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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r 29. 2018

일상 - 2018.03.30

불에 관하여

남자는 피곤한 모습으로 '퇴근'이라고 적힌 출퇴근기계에 사원증을 찍었다.

삑-. 기계에는 파란색 바탕에 검정색의 글씨로


오후 09:02


라는 글자만 점멸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하고 흩어졌다. 남자는 흡연실에 남아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차에 시동을 걸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단골 카페로 향했다.

몸이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잠들 지경이었지만, 남자는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면 한 두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겠지만, 지금의 남자에게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이 절실했다.


카페에 도착한 남자는 가게 앞 쪽에 차를 주차하고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에서의 남자의 주문 방법은 늘 같았다. 카운터에 놓인 네 가지의 원두 샘플이 담긴 통을 차례대로 열어 향을 맡은후에,  제일 향이 좋은 원두를 골라 따뜻하게 브루잉으로 추출한 커피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새로운 남자의 회사는 업무상 사진을 찍을 일이 많았는데, 남자의 기존 핸드폰의 사진 성능이 맘에 안 들은 것도 있었고, 조금이도 짬을 내 그림을 그리고자 어제 최신 기종인 갤럭시노트8을 구입한 김이었다. 남자는 노트8로 그림을 그려보기로 하고, 우측 하단에 위치한 펜을 꺼내 설치되어 있는 기본 앱으로 간단한 그림을 그려보았다.


남자는 오늘 마신 케냐 와추리가 담긴 컵과 쟁반을 간단히 그려보았다.

펜으로 그림을 그려보니 생각보다 훨씬 그림을 그리기 편했다. 여러가지 펜과 색상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펜의 필압이 아주 민감해서 마음먹은 대로 선이 잘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자주 그려야지. 하고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그림을 그리고 나서, 따뜻한 케냐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최근에 남자는 꽤 고민이 많았다.

안산이라는 도시에 작년 9월에 도착했다. 열심히 했지만 첫번째 직장에서 일방적인 해고를 당하고(최근 그 회사는 폐업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번째 직장에 들어왔다. 다행히 사람들은 참 좋았고, 급여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늘 피로감을 느꼈다. 회사가 급격하게 커져감에 따라 마찬가지로 일감이 급격하게 늘어난 탓에 퇴근은 거의 늘 오후 9시였고, 종종 10시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주말에도 거의 늘 출근을 했고, 마찬가지로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잦았다.

남자가 취급하는 제품은 매우 약하고 예민한 탓에 실수 한 번이 이 천만원에 육박하는 손실에 이를 수도 있었다.

사실 남자는 이미 한 번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동료분들이 실수는 할 수 있다며 다음부터 잘 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남자는 이 천만원을 한 동안 가슴속에 담고 다녔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이 피로한 일상에서도 남자는 집에 돌아오면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게임에서 어떤 아이템을 깨거나 승리를 하거나, 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또는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 술과 함께 먹고 자거나.

그러나 제일 강렬한 욕구는 창작욕이었다. 남자는 몸이 피곤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바로 드러누운 날에도 정신응 잠들기를 거부한 날이 많았다. 몸과 정신은 그렇게 다투었고, 남자는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그 창작욕이라는 불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나서야 지친 몸과 더욱 더 지친 정신으로 잠이 들곤 했다.


어쩌면 남자의 피로는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업무로 지쳤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불이 남자의 마음속에 있었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업무에서도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으며, 좋은 그림과 글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남자는 가끔 창작욕이. 그 꺼지지 않을 불이 남자의 사회생활을 무너뜨릴까봐 가끔은 두려웠다. 그러나 그 불이 남자가 이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워낙 깊은 곳에 있었던 탓에 남자는 그 불을 계속해서 피워내기로 했다. 그 강렬한 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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