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이해되가는 명암
남자의 다음 수업과제는 네모였다. 정육각형이라고 부를 법한 아주 각진 모양의 네모에서, 다시 한 번 명암을 찾아 선들을 그어가는 수업이었다.
지난 번의 원기둥에서, 남자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얻었다.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어찌됬든 남자의 인생에서는 제일 잘 그린 그림이었다. 그로 인하여 네모는 더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았고, 명암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더 이해를 잘 할 수 있을것 같았다.
"자. 네모도 원기둥이랑 비슷 해요. 총 세개의 면을 명암을 잘 이해 하면서 선을 그어보도록 할께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선을 그어갔다.
확실히 원기둥을 그리고 난 이후인지, 물체의 명암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손이 눈으로 이해한 이미지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남자는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남자는 자꾸만 선을 지워갔다. 그때, 선생님이 옆에 와서 한 마디를 하고 가셨다.
"너무 급하게 마음 먹으시면 잘 그릴 것도 못그려요. 천천히 그리세요."
아하. 힘이 너무 들어갔구나. 남자는 조금 힘을 빼고 다시 선을 그려갔다.
선을 그리는 것은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 같았다. 화려한 기술을 한 번에 부리는 것이 아니라 착실하게 옳은 선을 하나씩 그어 어둠과 밝음을 표현한다. 멋진 세계다.
남자는 곧 네모를 완성했다. 지난 번 원기둥보다는 좀 더 짧은 시간에 완성한것 같았다. 아아. 보람차다.
왠지 남자는 앞으로도 그림을 더 그리고 싶어졌고, 점점 그림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는, 그림 오른쪽 상단에 싸인과 이름을 남겼다.