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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May 23. 2018

일상-2018.5.23

스러져간 사람들

남자는 알람 소리와 진동에 눈을 떴다. 오후 3시다.


요새 남자는 생활 패턴을 조금 바꾸었다. 야간조에 들어갔을 때에만 퇴근후에 깨있다가 늦게 일어나는 것에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것으로.

그것은 남자가 최근 문화생활을 너무 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자는 고백하건데, 최근 글과 그림을 거의 접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야간조에 들어갔기 때문에 밤을 새서 피곤하다는 이유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남자는 2018년에 접어들면서 세웠던 스스로 생각했던 올해 창작의 목표가 있었다.


1. 1/4 분기마다 아크릴 그림 하나를 그릴 것.

2. 유화 그림에 도전할 것.

3. 내년 출간을 목표로 하는 '멀라이언 스노우볼'의 수정.

4.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1차 원고 탈고.

5. 3번과 마찬가지로 내년 시작을 목표로 하는 일상웹툰               '틈(가제)'의 연재를 위한 태블릿, 갤럭시 노트 8을 이용한 그림연습


이중 1번은 올해 봄에 완성한 '에스뚜체'로 4개의 그림 중 하나를 완성한 상태였고, 현재 진행중인 '30'으로 두 번째 목표로 향하고 있었으나, 사실 나머지 문항의 목표들은 진행이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남자는 문득 퇴근 브런치에 글을 언제 올렸나. 확인해 보았고, 5월 9일에 글을 올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주정도 글과 그림을 멀리하였구나. 남자는 부스스한 눈으로 옷을 대충 입고 담배를 들고 원룸 건물 밖으로 향했다.

남자는 왜 부천에서 안산까지 왔는가. 몸과 마음 편한 카페를 버리고 왜 이 회사로 들어왔는가. 왜 이 좁디 좁은 원룸방에 나무 이젤과 캔버스, 물감들과 붓 등의 그림도구를 마련했는가. 왜 한글 오피스를 돈을 주고 구입을 하고 틈틈이 시간날때마다 소설을 쓰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가.

꿈이 있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문득 스러져간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그림과 글을 배울 시절에 동료들을 생각한다. 모두들 멋진 사람들이었다. 아름답고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꿈을 꾸던 사람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의 역작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사람들이었으나(물론 이 부분은 남자도 포함된다)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러져갔다. 바쁘고 벅찬 일상에 지쳐서, 또는 결혼과 육아에. 경제적인 배고픔으로, 마음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공모전 탈락의 절망으로. 또는 단순히 흥미를 잃어서. 인맥과 학력이 버티고 있는 굳건한 현실에 절망으로.

이유는 참으로 다양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예술의 길을 전진하는 남자의 곁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스러져갔다. 남자는 길을 이탈하거나, 무릎을 꿇은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고, 또 그들이 남긴 흔적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열정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서 힘을 얻었다.


그래. 더딜수는 있다. 가끔은 이 현실에 지쳐 그림이나 글을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영 이 길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일주일에 자그마한 집 한채를 그리더라도. 한달에 문장 하나를 쓰더라도 남자는 계속해서 이 길을 걷기로 하였다.

남자는 출근에 앞서 인터넷에 근처에서 아크릴 물감을 파는 곳을 검색해 들리기로 하였다. 내일부터 다시 '30'을 그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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