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k Kim Jun 24. 2018

일상 - 2016.06.24

대부도

남자는 대부도에 와 있다.


주말 주간 특근이다. 남자의 하루의 절반은 이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규격에 맞춰 제품을 검사하고, 발견한 불량들을 생산팀에 알리고 상부에 보고를 진행하여 이 제품을 납품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

해야될 일이 모두 끝나자 하루의 절반이 끝났다. 남자는 회사 입구에 있는 카드 리더게에 퇴근을 찍었다.파랗게 빛나는  카드 리더기 오른쪽 위에 '오후 04:30' 이라는 하얀색 글씨가 점멸했다.


남자는 차 키를 들어 차의 문을 열었다. 남자는 세상 모든 잠긴 것이 이렇듯 손가락 한 번 누르는 것만으로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고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남자는 최근 신 차를 구입했다. 남자는 그동안 2007년식 트라제 XG라는 차량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차가 너무 오래되어 차량 이곳저곳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고, 차량의 떨림이 심하고 소음도 점점 커지는 등 도저히 타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회사->집 이라는 일상속에, 그 일상을 이어주는 차는 중요한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은 이제 남자는 어느정도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주야간으로 한달의 거의를 일과 잠으로 보내는 이 인생에 자신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나 할까.

여튼 이런저런 이유로 남자는 차량을 구입했다. 차량은 쉐보레의 2018년형 올 뉴 말리부다.


남자는 말리부에 시동을 걸었다. 트라제와 달리 부웅-. 하는 조용한 소리와 함께 계기판에 불이 점등되며 차량의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었다. 남자는 네비게이션에 휴식시간에 짬짬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알아둔 근처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운 대부도에 있는 카페를 입력하고, 음악을 틀고 카페로 출발했다.


남자의 검정색 말리부가 해변도로를 질주했다. 남자는 해변도로 좌우에 펼쳐진,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햇볕을 받아 빛나는 물결이 가득한 바다를 곁눈질하며 엑셀을 밟아 나갔다.

남자는 바다가 좋았다. 한없이 넓고, 아름다웠다. 바다와 하늘은 잠시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닷가는 하늘과 바다, 그 모든 것이 광활하게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가끔 남자는 바다를 보러 차를 모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카페 하나가 남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카페에바다' 대부도에 위치해 있다.




카페는 커다란 건물에 자그맣게 들어서 있었다. 건물의 나머지 부분에 커다란 횟집들과 슈퍼 등이 입점해있는 것을 둘러보던 남자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피우고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 내부는 앤티크하면서 아늑한 분위기였다. 짙은 갈색과 옅은 갈색이 인테리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인테리어 소품들은 오래된 느낌을 주었으나 실제로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가게 입구에는 주인분이 직접 만들었다고 쓰인 엽서가 1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남자는 카운터에 서서 잠시 메뉴를 고민하다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주문을 끝낸 남자는 가게 내부에 앉을 만한 자리를 둘러보았지만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내부 자리에는 모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남자는 카페 외부에 위치한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라스는 아직 채 지지 않은 햇빛으로 인해 조금은 더웠지만, 보이는 풍경이 남자의 마음이 들었다.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었는지 뻘들이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었고 저 멀리 뻘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사람들의 인영이 조그맣게 보였다. 사람들은 허리를 굽혔다 폈다, 몇 몇은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뻘에 손을 넣어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평화로워, 남자의 마음도 덩달아 평화로워졌다.


남자는 이 곳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동안의 힘들었던 회사 업무로 인해 남자의 마음에 여유가 없었음을. 고작 삼 십분을  차로 달려 도착할 수 있는 이 곳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따뜻한 커피를 마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음을.

그래서 남자는 최근에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자는 이 곳을 찾아온 것 같았다. 잠시나마 여유를 찾기 위해서.
남자는 뜬금없이 차를 몰아 혼자 이 곳을 찾아오기로 한 자신에게 감사했다. 아마, 남자가 최근에 내린 결정중에 가장 귀한 결정인 것만 같았다.


이 곳에서 남자는 글을 썼다. 남자는 마음이 여유로워야 글과 그림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 곳에서 깨달았다. 일상에 지쳐있는 몸과 마음으로 하기에는 글과 그림은 어쩌면 너무나 힘든 일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하루에 12시간 근무, 새로운 차, 두둑한 월급이 아닌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힘을 얻었다.

물론 전자로 인해 후자를 즐길 수 있음이라.

남자는 가끔 이렇게 대부도를 찾아오기로 했다. 엄청난 절경이나 산해진미가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았으나(남자는 대부도를 처음 방문했기에, 판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는 매우 적절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 가게의 마감인 7시에 얼마 남지 않았다. 남자는 가끔 이 카페를 들리기로 하고, 이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 약 한 달 정도 그리지 않았던 '30'을 다시금 그리기로 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 - 2018.06.0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