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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Kim Jun 04. 2018

일상 - 2018.06.03

나쁘지는 않은 하루. 보통의 하루.

남자는 눈을 떴다. 오후 1시. 오늘은 쉬는 날이다.


일상은 거의 늘 같았다. 출근시간에 맞춰 눈을 뜬다. 간단하게 씻고 방 정리를 한 후 집을 나서 차에 시동을 걸고 회사로 향한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자그맣게 음악을 틀고 눈을 감는다.


이불속에서 부스럭거리던 남자는 이제 일상이 많이 안정되어 있다고 느꼈다.

남자는 작년 9월. 부천에서 시흥으로 혼자 이사를 왔다. 그때부터 안산으로 출퇴근한지도 벌써 9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회사는 2월에 입사하였는데. 다닌지 4개월차에 이르렀고, 2개월 후에는 정규직 전환의 달이었다.

정규직만 된다면. 좀 더 현실이 단단해질것이다.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이불속에서 한참을 꿈지럭거렸다. 머릿속에서는 휴일이기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서 편하게 쉬자.라는 생각과 휴일이니까 번화가라도 나가 뭐라도 하자. 라는 두 개의 생긱이 충돌했다. 두 번째 생각을 실천하기에는 아직 몸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것 같은데. 라고 남자는 판단했고 결국 몇 시간동안 이불 안에서 굼지럭거리다가 다시 설풋 잠이 들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다시 설풋 잠이 들었다.


남자가 몸의 피로가 어느정도 풀렸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저녁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이제 배도 많이 고팠고, 피곤도 많이 풀렸기에 남자는 슬슬 움직이기로 하였다.

차에 시동을 걸고 잠시 인터넷으로 '안산 중앙동 초밥집'이라고 검색해보았다. 간만에 초밥을 먹고 싶었다.


트라제는 우르릉-. 덜덜-. 두 가지의 소리를 섞어가며 움직였다. 남자는 최근 카센터를 들려 트라제의 상태를 체크하였는데. 차체의 하부의 부식이 너무 심해 다소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카센터의 평가가 있었다. 남자는 눈에 보이는 차체의 부식도 심해보이지만, 내부도 상당히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2006년에 생산된 차량이니. 꽤나 문제거리를 안고 있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를 수리해서 타느니 차라리 새로운 차를 구하는 것이 다 나을 것이다. 남자는 2개월 후에 예정이 되어있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된다면. 새로운 차를 구입해야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중앙동에 도착했다. 남자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서는 제법 번화가라고 판단되는 곳이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내려 초밥집을 가는 남자의 뒤에 일련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들의 무리가 가까이 붙었고, 그 중 몇몇이 남자의 거의 뒤에 바짝 붙어 친구들에게

"와. 키 존나 큼 진짜."

라고 말하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종종 겪는 일이었다.
남자의 키는 187cm로 190에 가까운 장신이었다. 그래. 말 그대로 존나 크긴 했다.
 
남자는 요새 친구들이 참으로 대담하구나. 뭐. 달리 말하면 예의가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찌나 가까이 붙었는지 얇은 셔츠를 입은 여자의 속옷의 촉감이 반팔을 입어 드러난 남자의 팔뚝 뒷 너머로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는 목에 힘을 잔뜩 주고 정면을 주시한채 눈치를 못 챈 것처럼 길을 걸어갔다. 여자 아이들은 한참을 조잘거리다가 남자가 초밥집 빌딩의 입구에 근처에 들어서자 떨어졌다.


초밥집은 그럭저럭 무난했다. 글쎄. 10점 만점에 6점 정도일까. 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를 포함한다면 8점까지도 줄 수 있었다. 뭐. 나쁘지는 않아. 남자는 계산을 하고 초밥집을 나오며 생각했다.

문득. 남자의 일상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쁘지는 않았다.

남자의 직장은 휴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만큼의 금전적 보상은 해주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꽤나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모두 천사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악마도 아닌. 표준의 사람들.

남자의 예술 작업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으나, 남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브런치에 결과물을 올리면 조금이라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모든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좋지도 않았다. 모두 보통이었다.


남자는 카페에 들어섰다. 남자가 최근 자주 들리는 카페였는데, 전에 다니던 카페가 번회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위치에 있으며 작은 규모에 뛰어난 음료를 만드는 것이 특징이라면, 이 카페는 거의 반대에 가까웠다.

번화가에 위치해 있으며 가게가 매우 넓었고, 음료는 보통에 가까웠다(아쉽게도 따뜻한 카페라떼의 스팀 정도를 보았을 때 바리스타의 실력은 보통이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인근에 서울예대가 위치해서 그런지,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어폰을 끼고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골몰히 쳐다보는 경우가 많은 곳이었다. 심심치 않게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테이블도 보였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도 과연 학생들 다운 이야기였는데

'100장짜리 장편 소설은 어떻게들 쓰는 거지'

'내 소설은 너무 특별해 or 내 소설은 너무 유별나'

'하루에 1장만 썼으면..'

'교수 시발새끼(?)'

등의 이야기였다. 남자는 그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재밌었고, 약간은 안도도 들었다. 그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직도 남아있다. 비록 서점에서 찾는 사람도 잘 없고 한국 소설은 망했다. 라는 평가를 받는 시대지만 언젠가는 저런 친구들도 책을 내고 누군가는 그들의 글을 읽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소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고..


남자는 카페에 앉아 노트8로 그림을 그렸다. 남자는 최근 '30'을 그리고 있었는데, 최근 화풍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림에서는 화풍이라고 하고, 글에서는 필체라고 하는 그 사람만의 특징. 아우라. 기운 등..

남자는 문득 그림에서 자주쓰는 색깔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블랙과 티타늄 화이트였다.

남자는 흑백논리에 찬성은 하지 않았지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만화인 '배트맨'시리즈의 주인공인 배트맨은 흑과백의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를 결코 죽이진 않지만 자그마한 범죄를 일으킨 경범죄자라도 할 지라도 다소 과격하게 제압하며, 선인이 아무 보잘 것 없는 작은 아이라고 할 지라도 온 몸을 던져 구한다. 그에게는 YES OR NO 라는 아주 심플한 사고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심플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흑백이 섞여있는 회색이 더 많은 것이다.

남자는 세상이 흰색 2, 회색 7, 어둠 1 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가 남자가 생각하는 세상의 색깔이다.


남자의 이런 시야를 좀 더 작품에 뭐랄까. 좀 더 녹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어떤 버릇도 남자의 창작물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단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 자제하는 편이었지만, 특징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상이 너무 보통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남자는 오늘은 흑백의 그림을 그렸다.


1년전에 그린 '29'의 느낌이 물씬난다.



남자는 그림을 완성하고 보통의 하루에 대해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 카페의 영업시간은 새벽 2시까지였고, 시계는 오전 12시 08분을 가리킨다. 제법 북적거리던 카페에는 이제 거의 사람이 없다. 남자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곧 카페를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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