 작품과는 조금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쇼러너의 분신으로서 모든 에피소드의 편집을 관장하는 역할을 함께 하고 있죠. 그런 탓에 정작 자기가 연출한 에피소드의 디렉터스 컷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에피소드의 편집을 관리하느라 촬영이 끝난 지 한 달이 훨씬 넘어서야 편집실에 왔네요. 오늘도 자기 에피소드 작업을 하던 와중에 다른 에피소드 관리를 하고 돌아와 다시 작업 중입니다. 뭐, 덕분에 전 오버타임 당첨입니다.

네, 오늘은 야근입니다


디렉터스 컷 중 가장 최고 혹은 최악의 경험은 <볼드 타입> 때입니다. 한 감독 덕분에 디렉터스 작업 4일 내내 새벽 1-2시 퇴근이 일상이었죠. 자신이 연출한 에피소드를 최대한 잘 만들려는 감독의 열정을 탓할 순 없겠죠.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와 달리 TV 드라마에서 감독의 역할은 영화에 비해 아주 작습니다


TV에서 감독은 특별 출연이죠.

제가 아는 어떤 에디터는 TV에서 감독의 역할을 이렇게까지 표현합니다. 이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감독은 쇼러너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에피소드 별로 고용된 것입니다. 다만, 그 속에서 자신의 스타일이나 비전을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게 지나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감독의 주 임무는 작가가 쓴 대본을 쇼러너의 비전에 맞게 찍어오는 것이니까요.


배우 출신인 한 감독의 경우엔 이 노력이 이번에 좀 과해서 편집 과정에서 이를 매만지느라 모두들 꽤 고생을 했습니다. 페이스나 앵글 등 이번 작품과 다소 맞지 않게 연출되어 온 부분들이 많았거든요.


반면에, <제인 더 버진>에서의 한 감독은 편집이 무척 쉬운 케이스였습니다. 사실, 그는 작품의 프로듀서로도 일하고 있는데, 작품의 시작부터 쇼러너와 함께 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쓸데없는 사족들을 찍어오지 않았고, 게다가 쇼러너의 생각에 딱 맞게 찍어왔었죠. 이럴 때 편집팀으로서는 일하기 훨씬 즐겁습니다. 필요 없는 일에 힘을 쓸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프로듀서스 컷(Producer’s Cut)

디렉터스 컷이 완성되면 이는 프로듀서들과 작가들에게 전해집니다. 이 단계에서 작품 전체의 비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쇼러너가 편집에 좀 더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해당 에피소드를 쓴 작가의 목소리 역시 아무래도 좀 더 커지겠죠.


경우에 따라 쇼러너가 에디터스 컷을 확인하기 원할 때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에디터스 컷은 시나리오가 영상으로 구현되었을 때 어떤 모습인지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에, 이야기의 장단점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따라서 쇼러너가 편집실에 매일 와서 작업을 하는 경우부터 이메일 등을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경우까지 작업 방식은 다양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쇼러너가 편집실을 가까이할 때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오는 듯합니다. 


스튜디오 컷(Studio Cut)과 네트워크 컷(Network Cut)

제작사에서 의견을 주는 버전(스튜디오 컷)과 최종적으로 방송사에서 의견을 주는 버전(네트워크 컷)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스튜디오(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제작사' 정도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에서 한 번 걸러주는 스튜디오 컷을 거쳐서 방송사(네트워크)로 가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일정이 너무 빠듯해지거나, 제작사와 쇼러너 사이에 이미 신뢰가 쌓인 경우엔 스튜디오 컷을 따로 하지 않고 스튜디오 컷/네트워크 컷으로 함께 가기도 합니다.


어떤 방송사는 시시콜콜한 많은 노트를 주고, 어떤 방송사는 큰 문제가 아니면 별 노트를 주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는 방송사와 쇼러너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이냐에서 오기도 합니다. <오리지널스>나 <제인 더 버진>은 여러 시즌을 거듭하면서 방송사가 쇼러너의 선택을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편집본을 보내면 노트의 양도 적었고, 또 그나마 그리 큰 수정을 요구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반면, <볼드 타입>의 첫 시즌은 꽤 많은 피드백이 오갔습니다. 첫 시즌이어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시청자들이 좋아할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쇼러너 역시 해당 방송사와 일하는 게 처음이었던 탓에 방송사로서는 불안한 마음이 컸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고 마침내 방송사에서 최종 컨펌이 나면 픽처 락(Picture Lock)을 합니다.


픽처 락(Picture Lock)과 턴오버(Turnover)

픽처 락. 말 그대로 더 이상의 영상(픽처 Picture) 수정과 편집을 멈추고 이대로 완료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후로는 효과음을 비롯한 사운드 편집, 음악 작업, 그리고 VFX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이들에게 필요한 자료들을 넘기는 일을 턴오버라고 합니다.


이러한 턴오버와 함께 사운드를 위한 사운드 스포팅(Sound Spotting), 그리고 VFX를 위한 VFX 스포팅(VFX Spotting)을 각 담당자들과 편집팀, 그리고 프로듀서들이 모여 함께 진행합니다. 현재 참여 중인 <로즈웰>의 경우, 사운드 스포팅은 보통 픽처 락 다음 날, 그리고 VFX 스포팅은 프로듀서스 컷과 스튜디오 컷 사이에 이뤄집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 편집본을 보며 어떻게 일을 진행할지에 대해서, 그러니까, 사운드라면 어떤 효과음이 필요하고 어떤 음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VFX라면 어떤 이미지를 구현할지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픽처 락은 더 이상의 수정을 하지 않는 게 원래 의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다 마음처럼 되기만 하는 게 있을까요. 픽처 락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편집 수정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이때엔 수정에 따른 턴오버도 함께 이뤄지고, 수정의 폭이 클 땐 사운드 하우스, 작곡가, VFX 업체 등 관련 사람들의 일도 더 복잡해짐은 말할 게 없습니다.


턴오버를 했다고 해당 에피소드에서 할 일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이후에도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해당 파트들과 계속 확인을 해야 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계속됩니다. 방송국에 에피소드를 보내는 날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있죠. 하지만, 어찌 되었든 턴오버를 마치고 난 날엔 에피소드 하나가 끝났다는 느낌이 좀 강하게 오긴 합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은 또 잠시입니다. 금세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가야죠. 아니, 사실 이때쯤이면 이미 다음 에피소드가 제법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 번에 한 에피소드만 진행하는 일은 드물죠. 이렇게 스케줄이 바빠지고, 담당해야 할 에피소드가 여러 개 겹치면 힘든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어시스턴트 에디터에겐 이게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요. 다음에 드릴 이야기에선 여기에 대해서도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밤늦게 턴오버를 끝내고 나와보니 주차장이 꽤 비어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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