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편집의 닮은 얼굴
늘 '건축'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건축은 언제나 겉에서 보이는 벽면과 지붕이 만들어 내는 물질성보다는, 그 육중한 물질들이 땅이라는 공간을 채우며, 동시에 역설적으로 만들어 내는 새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며 시간이 만들어진다. 결국, 건축은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건축은 영화와 닮아있다.
그래서였나? 대학 시절 가장 친한 친구들은 건축학과 친구들이었다. 아니, 그 친구들과 만나고 나서 건축에 관심이 갔었나? 이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느 쪽이 먼저인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내 기억이 닿는 한에서, 영화와 건축은 그 사이에 '시간'과 '공간'을 두고서 언제나 함께 존재했다.
Invisible Art
승효상 건축가의 책 제목은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이다. 보이지 않는 건축이라니. 건축은 그 자체로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주변을 해치지 않고 그곳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이려나?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는 관객이 촬영에 신경을 쓰는 순간 이는 좋지 못한 촬영이라고 한다. 즉, 카메라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는 순간 관객은 정작 이야기에 몰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집 역시 "Invisible Art", 즉 "보이지 않는 예술"로 일컬어진다. 사람들은 관객이 편집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이는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편집은 '보이지 않아야'한다고 말하곤 한다. 촬영이건 편집이건, 이는 모두 '이야기'에 봉사하는 자리이다. 촬영과 편집에 지나치게 드러나는 순간,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뒤로 물러날 수 있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경우가 아니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은 건축가는 늘 새로운 상황과 만나는 자리라고 말한다.
건축가의 직능이란 게 항상 새로운 상황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일이다. 새로운 건축주와 만나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사용자와 만나며, 새 땅과 만난다. 그런데, 여기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타성과 관습의 도구를 꺼내어 종래의 삶을 재현한다? 이건 건축이 아니다. -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 저
'새로움'과 직면하여 타성에 젖지 않고 그에 맞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자리라니. 그렇다면, 건축가의 삶은 에디터의 삶과 비슷하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에피소드 당 열흘 남짓 한 촬영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전 날 찍은 촬영본이 도착한다. 도착한 전 날 촬영된 신들을 편집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또 다른 새로운 신들이 도착해 있다. 촬영이 끝나고 나면 그동안 편집한 것들을 처음엔 에디터 혼자 고민하고 다듬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 후엔 감독, 프로듀서, 스튜디오 함께, 그리고 최종적으로 방송사와 함께 고민하며 편집을 완성한다. 매일 같은 것은 없다.
새로운 감독, 새로운 작가, 새로운 시나리오. 그리고 새로운 촬영본. 이들이 가지고 온 새로운 이야기. 이렇게 모든 게 새로울 때, 에디터만 이전의 방식 - 자신이 추구하던 방식일 수도, 그 장르의 관습적 방식일 수도 - 을 고집한다면, 승효상 선생 식으로 표현할 때 '이건 영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