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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환 Jan 08. 2019

촬영과 함께 편집도 시작된다

편집 시작 첫날

두 시즌 동안 참여했던 <볼드 타입>을 끝내자마자 시작하는 새 작품 <Roswell, New Mexico> 첫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9시가 조금 되기 전 편집실에 도착합니다. 서버의 폴더를 확인하니 이번 작품의 데일리스(Dailies)*를 맡고 있는 Mango라는 회사로부터 촬영분이 정리되어 도착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이 이전 다른 작품들과 다른 부분 중 하나는 이 데일리스가 오는 과정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당일 촬영이 끝나면 촬영본은 데일리스 하우스로 보내집니다. 이 촬영본들은 편집실에서 쓸 수 있는 형식으로 밤 사이 정리되어 다음 날 아침까지 편집실 서버의 공유 폴더로 보내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편집실에서 저희들이 해당 에피소드의 폴더로 다시 카피를 하여 작업을 시작합니다. 촬영 분량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이를 카피하는데 대략 20-30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이번엔 Mango에서 각 해당 에피소드의 폴더로 직접 파일을 넣어줍니다. 즉, 카피에 소요되는 시간이 절약되는 것이죠. 에피소드를 하나만 진행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경우엔 이것이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에피소드로 가게 되면 앞서 진행하던 에피소드와 겹치게 되면서 한꺼번에 두세 개의 에피소드를 진행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럴 땐 아침 30분 절약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죠. 다만 안 좋은 점은, 파일이 카피되는 동안 떳떳하게 누릴 수 있는 30여 분의 자유 시간을 뺏기는 것이랄까요?

<Roswell, New Mexico> 편집실이 자리한 Hollywood Production Center의 복도


달콤한 자유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함께 일하는 에디터가 원하는 방식으로 촬영본을 편집 프로그램인 아비드(Avid) 내에 정리를 합니다. 이런저런 필요한 문서 정리 역시 당연합니다. 편집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의 하나가 스크립트 슈퍼바이저의 리포트인데, 이번 스크립트 슈퍼바이저는 손으로 직접 이 리포트를 씁니다. 다행히 글씨가 나쁘지 않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크기가 조금 작은 게 아쉽습니다. 손으로 쓴 이번 리포트를 처음 받았을 땐, 빨리 돌아가는 정신없는 현장에서 어떻게 이렇게 글씨를 또박또박 쓸 수 있는지 무척 놀랐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장에서는 빨리 쓰고, 당일 촬영이 끝난 후 이를 다시 또박또박 정리한다고 하네요. 일을 두 배로 하는 셈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에피소드의 첫날. 어시스턴트 에디터로서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첫날은 이렇게 크게 바쁠 게 없죠. 물론, 둘째 날부터는 이전 날의 편집한 분량의 사운드 작업 등 다른 일들이 점점 함께 쌓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촬영 기간 동안 아침 일과는 특별한 경우가 없으면 늘 전날 촬영분을 정리하는 것으로 채워집니다.

현재 작업 중인 <Roswell, New Mexico>. 예전에 방영되었던 <로즈웰>이라는 작품의 리부트입니다.


미드는 사전 제작?

우리나라와 미드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전 제작'입니다. 물론, 모든 에피소드를 모두 완성한 후에 방송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러 제작 형태의 하나일 뿐입니다. 


작품에 따라서 방송일 며칠 전에서야 에피소드가 방송국에 납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참여했던 <볼드 타입>을 들 수 있습니다. 시즌 1과 2는 편집을 하면서 방송이 되었습니다. 방송 당일까지 편집을 하기도 하는 우리나라만큼은 아니지만, 방송일이 꽤 닥쳐서야 방송국에 에피소드가 납품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에 반해, 시즌 3은 현재 모든 에피소드가 방송국에 납품이 되었으나 아직 방송일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경우가 말하자면 우리가 ‘미드는 사전 제작이야'라고 말할 때 상상하는 모습이겠죠. 

<볼드 타입>


일반적인 편집 스케줄

한 시간 드라마(실제로는 약 42-45분이죠) 기준으로 한 회 당 촬영은 5-8일 정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이때, 편집도 촬영과 함께 시작합니다. 매일 촬영분이 편집실로 보내지면 이를 편집해 나가는 것이죠. TV의 경우 전체 스케줄이 타이트하기 때문에 어제 촬영된 건 오늘 편집을 해놓는 식으로 속도를 맞추는 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일이 무척 몰리게 되는 건 뻔한 일이죠. 물론, 촬영과 함께 편집이 시작하는 게 미국만의 특별한 경우는 아닙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라지는 곳은 이다음의 편집 과정입니다.


촬영이 끝나고 대체로 3-4일 후에 에디터가 내용을 빼거나 씬의 순서를 바꾸는 것 없이 시나리오를 최대한 존중하여 편집한 에디터스 컷(Editor's Cut)이 감독에게 보내집니다. 그 후, 감독이 에디터와 함께 작업한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 만들어지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프로듀서들이 참여하는 프로듀서스 컷(Producer's Cut)이 만들어집니다. 이후 이 편집본은 다시 제작사를 거치는 스튜디오 컷(Studio Cut)을 지나, 최종적으로 방송사와 작업하는 네트워크 컷(Network Cut), 그리고 방송사의 최종 컨펌 버전인 픽처 락 컷(Picture Locked Cut)으로 편집이 완성됩니다. 여기까지 총과정은 짧게는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4주 정도가 걸립니다.


아, 그런데 ‘완성’이라는 표현은 좀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요. 이후에 음악 작업, 사운드 작업, 그리고 VFX 작업과 같은 것들이 이뤄진 후에야 비로소 에피소드가 ‘완성'된다고 해야 맞겠습니다. 


이렇듯 하나의 에피소드 편집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컨펌 과정을 거치는 이곳과 달리, 우리나라는 다소 간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 당일까지도 촬영이 있기도 하는 등 스케줄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에디터가 촬영 전 혹은 촬영 중에 이뤄지는 연출자와의 의견 교환을 바탕으로 편집을 완성하고, 그대로 방송사에 보내 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처럼 여러 단계의 컨펌 과정이 없는 것이죠.


어느 쪽의 방식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테니까요. 다만, 우리나라의 방식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혹시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스케줄 탓은 아닐까 하는 우려는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의 방식이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선택된 방식이라면, 이것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제인 더 버진> 시즌 3 포스트 스케줄. 물론, 진행이 되면서 조금씩 수정이 생기지만, 크게 벗어나지 않는 틀 안에서 진행됩니다



*데일리스(Dailies): 매일 촬영된 영상을 일컫습니다. '촬영 소스' 혹은 '촬영분'이라고 우리나라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일리스 하우스'는 이 촬영된 영상을 촬영팀으로부터 받아 편집팀이 쓸 수 있는 형식으로 변환해주는 곳을 말합니다. 필름으로 촬영 및 편집이 이뤄지던 때라면 '현상소' 정도가 가장 가까운 표현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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