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선물_ 정글
1년에 한번인 중학교 동창회는 과거의 추억보단 현실의 정보를 나누는 것이 익숙해진 모임이 되었다. 이곳에 오면 난 작게 말하고 크게 듣는다. 먼저 꺼내놓고 싶은 마음은 없이 공감할 생각만 가지고 앉아있는 자리이다.
“나 이번에 남편한테 사랑 선물했잖아.”
한 친구가 ‘사랑 선물’을 한 일을 꺼냈다. 우리는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며 친구를 치켜세웠다. 친구는 어쩐지 커다란 가방에서 15인치쯤 되는 태블릿을 하나 꺼냈다. 그녀가 남편에게 사랑을 선물한 순간이 담긴 영상이 나왔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서 있는 한 남자. 남자는 카메라를 보더니 반갑게 반긴다. 화면 바깥에서 친구가 남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메라 가까이 다가오는 남자. 카메라를 든 친구를 안는 남자의 모습. 잠시 어두워진 화면이 다시 밝아지자 화면 속 무언가를 품에 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영상을 같이 보고 있던 동창들이 동시에 긍정의 앓는 소리를 냈다. 남자가 들고 있던 건 친구의 사랑이었다. 친구의 것은 진한 분홍색에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윤기 나는 털을 두르고 있는 구형이었다. 최근 들어 가장 예쁜 사랑이라고 평가받는 놀이공원 헬륨풍선 같은 구형이었다. 사랑을 받아든 남자는 행복에 겨운 얼굴이었다.
그 영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친구는 뿌듯함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죄책감을 느꼈다. 며칠 전, 남편에게 사랑 선물은 안 하고 싶다고 말을 했기 때문인 듯하다. 동창들은 친구에게 자신도 요즘 사랑 선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며 과정에 대한 자세한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술 가격이나, 사랑의 형태는 선택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너처럼 예쁜 사랑을 만들 수 있는지 등. 나는 궁금하던 질문을 건넸다.
“너 몸은 어떤데?”
여자의 신체를 통해 만들어내는 사랑이기에 친구의 몸 상태가 걱정되는 것도 맞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야윈듯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는 5단계 사랑이라 조금 힘든 건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동창들은 5단계라는 말에 놀라며 친구의 사랑에 감탄했다. 3단계도 힘들다 하다던데 말이다. 친구는 이왕 선물하는 거 가장 좋고 예쁜 사랑을 주고 싶었다며 그래도 쉽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남편도 이렇게나 좋아한 것이지 않겠냐며 영상을 가리켰다.
최근 들어 기혼자 커뮤니티에서 사랑 선물은 큰 이슈였다. 주변 다섯에 한 둘쯤은 모두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선물하는 듯싶었다.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나의 남편 역시 사랑을 선물 받고 싶은 모양인지 사랑 선물을 받은 주변사람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원하는 일에 왜 나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친구의 후기를 들은 동창들은 자신들도 곧 사랑 선물을 할 것이라며 호들갑이었다. 너는? 이라는 물음에, 고개를 내민 두려움을 감추고 미소만을 보이며 끄덕였다. 우리들은 한동안 사랑 선물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대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의 죄책감은 더 이상 죄책감이란 감정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생명이 들어간 듯 살아 움직이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영상이 멈춰진 태블릿 화면에는 친구 남편이 사랑을 들고 한껏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사랑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었다. 남편은 받고 싶단 생각은 했으나 그건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줄 수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선물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며 나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의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런 이에게 나의 사랑을 줘야지 누구에게 주겠는가. 설명하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 선물에 대해 망설였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밤새 남편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남편의 대한 나의 사랑이 샘솟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사랑 선물 센터에 한번 방문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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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사랑 선물 센터에 혼자 방문한 나는 연분홍색 원피스 검사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얇은 원피스 천 안, 무방비로 놓인 두 허벅다리에 유난히 찬 공기가 스쳤다. 검사 의자에 앉은 내게 담당 선생님이 다가왔다. 조금 긴장한 나와는 다르게 너무도 편안한 미소를 띤 선생님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랑을 선물하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요?”
나보다 20살은 족히 많아 보이는 선생님의 다정한 말씨에 더욱 마음이 놓였다. 나는 선생님께 의지하며 여러 검사들을 마쳤다. 나는 현재 사랑을 선물하기 적합한 몸 상태라는 결과를 받았다. 바로 시술 날짜를 받았다. 다음 주로 시술 예약을 하고나니 선생님께서 시술 절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시술 날이 되면 부부 동반으로 방문하여, 남자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고 여자는 시술 방에 혼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여자의 신체에서 사랑을 빼내기 위해 총 5번의 종이 울린다. 여자는 종소리를 듣고, 사랑을 빼내는 횟수를 정할 수 있다. 사랑을 빼내면서 올 수 있는 심리적, 신체적 부작용은 사랑을 빼내고 있는 그 순간, 당사자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종을 울려 멈출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증상을 겪는 것이라 데이터화가 어렵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다시 조금 겁이 났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예쁘고 윤기 나는 사랑을 선물하려면 친구처럼 5단계의 사랑정도는 선물해야 할 것 같았기에 중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날 밤, 집으로 가 남편에게 다음 주 센터에 가서 사랑을 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나를 꼭 안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 벅차게 들렸다. 나 역시 남편을 힘껏 안았다. 우리 사이의 사랑이 눈에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다들 사랑 선물, 사랑 선물 하는 구나 깨달았다. 서로를 껴안고 있는 지금,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이 마구 샘솟는 느낌에 최고의 사랑을 선물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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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물하는 날. 나와 남편은 함께 차를 타고 센터로 향했다. 남편은 아침부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물론 몇 단계의 사랑을 빼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그날 이후로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있다. 생명에 위협이 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 그 불확실성이 계속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행복과 불안은 공존하는 것임을 인정해야할까. 남편의 얼굴엔 나와 달리 불안이 묻어 있지 않아 운전하는 그의 얼굴을 한 없이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센터에 도착하자, 검사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나를 반겼다. 남편은 대기실로, 나는 곧바로 시술실로 향했다. 시술실은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10평 안팎의 작은 공간이었다. 벽마다에는 그림 액자가 하나씩 걸려있었다. 방 가운데 있는 시술 의자에 앉자 담당 선생님과 다른 옷을 입은 선생님 두 명이 더 들어와 내 몸에 구석구석에 바늘을 꽂았다. 바늘은 얇고 긴 고무관으로 연결되어있었고 수십 개의 고무관은 한 쪽 벽으로 전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관들의 끝은 다른 방과 이어져 있어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니 눈이 조금 내린 겨울밤 그림 액자가 정면에 보였고 그 위로는 천장에 달린 5개의 분홍색 전구가 보였다. 선생님은 종소리가 한번 울릴 때 마다 전구에 빛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한 번의 종소리, 하나의 전구 빛이 1단계 사랑이 뽑아져 나온다는 의미였다. 중간에 사랑을 뽑아내는 것을 끝내고 싶다면, 의자 오른쪽 손잡이에 달린 파란색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럼 종소리와 전구는 그 상태로 멈추게 되고, 선물할 사랑의 단계가 정해지게 되는 것이다.
내 몸에 시술 기구를 세팅한 선생님들이 나가고 나의 담당 선생님도 시술실을 나갔다. 방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맞은 편 벽에 걸린 액자에 내 얼굴이 옅게 반사되어 보였다. 내가 봐도 나는 긴장한 기색이 깔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작하겠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나는 곳을 찾으려했다. 그러는 사이에 첫 번째 종소리가 울리고 첫 번째 전구에 분홍색 불빛이 켜졌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폭탄주를 말아먹고 죽을 뻔 했던 숙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나도 모르게 파란색 버튼에 손을 가져갔다. 이게 아직 1단계라니. 5단계는 그럼 어떻다는 건지 아찔했다. 눈물이 고였다. 두통으로 인해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버튼에 가져갔던 손을 관자놀이로 옮겨 주물렀다. 그때 손을 최대한 가만히 둬야한다는 선생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욕이 저절로 삐져나올 뻔했다. 그리고 서서히 고통이 멈췄다. 곧 두 번째 종이 울릴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 내가 유난히 고통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유독 강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일까. 못하겠다는 말이 어금니를 지나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의 얼굴과 영상 속 친구의 남편의 행복함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한 번 더 견뎌 보자 결정했다.
그리고 두 번째 종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위가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쇠사슬로 위를 조여 묶어놓은 건가 싶었다. 위가 아파 숨쉬기조차 어렵다는 감각은 처음이었다. 언제든지 멈추는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오른손을 버튼 가까이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를 견뎠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 어렵게, 혀는 다 말라버렸고 목구멍과 이어지는 기도는 자갈밭에 던져놓은 것 마냥 까슬거렸다. 눈물을 흘리는 족족 말라버려 속눈썹에 들러붙은 눈곱으로 인해 제대로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고통을 참느라 꽉 문 치아와 턱관절에선 가만히 있어도 덜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죽기 살기로 참았다. 남들은 다 잘 참는 것을 나만 못 참겠다고 뛰쳐나가기엔 머쓱했다. 더군다나 기껏 선물을 주겠다고 데리고 온 남편 얼굴을 마주할 순간을 떠올리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참아보자, 더 참아보자, 하던 것이 마지막 단계인 5단계까지 도달하게 했다.
마지막 종소리가 들리고 마지막 전구가 켜지자 누군가 눈에 손을 넣어 안구를 뽑아가는 듯 아파왔다. 그리고 그 눈에서 터져버린 댐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 지에 대한 감정이 막을 수 없게 번져갔다.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원해서 앉은 이 자리가 왜 억울하다 느끼는 걸까. 내 울음소리가 내 귀에 선명이 들리자, 나는 오른쪽 검지를 들어 파란색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더 이상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종소리도 멈추고, 전구에는 4개의 불빛만 켜져 있었다. 시술실 문을 열고 담당 선생님과 다른 두 선생님이 들어왔다. 내 몸에서 바늘을 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다들 5단계 전에 포기한 내가 실망이라도 할까봐 4단계도 훌륭하다며 달래는 어투로 말을 했다. 나는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파우더룸에 만드신 사랑 준비해 놓을게요.”
“...파우더룸은 왜요?”
“선물하시기 전에 모습 정돈하시라구요. 이러고 가면 남편들 놀라셔요.”
선생님의 말을 들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파우더룸이 아닌 대기실로 향했다. 선생님들은 동동거리며 나를 뒤따랐다. 사랑을 가져다주겠다며 안절부절 거리는 것을 뒤로 하고 저벅 저벅 걸었다. 황급히 가져온 내 사랑은 황토색이었다. 윤기가 나는 듯 했지만 예쁘다는 느낌은 없었다. 나는 사랑을 안아들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남편이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남편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복에 겨워해야할 남편의 얼굴에 행복이 비치지 않았다. 사랑을 선물하는 과정을 우리 모두 몰랐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남편의 품에 내 사랑을 안겨줬다. 사랑을 안아든 남편은 당황스러워 했다.
종소리가 안 들렸는데도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파란색 버튼이 없는 데 이 고통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대기실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겨울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눈이 푹 파여 그늘졌고 눈물과 콧물과 침이 흘러 그대로 자국이 생겨 있었다. 입 주위와 목이 검무튀튀했고 머리카락은 서로 엉켜 절반은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많이 빠져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넘기니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잡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