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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rawing Hand May 22. 2021

021 홈메이드 피자

우리집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로 했다

나는 우리 집 평일 점심 식사를 맡은 요리 담당이다. 처음부터 내 담당은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굳혀졌다. 우리 집 점심은 오후 3시 30분, 비교적 늦은 시간이다. 시간이 고정된 일을 하는 A의 퇴근 시간에 맞추다 보니 그렇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이나 카페에서 뭐든 먹는 게 신경 쓰여서 회사에서 점심을 먹지 않는 대신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밥을 같이 먹자고 일정을 맞췄다. 아무래도 중간에 배가 고프니 A는 사과를 간식으로 챙겨서 출근하고, 집에 있는 나도 아침을 좀 늦게 먹거나 12시 전에 가벼운 간식을 먹는다. 


우리 집 공식 점심시간 3시 30분에 맞추기 위해 요리 담당인 나는 빠르면 2시 보통은 2시 30분부터 요리사 모드를 변신한다. 다음날 점심으로 무엇을 만들지는 전 날 저녁에 생각해 두는 편이다. 유일한 손님이자 단골인 가족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봐도 내가 시간을 써서 요리하는 걸 미안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특별히 뭐가 먹고 싶다는 말을 잘해주지 않는다. 결국 우리 집 점심 메뉴는 요리사 마음대로. 날씨, 기분, 가족의 식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리사인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 메뉴를 정한다. 살짝 찬 바람이 느껴지는 날이면 쌀국수 혹은 퓨전 짬뽕 같은 국물 요리를 하고 밥이 들어간 든든한 한 끼를 먹고 싶으면 비빔밥을 준비한다. 어쩐지 피곤한 날에는 무조건 고추장으로 양념한 떡볶이다. 이외에도 닭튀김, 탄탄멘, 두부국, 해물 부침개, 찜닭, 볶음밥, 카레, 짜장면, 잡채, 불고기, 피자, 각종 파스타 등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어떤 요리도 전문가처럼 만들지 못하니 같은 요리라도 만들 때마다 맛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른 요리를 한다.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을 확실히 기억할 수 없을 때쯤 다시 같은 메뉴를 준비하면 어쩐지 새로운 음식을 먹는 듯한 느낌을 주는 꼼수다. 


우리 집 최고 요리사의 기록 by The drawing hand, 2020


냉장고가 크지 않아서 양이 많거나 오래 보관해야 하는 것은 잘 사지 않는 편이지만 자주 날짜에 임박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틀 전 밤에도 냉장고 안을 살피다 피자 도우의 유통 기한이 5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종종 구매하는 시리얼이 들어간 피자 도우는 2팩이 한 세트이다. 즉 유통 기한 내에 먹으려면 5일 내로 두 번의 피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계산. 확고한 결심으로 정한 메뉴를 가족들에게 미리 공지했다.  


"내일 점심은 피자입니다."


시판 도우가 있다면 피자 만들기는 매우 간단하다. 토핑만 준비하고 예열된 오븐에 15-20분만 구우면 되니까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우리 집 대표 점심 메뉴다. 모차렐라와 에멘탈 치즈도 있고 게다가 이번 주에는 블루치즈까지 있으니 요리사 자신감이 급상승한다. 채식을 선호하시는 시어머니와 뭐든지 잘 먹는 A와 나, 모든 식구를 위한 피자도 한 판이면 충분하다. 단지 토핑을 올릴 때 조금만 신경을 쓴다. 이 날 준비된 토핑은 양파, 피망, 버섯, 올리브, 할라피뇨. 도우를 잘 펼치고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일단 깔아준 뒤 준비한 토핑은 골고루 올려준다. 마지막으로 선택사항인 돼지고기 햄은 2/3 부분까지만 올려주고 다시 한번 치즈를 과감하게 뿌려주면 모든 준비가 끝났다. 피자만으로는 조금 아쉬운 것 같아 구운 채소를 메뉴에 추가한다. 당근, 피망, 양파, 그린빈을 잘라서 오븐 용기에 담고 버터를 작게 잘라 콕콕 심어줬다. 치즈까지 올라간 피자와 채소가 담긴 그릇을 오븐에 넣어주고 20분 정도 타이머를 맞춘다. 그 사이 피자오와 함께 먹을 루꼴라를 따로 담아내고 오이 피클, 올리브, 피클 고추 등을 먹기 좋게 잘라서 준비한다. 오븐이 맛있게 피자를 구워주는 일만 남았다. '띠띠띠띠' 오븐에서 알람이 울리고 곧 열쇠로 현관문을 힘차게 여는 소리가 들린다. A가 들어오면서 말한다. 

"음... 맛있는 냄새!"


우리 가족은 점심을 준비하는 내게 항상 고마워하고 미안해하지만 나는 평일 점심 담당이라서 좋다. 요리를 하고 점심을 먹고 후식까지 먹는 긴 점심시간이 즐겁다. 누가 뭐래도 좋아서 하는 내 몫의 집안일. 요리하는 건 힘들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이 좋아해 줄 때 뿌듯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설거지 담당은 다른 사람이다. 언젠가 음식을 만드는 게 힘들기만 하고 더 이상 기쁘지 않으면 그때는 요리사 자리도 양보해야겠지만, 내게 점심 준비는 주어진 재료로 한두 시간 만에 요리를 만들어 보여줘야 하는 일상의 미션 같다. 게다가 판정단이 나를 아끼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내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미션이다. 스스로 오늘은 맛이 없다, 망했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특별한 맛이라고 표현해주는 나의 가족이 있으니 실패에 침울해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내일의 도전을 준비하면 된다. 


인생에서 만나는 도전과제가 이렇게만 쉽다면 좌절하는 일도 없겠지. 애쓰며 노력해도 언제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지 모르고 심지어 다정한 판정단도 없으니 도전을 앞두면 누구나 두렵다. 혹시 나처럼 유독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 일단 사소한 일상 미션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정해둔 기상 시간 지키기, 매일 30분 독서하기, 그림 한 장 그리기, 맛있는 간식 만들기, 점심 후 산책하기, 짧은 일기 쓰기,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리운 친구에게 전화하기 등 무엇이든 사소하지만 작은 기쁨을 주는 나만의 미션. 작은 성공의 기쁨을 챙기다 보면 더 큰 도전 앞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콩알만 한 자신감도 꾸준히 모으면 묵직해지겠지. 스스로 알아챌 만한 자신감과 용기를 가졌다면 여전히 겁쟁이라도 뭐든 해 볼 만한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평일 점심 담당을 계속하려고 한다. 우리 집 최고의 요리사는 누가 뭐래도 나니까. 참, 전 주말에는 쉽니다. 



더드로잉핸드 The Drawing Hand

그림 그리는 삶.

현재 스페인에서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중.

인스타그램 : http://instagram.com/thedrawinghand.viva

그라폴리오 : https://grafolio.naver.com/jieunkim

유튜브 : http://youtube.com/thedrawing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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