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빙수의 맛_정글
사랑의 크기와 기억의 길이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았으나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영원이란 단어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나는 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겨울 빙수의 맛을 알려준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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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 동방에서 자?”
핸드폰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돕바라 부르는 얇은 솜으로 채워진 검정 롱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올려놓고 언제 깔았는지 모를 노란 장판에 드러누워 있는 나에게 걸려온 과 동기의 전화. 주황빛 열기를 내뿜는 동그란 온풍기의 세기를 올려놓고 스피커폰 버튼을 누르고 집을 찾아 숨는 갯조개처럼 잽싸게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었다.
“어. 동방에서 잘 거야. 자취방이 더 추워.”
“으휴 미친 것. 길바닥에서 몇 시간씩 그러고 있었으니 춥지.”
시위를 그럼 길바닥에서 하지 어디서 하니. 몇 주 전쯤, 누구 때문에 연말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동기가 한 톨도 멋쩍지 않은 투로 말했다. 동기와 그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의 부모님이 바로 그 누구에게 표를 “드린” 사람들이라고. 참으로 해맑은 아이였다. 그의 해맑음이 싫을 이유가 있을까. 단지 보일러 걱정 없는 겨울을 나는 것이 조금 부러워,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단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나는 스피커폰의 음량을 최소한으로 줄인 후 이어지는 대화에 건성으로 임하곤 통화를 마쳤다.
세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종이컵이 끼워진 양초를 손에 쥐고 걷느라 차가워진 몸은 쉽사리 덥혀지지 않았다. 차가워진 몸엔 싸늘한 생각이 들어오기 더욱 쉬웠다. 싸늘한 생각은 몸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더욱 쌩한 바람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최초 여자 대통령”이 이렇게 끌어내려지고 나면 지금도 물러날 곳 없는 여성인권이 지하 더 아래로 고꾸라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고개를 들어냈다. 요즘 부쩍 시위에 나갈 때마다 보이는 여성 혐오 가득 피켓들이 눈을 통해 뇌로, 그리고 온몸으로 번진 듯 싶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에게 이 걱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다수가 대의라 생각하는 것을 위해 소수인 내 거슬림은 언제고 후순위로 밀어두어야 한다. 이것이 올해 대학에 입학하여 2016년 한 해 동안 배운 나 자신을 지키는 팁이었다. 세상엔 공짜란 없으니 내가 값을 좀 지불하는 셈 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날 순 없으니 손해 보더라도 어쩔 수 있겠는가.
내가 몸을 뉘인 이곳, 놀이패 동아리방의 온풍기 열기만큼은 공짜인 듯 싶지만, 지름 30센치의 뜨끈함엔 지난 12년 간 대학이란 곳을 향해 달려온 나의 정신적, 육체적 품값의 일부가 들어있다. 그러니 마냥 무료가 아닌 이곳에서 잠을 자는 것에 대한 심적 불편감은 없다. 그렇다고 입학하자마자 동방에서 자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비 내는 날을 까먹어 급하게 구한 7평 남짓 구축 반지하에는 초겨울이 되자 납득하기 어려운 난방, 전기료가 나왔고, 이 상황에서 몸보단 마음이 편한 동방을 선택하는 건 나로선 당연한 결정이었다.
아, 불을 꺼야하는데, 꼼짝도 하기 싫다. 문 옆에 붙어있는 형광등 스위치를 노려보며 혹시 염력이 생겨 버튼이 눌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띠띠 띠띠띠띠 띠 띠 띠리릭. 철컥. 끼익...
바깥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 염력이 작동한 건 아닐 테니 나에게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쪼그라든 심장을 부여잡긴 손이 시려서 그대로 숨소리만 죽여 열리는 문을 바라봤다.
“앙!”
바닥에 누워있는 낮은 내 시야에 그대로 들어오는 하얀 털 뭉치. 그대로 시선을 위로 올려다보면 내가 입고 있는 동아리 돕바와 같은 걸 입고 있는 겨울이 서 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겨울에게 인사했다. 겨울은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더욱 머쓱해졌다. 겨울이 데리고 온 하얀 강아지가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핥으려 했다. 겨울은 손에서 놓쳐버린 목줄을 쫓아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려와 강아지를 내게서 떼어 들어올렸다.
“미안, 빙수 원래 안 그러는데...”
“어?”
“얘 이름이 빙수야.”
겨울은 안아 올린 강아지를 보이며 말했다. 그런 겨울의 손목엔 하얀색 비닐봉투가 들려있었고 그때까지도 나는 계속 바닥에 누워있었다. 겨울과는 동아리 동기이자 16학번인 동갑내기이긴 하나, 친해질 기회를 진즉에 놓쳐버린 애매한 사이였다. 처음 겨울을 보았을 때, 나보다 더 단체생활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놀이패에 들어왔을까 생각했을 정도니까. 놀이패 동아리는 낱말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처럼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허공에 소리를 쳐대는 것이 주 활동이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누워서 겨울을 올려다보며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누군가를 이런 각도로 볼일도 많이 없었을 뿐더러 세상에서 제일 어색하다는, 얼굴은 아는데 안 친한 사이의 누군가. 그 사실이 나를 잠시 얼어붙게 했다. 겨울의 품에 안겨있던 빙수가 다시 작게 짖었다. 짖는 것보단 말을 거는 것 같아 대답을 해줘야할 것 같았다. 겨울은 반사적으로 의미를 모르겠는 대꾸를 했다. 나는 그제야 몸을 무겁게 일으켜 벽에 기댔다. 나는 이 시간에 혼자 동방에 누워있었던 이유에 대해 겨울에게 말했다. 잘못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해명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겨울은 내 얘기에 관심 없다는 듯이 연극 중간 무대 장치를 옮기는 스태프처럼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4인용 사각 밥상의 다리를 펼쳤다. 턱 하니 동방 가운데 놓았다. 가운데라고 해봤자 내가 기댄 벽에서 1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겨울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물티슈 하나를 뽑아 상 위를 닦기 시작했다. 두발로 서 허리를 숙인 채 좌식 밥상을 닦는 겨울의 단발머리 끝이 흔들렸다. 얼굴 앞으로 내려온 머리가 움직이며 겨울의 광대뼈가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했다. 광대뼈의 움직임은 사람이 감정을 드러내고 나타낼 수 있다고 동아리 신입생 교육 때 배웠었다. 배운 방법으로 겨울의 감정을 알긴 어려웠다.
“넌 동방에 무슨 일이야?”
“빙수 먹으려고. 너도 먹어.”
분명 질문에 어긋난 대답은 아니었는데 내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더 이상은 캐묻는 것 같아 물어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한겨울에 웬 빙수? 누군 추워죽겠구만.
겨울은 봉지에서 포장해온 빙수를 꺼냈다. 새햐얀 플라스틱 냉면 그릇. 같은 색의 플라스틱 숟가락 두 개. 겨울은 숟가락 하나를 내가 있는 쪽 책상에 올려뒀다. 나는 내 쪽을 향하고 있던 온풍기를 회전으로 전환해 멀찍이 두어놓곤 밥상 가까이 다가갔다. 빙수 통엔 동그랗게 저며진 딸기가 한가득 들어있었고 사이 사이로 뽀얀 연유가 흐르는 모습이 제법 맛있어보였다. 나는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겨울은 춥지도 않은지 거침없이 숟가락을 빙수에 꽂아 넣고 딸기와 함께 간얼음을 듬뿍 떠 한입에 넣었다. 유행하던 얇은 우유얼음이 아닌 거친 형태의 물얼음이었다. 겨울이 빙수를 씹자 경쾌한 소리가 동방에 울렸다. 강아지 빙수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겨울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들 듯 말 듯 했다. 나도 빙수를 향해 숟가락을 집어넣었다. 딸기 조각들을 들쳐보니 투명한 얼음 안에 빨간 딸기시럽이 조금 뿌려져 있었다. 딸기 몇 조각과 얼음을 최소한으로 담아 입어 넣었다. 차가웠다. 얇은 딸기가 얼음과 닿아 표면이 얼어 약간 단단했다. 딸기를 먼저 씹으니 제멋대로 생긴 얼음 조각들이 신명나게 치아 이곳저곳 부딪혔다. 입 안 체온에 녹기 시작한 딸기 빙수를 안심하고 몇 번 더 씹으니까 연유와 딸기시럽이 섞여 혀 아래쪽까지 달콤한 향이 스몄다. 자연스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빙수를 의지를 가지고 완전히 삼켜버리면, 몸은 조금 더 차가워져 귀에서부터 목 뒤쪽까지 자잘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온풍기를 더 가까이 끌고 왔다. 그러자 가을이 빙수를 가리며 말했다.
“이거 녹을텐데.”
“아, 미안. 넌 안 추워?”
“별로.. 소주 먹으면 괜찮아지는 데. 쏘주, 너 소주 좋아하잖아.”
20년을 넘게 살아도 이름으로 별명을 짓는 일은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할까. 소주혜라는 내 이름은 어느새 모두에게 쏘주라 불러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소주를 좋아하는 것도 맞다. 근데 평소 겨울은 나를 별명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 정도로 친하지 않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겨울은 그런 유치한 별명 부르는 걸 안 좋아해 보였다. 겨울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동방 냉장고에 가득 들어있는 소주를 하나를 꺼내왔다. 컵을 찾는 듯 하더니 작은 사이즈의 소주 종이컵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일반 종이컵 두 개를 찾아 들고 다시 내 앞에 앉은 겨울은 소주를 흔들었다. 나는 잔을 잡아들고는 물었다.
“나 소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몰랐구나? 나 너 좋아해.”
알코올보다 먼저 들어온 고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춥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겨울은 태연하게 내가 들고 있던 잔에 소주를 3분의 1정도 채워주곤 자신의 종이컵에서도 같은 양만큼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 짠을 하잔 듯이 내밀었으나 내가 놀란 모습을 보곤 그냥 혼자 한 모금 삼켰다.
“왜 너 여자 안 좋아해?”
처음 들어보는 말에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고 멍하니 겨울을 쳐다봤다. 겨울은 그런 나를 보고 재밌어지는 글을 읽듯 피식하고 웃었다. 나는 손에 들려있는 잔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겨울이 내 숟가락을 가져가더니 빙수를 듬뿍 떠 내 손에 쥐어줬다. 겨울은 이미 빙수를 한입에 넣고 씹는 중이었다. 나는 숟가락을 입안에 넣었다. 달큰한 소주가 스치고 간 혀엔 알코올의 화한 쓴맛만이 남아있었고 그 위에 차갑고 달콤한 빙수가 얹어졌다. 빙수를 씹자 삼켰던 소주의 향이 코로 내뿜어지고 부드러운 딸기가 조각조각 씹혀 소주향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꿀떡. 입안을 헹궈낸 듯 깔끔하게 모든 것이 사라져있었다.
“맛있지?”
겨울의 질문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소주랑 먹는 안주가 해야 하는 역할을 꽉 차게 완수한 딸기 빙수였다. 선명한 맛의 조화를 이룬 소주와 딸기 빙수. 그에 반해 예상치 못한 고백을 들어버린 내 머리 속은 정신없이 뒤엉켜 있었다. 겨울의 고백을 못들은 척 하고 소주 한 모금 더 할까 싶었다. 겨울이 소주병을 들어 내 잔을 채우곤 곧바로 자신의 잔도 채웠다.
“겨울에 빙수를 먹으면 더 천천히 먹을 수 있거든. 여름은 뭐든 급하잖아. 소주도 식을까봐. 빙수도 녹을까봐. 겨울은 조금 느려도 다 괜찮거든.”
겨울의 무릎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 빙수가 자신의 이름이 자주 들렸는지 잠시 깨어나 낑낑거렸다. 겨울은 자연스럽게 빙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랬다. 나는 밥상 넘어로 잠시 강아지 빙수를 바라보다 겨울을 봤다. 태연하게 빙수를 귀여워하며 쓰다듬는다. 아까 나 좋다고 그랬던 애가 맞나. 이제 그 얘긴 안하는 건가? 궁금해졌다.
빙수가 다시 잠에 들자, 겨울은 소주잔을 들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제야 겨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 허둥지둥하며 소주잔을 들이켰다. 겨울 역시 손에 들고 있던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우리는 각자 딸기빙수를 조금씩 떠 입에 넣었다. 두 사람이 빙수를 씹는 소리가 들리고, 또 한 번 입맛이 개운해 졌다. 이렇게 계속 먹다보면 마음까지 개운해져버릴 것 같았다.
“이제 매년 겨울 이거 생각날 걸?”
“진짜 그럴 것 같..”
“그리고 아마 나도.”
“어?”
이건 무슨 자신감일까.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절대 잊지 못한대. 나한테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나한테 한겨울에 먹는 빙수 맛을 알려줬거든.”
“빙수가 세계를 넓혀준 것 씩이나 되는 거야?”
나의 질문에 겨울은 다시 책에서 재밌는 부분을 읽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는 피식 웃었다. 나는 계속 물음표였고 겨울은 줄곧 웃음으로 답했다. 고백을 받은 건 난데 왠지 내가 더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줬다는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겨울의 얼굴이 명확히 좋아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너는 꼭 겨울같아.”
자신의 이름이 겨울인 것을 까먹은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낯간지러운 말을 잘하는 겨울은, 자신의 이름이자, 지금 이 계절인, 그리고 느려도 다 괜찮다는 겨울이 꼭 나 같다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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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겨울을 못 본지 8년이 흘렀다.
카페 안에 자리해 있는 작고 동그란 온풍기를 보다보니 8년 전 그날 밤이 떠올랐다. 뭔가 불길했던 그날 밤처럼 여성인권은 조금 후퇴한 듯싶고, 나는 또 다시 내가 뽑지 않은 대통령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 몇 시간씩 길바닥에서 추위에 떨기도 한다. 8년이란 시간이 전부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는 오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여자의 고백에 멍해질 정도로 놀라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내 앞에 겨울이 아닌 사랑하는 누군가가 앉아 있다는 것일까. 나는 조금 느린 듯 사랑을 만났고, 느려도 괜찮은 겨울을 닮게 되었다. 겨울의 말처럼 난 겨울이 되면 겨울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내 얼굴도 명확히 좋아보였을까 궁금해졌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빙수와 소주를 사야겠다. 그리고 지금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나의 사랑에게 스무 살, 한겨울에 있었던 일을 말해줘야겠다. 그날 겨울의 고백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언니와의 오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과장된 해석을 더해서 말이다.
“쏘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언니, 이따 빙수 먹을래?”
“겨울에 웬 빙수?”
“겨울에 빙수를 먹으면, 더 천천히 먹을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