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종을 울리는 일

by 정글

종을 울리는 일_정글



맑고 차가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각종 행성들의 오래된 물건을 파는 빈티지샵에서 일하면서 매일 가게 옥상에 자리한 종탑에 올라 종을 울린다.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색으로 덮인 마을에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고용주에게 들었다. 고용주가 나에게 종을 울리라고 지시하면 나는 이 곳으로 올라와 연속으로 종을 세 번 울린다. 밧줄처럼 꼬인 모양이지만 소재는 꽉 찬 쇠로 이뤄진 줄을 힘껏 잡아당기면 된다. 내 몸 하나쯤은 집어삼킬 수 있는 크기의 종이지만 종소리는 가까이에서 그렇게 크게 들리지 않아 신기했다. 그렇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돈을 받고, 그저 무리 없이 잘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사유의 시간도 시급으로 쳐준다면 모를까.

종을 세 번 울리고 나면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와 가게 안으로 복귀한다. 역시 나무로 만들어진 가게 대문을 열어두고 먼지가 잔뜩 묻은 지푸라기 자루로 문 앞을 쓸다보면 손님들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많으면 열 명, 적으면 한 두 명 정도의 손님이 매일 종소리를 듣고 찾아온다. 종소리를 듣고 왔다는 손님을 응대하는 매뉴얼은 따로 있다.


“어서오세요. 안쪽으로 쭉 따라가시면 검은색 문이 나와요. 거기로 한 분씩 들어가시면 됩니다.”


내 안내를 듣고 가끔씩 질문하는 손님들이 있다. 종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저 문으로 들어가면 어디로 가게 되는지, 어떻게 나오는지 등...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저는 안내만 해드려요.”


사실이었다. 나는 안내만 할뿐 저 문이 어디로 향하는지, 왜 이들 중 누군가는 의문을 가진 채 문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고용주에게 이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고용주가 나에게 말했다. 시킨 일만 하라고.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고용주가 시킨 일에 대한 돈을 받는다. 시킨 일만 수행하는 것이 나에게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고용주는 내가 안내한 검은색 문 앞에 서 있으면서 사람들은 들여보내고 문을 닫고 다시 들여보내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고 꽤 신나는 표정으로 보였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다보면 돈을 꽤 많이 버는 일인 것일까 부러워지곤 했다.


일이 끝날 무렵 고용주가 가게에 비치해놓을 빈티지 물품들이 담긴 종이 박스를 들고 왔다. 나는 박스에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어 마른 수건으로 한 번씩 닦아냈다. 200년 전 유행했던 빛나는 돌은 창문과 가장 먼 곳에 두고, 2024년에 지구에서 출시된 사탕 껍질은 잘 펴서 벽에 붙인다.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나니 퇴근시간이 되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연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친동생과 셋이 사는 집이지만, 동생은 뭐가 그리 바쁜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식탁에 앉아 차를 한잔씩 타놓고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는 것이 연인과 나의 루틴이었다. 내 찻잔은 파란색, 연인의 것은 초록색. 컵을 좋아하는 연인이 사 모은 찻잔과 술잔이 찬장 가득이었다. 밤에 마시는 차의 찻잔은 우리 둘이 가장 좋아하는, 손잡이 없이 한손에 쏙 들어오는 광이 나지 않는 잔이었다. 그렇게 찻잔을 비우면 연인이 먼저 잠을 청하고 나는 잔을 정리한다. 밖에서의 모든 일은 손해 보기 싫어서 시급으로 득과 실을 계산하곤 하지만, 집에서 연인과 함께하는 순간들은 늘 상 내어주고픈 마음이 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랑하는 이 순간을 지키고자 일을 하는 것이다.

잔을 씻고 물기를 닦다보면 동생이 집에 돌아온다. 한껏 지친 표정의 동생이 식탁에 털썩 앉아서 나를 불렀다.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서먹한 사이인 동생이 정말 오랜만에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언니, 언니가 무슨 일을 하고 사는 지 생각해봤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생각이란 걸 하고 사냐고.”


갑작스런 동생의 질문에 당황한 건 나였지만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화가 난 듯 보였다. 한 배에서 태어난 나와 동생은 부모님이 물려준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너무도 다른 사람으로 자라났다. 동생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랐고 나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동생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 둘은 멀어졌다.


“됐어, 이런 얘기 안하기로 했잖아 우리.”

“언니 그래도. 언니가 하는 일 조금 이상해. 오늘 내가 그거에 대해...”

“아 됐다고. 피곤하다. 들어가 자.”


나는 먼저 자리를 떴다. 동생은 언제나 나를 못마땅해 했다. 열정적이진 않지만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동생의 얘기를 듣다보면 내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져 억울했다.


다음날, 가게로 출근한 나는 물건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일을 시작했다. 고용주가 가게로 나오고 나에게 종을 울리라고 지시했다. 나는 종탑으로 가 종을 세 번 울리곤 내려왔다.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문 앞을 쓸었다.


“어서오세..”


손님의 신발이 가게 앞으로 오자 자연스럽게 안내멘트를 하려던 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집에 일을 하고 있어야 할 나의 연인이 가게로 찾아왔다.


“종소리 듣고 왔어. 어디로 가?”


나는 잠깐 멈칫했다. 이 순간 나는 왜 멈칫했을까. 처음으로 저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검은색 문을 가리키며 저리로 가라고 다정하게 말을 했다. 이것이 나의 일이고 내가 하는 일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연인은 웃으며 고용주가 지키고 있는 문 앞으로 갔다. 당연히 별일 없을 것이다. 마을의 작은 빈티지샵에서 하는 일이 위험하거나 무서울 일이 있겠는가. 퇴근하고 집에 가서 문에서 무엇을 했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만 할뿐이었다. 단지 조금 궁금함에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랐다.

일이 끝날 무렵, 고용주가 또 밝은 얼굴로 종이 상자를 가지고 와 계산대 테이블에 놓고는 먼저 퇴근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마른 수건을 챙겨 종이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엔 초록색 찻잔이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무슨 잔인지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매일 밤 마주봤던 나의 연인의 잔이었다. 아까 연인을 가게에서 보고 멈칫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궁금함이 두려움으로 찾아왔다. 온몸 구멍에서 땀이 삐져나와 바로 식었다. 손끝이 차가워지다 못해 쓰라렸다. 나는 그대로 집으로 달려갔다.

진즉에 집에 돌아왔었어야 할 연인이 집에 없었다. 부엌 찬장에 있어야 할 초록색 찻잔도 없었다. 나는 차가워진 몸으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동생을 보자 울음을 터뜨렸다. 동생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동생은 말했다.


“언니가 무슨 일을 하고 사는 지 생각해 봤냐고.”


나는 동생의 말에 울음을 멈췄다. 당장 가게로 갔다. 내가 몇 명의 손님들에게 안내 했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바로 그 검은색 문 앞에 당도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아직 연인이 그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문을 열자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났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낭떠러지처럼 길은 끊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 파인 깊고 거대한 구멍에 수많은 손님들의 껍데기가 잔뜩 겹쳐져 있었다. 껍데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버려져 있는 가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구멍을 주위로 내가 연 것과 똑같은 검은 문이 수십 개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