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망신살 개운법

by 정글

망신살 개운법_정글



나는 새로 태어났다. 아니, 죽어버렸다고 해야 하나. 사주에 낀 망신살(亡身殺)을 타파하기 위해 태초의 그날처럼 순수하고 순결하게 말이다. 오이디푸스가 딸을 알아보지 못해 자신의 눈을 찌른 것처럼 나 역시 마음으로 낳은 자식들에게 눈이 멀어 내 눈을 멀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나락으로 빠진 나에게 내릴 형벌의 결정은 눈을 소유한 나 자신에게 있다고 그랬다. 친구나 가족에게 조차 털어놓을 수없는 상황에 닥쳐버린 후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나에게 남은 하나뿐이 동아줄이 살랑 거리며 무속신앙 속으로 나를 인도했다. 오방색에 둘러싸여 있던 나의 동아줄은 방울소리가 되어 방침을 읊어줬다. 내 망신살은 삼재보다 무시무시하고, 살을 없애기 위해 나는 다소 어이없는 개운법을 써야만 한다고.

속세와의 모든 연결을 끊고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모든 죄악이 씻겨 내려 세상 사람들이 나라는 인간을 영원히 지워버릴 그때까지 뜨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렇게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남들은 묻겠지.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그렇게 묻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망신.. 안 당해봐서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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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으로 갈아입고 난 후 노트북을 펼쳤다. 내일까지 내야 하는 범죄심리학 교양 리포트를 마무리하기 위해 쓰던 한글 파일을 열었다. 교양 리포트쯤은 전공 과제에 비해 손가락 푸는 정도라 묵혀뒀던 파일을 오랜만에 켰다. 영화 애니메이션 전공인 내가 우리 과 전공생은 아무도 안 듣는 범죄심리학 교양을 듣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강신청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이주희, 칼을 뽑으면 무라도 써는 여자이기에 지금껏 결석, 지각없이 성실하고도 냉철한 분석력으로 교수님의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재수강을 겨우 면한 전공 성적을 보고 전과의 욕심이 슬그머니 올라왔지만 수년간의 나의 그림생활이 아까워 포기했다.

한글파일을 닫고 크롬을 켠다. 로그인되어있던 구글 계정에 들어가 계정을 전환하여 재로그인 한다. 이주희가 아닌 JU라는 이름의 계정. 나의 두 번째 자아. 혹은 0번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드라이브에 들어가 스크롤을 도로록 도로록 내린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나체의 남성들. 한 사람씩, 두 사람씩 혹은 세네 사람씩.. 맨몸 아크로바틱이라도 하는 듯 기상천외한 자세들로 얽혀있는 남정네들. 나는 책상 위 연필꽂이에 정갈히 담겨있는 4B연필을 하나 골라 뽑았다. 그러곤 맨 위 책상 서랍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그대로 가장 밑에 서랍을 향해 꽂았다. 혼자 사는 집이라도 늘 잠가 놓는 서랍 하나. 그곳엔 같은 디자인의 공책이 수십 권 들어있다. 가장 위에 놓인 공책을 하나 꺼내 펼친다. 4B연필로 한 땀 한 땀 그려나가는 남성의 몸. 아니 몸들. 이 순간만큼은 선형으로 흐르던 시간이 3차원의 다면체로 바뀌면서, 내가 그 안으로 푹 담겨버린 느낌이 든다. 순식간에 순백의 무지 공책에는 뜨겁게 뒤엉킨 두 남성의 나체가 아름답게 놓여있게 되었다. 내 손 끝에서 태어난 사랑이다. 나는 지우개 똥과 연필가루를 후후 불어버리고 노트북용 스캐너를 연결한다. 방금 그린 따끈한 그림을 포스타입에 업로드한다. 약 5년 동안 이어온 나의 취미이자 나의 삶. 지금까지 내가 그린 음경을 세로로 쌓으면 북한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방금 그린 그림에 댓글이 벌써 달리기 시작한다. 성인이 된 후부터 포스타입에 올려보기 시작한 것이 3년 만에 벌써 구독자가 만 명이 넘어간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용돈벌이 정도는 가능하다. 내가 손끝으로 낳은 애들이 나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 효자들이 아닐 수 없다. 태블릿으로 그릴 수도 있지만 아직 난 연필과 종이가 좋다. 섬세함이 다르다고나 할까. 이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구독자들도 있지만 뭐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봐도 참.. 때깔 나게 잘 그린다. 그림실력도 실력이지만 역시나 중요한 건 자료조사. 이참에 새로 드라이브 용량을 채울 자료조사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한다. 내일 1교시는 또 밤을 새우고 갈 수밖에. 오늘은 화풍 연습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켰다. 지난주에 포스타입 댓글로 추천받은 애니메이션이다.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근육의 묘사. 근육에도 트렌드가 있듯이, 요즘 내 안의 트렌드는 가슴근육, 대흉근이다. 대흉근이 돋보이는 자세가 나올 때까지 빨리 감기를 한다. 그렇지. 찾았다. 나에게 없는 대흉근이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일시정지. 다시 공책을 펴 스케치를 한다. 쇄골에서 이어지는 대흉근, 내려가 배꼽과 허벅지 대퇴근, 또 그 사이 어딘가. 다시 반복. 영상을 5초씩 넘기면서 움직임을 관찰하고 스케치하길 반복한다. 영상 속 신음소리와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룬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이이잉.

머리가 가볍다. 희한하게 눈이 뻑뻑하지 않게 떠진다. 깜빡. 깜빡 눈을 깜빡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생각한다. 아, 휴대폰 진동이구나. 어? 진동?

칼을 꽂으면 튀어 오르는 통아저씨 게임처럼 몸이 제멋대로 벌떡 일어나졌다. 핸드폰을 보니 8시 55분. 9시 수업인데. 이럴 땐 생각이란 걸 하면 안 된다, 아니 못하는 편이 맞겠다. 마구잡이로 새까만 색의 옷을 집는다. 검은색 고무줄 바지, 검정 후드티, 검정 패딩. 머리채를 쥐어잡듯 백팩을 잡아 펼쳐 노트북을 넣고 손에는 빗을 하나 쥐고 뛰어 나간다. 이러려고 학교 앞에 사는 건 아닌데, 머리를 빗으면서 학교로 전력 질주 한다. 심장이 세차게 뛰다 못해 멈춰버린 것처럼 아프다. 삼킬 침조차 없이 말라버린 입 안엔 헐떡이는 피맛만 감돌뿐이었다. 12월 초의 날씨가 무색하게 땀이 삐질난다. 패딩이 다 흘러내리도록 뛰다보면 강의실에 도착한다. 다행히 내 발표 차례 전이다. 40여 명이 듣는 중소형 강의라 눈에 안 띄게 행동하는 것이 꽤 어려웠다. 최대한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고 숨을 돌린다. 빗어도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하나로 묶는데..


“이주희 나와서 준비하세요.”

‘망했다.’


이 씨 차례가 벌써 오다니... 아직 일어난 지 10분도 채 안 된 나는 누가 봐도 일어난 지 10분도 안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최대한 눈에 힘을 주고, 잔머리를 귀 뒤로 깔끔히 넘기길 반복했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가슴에 품고 천천히 강의실 앞으로 나갔다. 노트북을 켜고 세팅하는 동안, 스트레스로 머리가 다 빠진 게 아닌가 싶은 은퇴한 프로파일러 상의 범죄심리학 교수님이 앞선 발표에 대한 간략한 의견을 덧붙였다. HDMI선으로 강의실 모니터와 내 노트북을 연결하곤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사이, 내 앞에 앉아있는 약 40여 명의 학생들이 동시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보는데 이상하게 나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너무 자다 일어난 사람 같나?’ 라며 의기소침한 것도 잠시, 그렇다고 저렇게 대놓고 웃는다고? 싶어 약간 열이 받았다. 오히려 당당히 고개를 들고 서 있는데, 내 왼편에 서있던 교수님께서 나를 불렀다.


“저 주희 학생..?”

“교수님 잠시만요, 인터넷이 조금...”

“아니 그게 아니라..”


교수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의실이 울리도록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상황파악이 안 돼서 가만히 서있으니 교수님이 내게 작게 볼에 뭐가 묻었다고 말해줬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뭐가 묻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까지 사람들이 웃는 게 어이가 없어 조금 열이 받은 상태였다. 주머니 속에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 얼굴을 확인했다.


“아악!!!”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고추다. 고추가 내 볼에 묻었다. 밤새 내가 손끝으로 낳았던 효자들의 그것이 그대로 내 볼에 묻어있었다. 4B연필을 쥐고 책상에 엎드려 자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대로 볼에 묻어버린 연필 자국. 그림에서 떨어져 나온 고추... 그것도 아주 커다랗게.. 교수님은 친절하시게도 화장실에 다녀와서 발표를 해도 좋다고 말했다. 교수님의 말에 학생들은 아주 마음 놓고 웃기 시작했다. 옷소매로 볼을 마구 닦아내며 노트북을 챙겨 나가려는 그 찰나 말썽이던 와이파이가 연결되었는지 70인치 모니터가 환하게 켜져 버렸다. 옅은 살구색으로 꽉 찬 모니터, 울려 퍼지는 거친 두 남성의 신음소리. 깔깔 웃던 학생들의 표정이 점점 경악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났다. 목 놓아 울고 싶어졌다. 교수님도 너무 놀란 나머지 에어컨 리모컨을 들어 화면을 끄려 하다 실패했다. 쿠당탕탕 리모콘을 찾는 소리와 신음소리만 섞여 들린다. 난 사고가 멈춰버린 듯 손을 더듬거리며 동영상을 껐다. 동영상을 내리자 N년간의 성실한 자료조사로 가득 찬 나의 드라이브가 짠하고 나타났다. 시발. 주여.

온몸이 축축해지는 듯했다. 손이 눈물을 흘리는 듯 땀이 배어져 나왔다. 노트북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HDMI선을 뽑아던지곤 가슴에 노트북을 품고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대로 뛰어 집으로 향했다. 조금도 뒤돌아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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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나 지났을까. 휴학을 해야 하나, 자퇴를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무명수행을 선택했다. 망신살이 잔뜩 끼어버린 내 삶을, 벗은 몸을 탐하느라 망해버린 내 삶을 개운할 필요가 있었다. 몇 년 동안 내 눈과 약 만 명의 눈을 자극시켰던 것을 만회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실 눈을 감고 있어도 나는 마음의 눈으로 남성의 나체를 보고 그릴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의 눈이 뜰랑 말랑하기 시작하면 다시 바깥의 소리에 집중했다. 햇살의 소리가 들려온다. 햇살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그만 들어가려나 보다.

내가 혹시 우스운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다. 개같이 망해버린 내 인생을 벌줄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좆으로 망해버린 좆같은 그날 일을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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