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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알지 Apr 08. 2024

잘 살고 계십니까?

서른과 마흔의 중간에서(아니 마흔에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마흔을 향해 별로 대단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자니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연령과 성별로 segment를 나눠 형용할 때 우리는 흔히 <30대 남성> 혹은 <20대 여성>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내가 떠올리는 대한민국 30대 남성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1. 고민의 가장 큰 부분은 결혼과 경제적인 문제가 차지하고 있으며(비약 좀 하자면 대한민국 남성에게 결혼은 곧 돈문제이기도)

2. 그들에게 있어 스트레스를 푸는 ‘비교적 경제적이면서 쉬운’ 방법이 음주이자

3. 아이러니하게도 꽤나 큰 스트레스가 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음주를 동반한 회식'이고

4. 많은 사람들이 운동부족, 음주, 흡연, 과도한 육식으로 지방간, 높은 중성지방률, 복부비만, 심혈관계 질환 등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5.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를 받거나 승진을 하면 기뻐하지만

6. 균형 잡힌 삶의 지속을 위한 본질적인 행복이나 만족은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그런 좀 안된 아저씨들이다.

 

그들은 다시,

1. 내년엔 연봉이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오르기를 바라며

2. 승진을 위해 야근을 하고

3. 자식이 태어나면 사진을 찍어 Social Network에 올리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어찌 보면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10대와 20대는 이러한 30대가 되기 위해 대로(大路)를 걷는다.

샛길로 샜다가는 큰일날 것 같기 때문에.

 

요즘의 그들은 더더욱,

average가 되기 위해 메마른 사춘기와 창백한 청춘을 보낸다.

 

tolerance를 얼마나 인정하면 '낙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10? +-20?

 

문득 겁이 난다.

나는 average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이상치일까?

나는 '대한민국 30대 남성'일까?

아니면 '30대 남성'일까?

‘대한민국’이라는 수식어가 한정하는 의미가 새삼 또렷해진다.

 

많은 청년들이 ‘대한민국 30대’가 되기 위한 교육은 잘 받고 있지만 정작 ‘내 인생의 30대’가 되기 위한 준비는 미처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안타깝다고 말하기엔 이미 시간이 꽤나 흘러버린 듯 하다.

그래도 다행인건, 마흔이 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꽤나 많다는 것.

공자는 마흔에 이르러 미혹하지 않아 불혹이 됐다고 하는데 공자와 비교하기엔 수양과 덕이 턱없이 얕으니 불혹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깨우침 하나쯤 얻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힘을 내요 미스터킴,

우린 아직 다 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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